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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흐름 Nov 28. 2023

내가 잠들 곳

[성경] 창세기 23장






창세기 23장을 읽는다.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가 127세로 생을 마감한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위해 애도하고 나서 고인을 묻고자 장례 치를 땅을 사고자 한다. 당시 사라가 이방땅 헤브론에서 눈을 감았기에 아브라함은 그 땅 주인에게 장지로 쓸 곳을 팔라고 청하는데, 주인이 아브라함을 왕자로 예우하며 원하는 곳에서 얼마든지 장례를 치르라고 한다. 그래도 아브라함이 재차 땅 값을 치르고 장례 하겠다 하자 이번에 땅주인은 차라리 그냥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도 완강히 아브라함이 값을 지불하겠다고 버티자 둘은 사이에 증인을 세우고 땅값을 제대로 쳐서 거래한다. 마침내 아브라함이 비로소 자신의 땅에서 부인 사라의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이제 그곳의 동굴과 나무까지 장지로서 아브라함 가족의 소유가 된다. 아멘.





당신은 어디에 잠들고 싶은가?

한 줌 재가 되더라고 하늘에 뿌려져 바람으로 살고 싶은가,

강물에 뿌려져 물 닿는 곳은 어디든 여행하고 싶은가,

땅에 묻어져 흙의 자양분이 되고 꽃을 피우고 싶은가,

다른 이에게 장기로 새 생명을 주고 그의 생을 이어 살고 싶은가,

혹은 항아리 안에 고이 담겨 매해 가족의 방문을 받고 싶은가.

당신이 어디서 잠들고 싶은가는,

곧 죽음 너머에 무엇이 되고 싶은가 일지도 모른다.


아브라함은 부인의 장례를 이방땅에서 치를 판이었지만, 그 땅을 제 값 주고 자신의 소유로 해서 부인을 가족의 땅에서 잠들도록 하였다. 값을 치르고 증인을 세워야 완전한 소유권을 가지고 나중에 분쟁도 막을 수 있기에, 부인을 완전히 평화롭게 쉬도록 예우한 것이다. 그 들판에 속한 나무까지도 그의 소유가 되니, 아브라함의 부인은 마음 편히 그곳의 자연이 되었을 것이다.


어디에나 생명이 있다. 바람이 뼛가루 한 줌이라는 죽음을 실어 나를 지라도 그것이 내려앉는 곳에 생명이 그것을 흡수한다. 죽음이란 곧 생명에 흡수되는 법. 그럼 어떤 생명에 흡수되고 싶은가?

생태계 속에서 끊임없이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 어느 곳이든

그곳에서 형태의 변화와 진화를 거듭하고

먼지가 되었다 땅이 되었다 물이 되었다 나중에 또 사람의 생명에 깃들기까지

그 모든 순환과 여정을 자연의 영원한 순리에 맡기고

내일 내가 될 생명들을 바라보며

내일 내가 깃들 몸들을 쓰다듬고 눈 맞추며

어찌 그들을 아끼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모든 생명에 들어찬 우리의 조상들을 발견하며

지금의 내가 그들의 후손이자 그들의 비전이었고

그들 역시 내일의 내가 될 비전으로

서로를 예우하며

서로가 고통에 신음하지 않고 평안하기를

소원하고 축복한다.

생명보호, 자연보호가 결국에는 나를 보호하게 되는 결과됨에.

나의 평화와 번창이 됨에.


그것이 육신의 순환이라면, 우리 안의 영혼은?

영을 믿지 않는 이는 그대로 자연의 순환에 맡기면 될 터.

영을 믿는 사람은 이 생이든 저 생이든 뭐가 되든

신과 함께라면 천국에 있는 것.

천국이 무어냐?

창세기에 성경의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만들어 거기에 거하게 두며

신이 보기에 '좋았더라'하는 신의 Good. 신으로부터 흡족한 세계. 흐뭇하고 만족스러운 상태.

모든 것이 제기능 하는 잘 지어진 풍경.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있든 그 상태로 사는 영이라면,

세상 뭐가 두려워.

죽든 살든.


문득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가 다시 떠오르네.

사라는 지금 무엇이 되었을까?

아, 그녀는 성경이 되었구나.

창세기 23장에 묻혀서 말씀으로 살아서 우리 삶에 녹아들어 사는구나.

사라의 영이여. 당신이 등장하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당신이 묻힌 땅이고

전 세계에서 성경이 펼쳐질 때마다 당신이 살아 나와 신의 이야기를 쓰는 천국에 있군요.

진정한 영생이로다.

우리가 죽어서 다른 이의 기억이라는 기록 속에 아름답게 등장하려면

선하게 사람들의 마음에 묻히고 선한 추억으로 선한 영이 되어 다시 살아 나와야 하겠구나.


사람의 마음이라는 땅은 돈이 필요치 않다. 마음이란 땅을 사서 땅주인이 되고 그곳에 영이 되어 평화롭게 잠들고 그 마음이 열릴 때마다 평화롭게 다시 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하라.

영의 세계에서는 사랑이 화폐이다.


이방땅에서 120세까지 살며 삶의 고비고비를 넘겼을 사라를 그린다.

남편이 값을 치러 결국에는 그 땅이 가족의 땅 되어 가족의 손에 그 품에 묻힌 사라를 그린다.

그곳의 자연이 되었을 사라를 그린다.

, 아브라함이 그녀를 사랑했구나.

성경에 묻히고 성경에서 깨어나는 사라를 그린다.

신의 말씀으로 신의 입술에 오르내리는 사라를 그린다.

신이 품고 신이 기억하고 신이 기록한 사라를 그린다.

아, 신이 그녀를 사랑했구나.

사라가 잠든 곳은 사랑의 땅이구나. 그녀는 사랑이 하는 최고의 예우 안에 모셔졌구나.

사랑이 바로 땅이로구나.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린다.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을 떠올린다.

무엇보다 신의 품을 떠올린다.

내 땅.

시드니는 지금 저녁 11시.

나는 사랑 안에 눕는다.

그리고 내일 사랑 안에 눈 뜰 것이다.

굿 나잇, 굿 모닝. 그리고 굿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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