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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Jul 12. 2020

몽마르뜨에서 바게트 먹고 싶다

유럽, 다시 갈 수 있을까?

베이킹 수업을 다녀오는 길이다. 오늘은 메뉴는 바. 게. 트. 어렵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사실 재료도 별 것 없고 성형도 별 것 없어 보이는 빵이 제일 어렵다. 그만큼 민감하고 변수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 5cc에 반죽의 상태가 확 달라진다. 발효온도나 시간, 외부 환경에 따라서도 반죽 상태가 많이 달라진다. 예민한 아이인 것이다. 선생님의 설명으로는 이런 빵의 특성 때문에 바게트 전문점들은 자신의 바게트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온도도 습도도 바뀌는 환경에서 비슷한 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테니 말이다.


20대에 방문했던 파리의 한 빵집이 떠올랐다. 그들에 비해 작아 보이는 동양 여자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던 빵집 주인. 무려 'girl'이라고 불리며 그 호의를 받았더랬다. 바게트를 만드는 내내 몽마르뜨의 빵집에서 만난 주인이 그려지는 것 같았고 그때 맡은 빵 냄새가 느껴지는 듯도 했다. 지금 알고 있는 빵의 종류와 만들어지는 기법들을 알고 파리에 있었다면 빵집에서 느꼈을 감정이 또 다르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집은 몇 세대를 이어온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빵집이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유러피언>, <니체의 삶>, <반 고흐의 귀>를 읽다 보니 유럽이 가고 싶어 진다. 그들이 지냈던 곳을 느끼고 싶다. 같은 기차 노선으로 움직여 보고, 그들이 살았던 지역에서 며칠간 머무르며 카페에 들러 커피도 마셔보고, 그림 그리는 반 고흐를 떠올려보아도 좋을 것 같다. 이런저런 지식 없이 다녀온 유럽여행과는 아마도 많이 다르리라. 




<반 고흐의 귀>는 이제 20% 정도 읽은 듯하다. 저자는 그동안 반 고흐의 귀는 귓불 일부만 잘랐음을 거의 확인한 상태이고(뒤에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읽은 부분까지는 그렇다), 그의 노란 집에 대한 자세한 도면과 집에 들어가게 된 계기, 주인과의 관계(주인 부부와 친밀하게 지냈으며, 부인의 초상화를 남겨두기도 했다)까지 알아냈다. 그가 주로 지낸 카페 가르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고, 그림 속 가르를 알려준다.



9월 중순 -남부에서의 그의 삶에 새로운 시작이 되어주길 바랐던 -노란 집 이사 직전, 반 고흐는 밤에 카페 내부를, '그의' 카페를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짙고 풍부한 색감의 풍경이었다. 진한 적갈색 벽과 드물게 밝은 청록색 천장, 늦은 밤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뒤편에 보이는 테이블들과 그위에 여기저기 놓인, 길고 긴 저녁의 즐거움의 증거인 빈 술잔과 술병들이 그려져 있다. 반 고흐 역시 이 광경의 일부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으며, 이런 밤 시간을 그 역시 친구들과 이웃들과 함께 보냈을 것이다. <반 고흐의 귀> p.231


예전에 나는 역사 속 누군가가 살았던 곳, 예를 들면 빅토르 위고의 집이라던지, 모네의 생가라던지 찾아다니던 쪽은 아니었다. 당연히 파리에 있는 레 더 마고(1885년에 오픈한 카페, 랭보, 앙드레 지드, 피카소, 헤밍웨이 등 예술가와 철학자가 단골이었음)를 일부러 찾아가 보지도 않았다. 

그냥 동선이 맞으면 들러보는 정도였다. 일부러 가보지 않았던 이유는 그곳에서 모네 같은 그림을 그릴 수도 없을 터이고, 그가 느꼈던 것을 느낄 자신도 없어서였다. '대체 왜 여기를 줄 서서 돈 내고 가는 거지?' 당시의 속마음은 그랬다.


이랬던 내가 유럽을 다시 가고 싶은 이유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펼쳐진 곳이 궁금해서라니 우스운 일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지금은 직접 보고 느껴보고 싶다. 그렇게 그들이 살았던 곳에서 감정 이입을 해 보고 싶다. 안 가본 것도 아니고, 왜 당시에는 이런 준비를 하지 않고 다녀왔을까. 몰라도 너무 몰랐던 어린 시절이다.


지금까지 읽은 <반 고흐의 귀>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사실은 귀를 자른 사건이 발생한 아를에서의 고흐는 처음부터 그렇게 우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파리의 생활에 지쳐있었고 변화를 꿈꾸며 아를로 이사를 갔다. 아를에서의 그는 햇볕 가득한 따사로운(물론 처음 도착했을 때는 흔치 않은 폭설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날씨의 영향으로 많이 밝았고 희망에 차있었다. 이는 그 시기에 그렸던 고흐의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아를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의 고흐는 꽤나 멋쟁이 었다. 자화상에 보이는 차림새를 보인 것은 그가 아를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지역의 옷차림을 따라갔었기 때문이다. 


1910년~ 1920년대 반 고흐를 다룬 픽션들의 영향으로 '미치광이' 빈센트 반 고흐는 신사다운 행동, 옷차림, 태도 등이 결여된 부스스하고 흐트러진 만신창이로 알려진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였다는 증거가 상당히 많다. 파리 자화상들에서 그는 깔끔한 외모이다. 남쪽에서도 그는 때때로 상당히 멋을 부린 모습이었다. 나중엔 그의 영웅 아돌프 몽티셀리를 따라 하기 위해 검은색 벨벳 재킷을 사기도 했다.
<반 고흐의 귀> p.138





아를이라는 지명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세월이 40년이 넘는다.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고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지만 가보고 싶다. 코로나 19가 잠잠해지고 왕래가 자유로워진 어느 날. 아이들이 조금 자라 부부가 긴 여행을 갈 수 있을 어느 날이 되면 유럽여행을 계획해도 좋을 것 같다. 

철없을 때 세느 강에서 프러포즈를 받겠다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남편과 함께 세느 강에서 샹송이 흘러나오는 유람선을 타고 둘 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프러포즈보다 값진 시간일 테다. 언젠가 가게 될 유럽여행은 기존의 여행과 많이 다르리라. 다시 <유러피언>을 읽고, 니체와 고흐의 생애를 살피며 앞으로 만나게 될 어떤 이의 삶까지를 포함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루트를 짜지 않을까?


여기에 계속 이어갈 베이킹 지식과 먹거리에 대한 공부가 더해지면 다시 만날 유럽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참 좋다. 그 언젠가 이루어질 꿈을 하나 그려두고 꿈이 현실이 되는 날을 위해 조금 더 열심히 읽고 배워보야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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