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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막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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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흐름 Nov 22. 2023

차라리 신비하게




가로수 길을 걷는다.

일부러 천천히 나뭇잎에 묻혀 걷는다.

머리 위로 붉고 노란 융단을 이고

잎그림자 아롱 대며 얼굴에 부빈다.

고개 들어 올려보니

나무사이로 새 한 무리

수수께끼처럼 앉았는데

한 놈이 '고로롤 삘룩'하고 우니

다른 놈이 똑같이 '고로롤 삘룩'.

개울물에 담근 피리처럼 우는 것은 까치렸다.

지난밤 잠자리에 누워

새들은 밤에 뭐 하나 궁금한 중에

왠 놈이 여즉 안 자고 울길래

녀석들은 앉아 자려나? 언제 눕겠노.

새들은 누울 줄을 모르는가

우리가 날 줄을 모르듯이.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미지인가.

서로의 미지만으로 세상은 충분히

신비롭지 않은가.

다른 채로 채로 

신비하게 이대로.


이 시간 앉아서 조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대들은 새가 되어버릴지도 몰라.

그대들이 눕는 법을 잊을까 봐.

혹시 잊거들랑,

아름드리나무 사이로 수수께끼처럼 앉아

머리 위로 붉고 노란 융단을 이고서는

잎그림자 아롱 대며 얼굴에 부비고

짝을 찾는 꿈을 꾸기를.

눈앞에 둔 것으로부터 잠들고

다른 채로 모른 채로

차라리 눈 감고 미지에서 깨어나기를.

사람의 말일랑 잊고

개울물에 담근 피리처럼

'고로롤 삘룩'하고 신비하게

울어버리기를.


가만.

지난밤 울었던 녀석이

아침에 만난 까치가 과연

새였을까나?

새면 어떻고 사람이면 어떻노.

우는 자의 부름에

같은 음성으로

사랑이여, 답하소서.

차라리 날개를 달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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