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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Jul 11. 2020

노랑? 노랑은 고흐 아닌가?

고흐는 왜 귀를 잘랐는가.

책에 빠진 주말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멍한 토요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이 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이런 날 무슨 책을 읽으면 몰입을 할 수 있을까?

유목민도 아니고, 요 며칠을 한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도 좋으리라 믿으며 책을 바꿔 든다.




팀원들의 서평을 읽다가 폴 고갱을 만났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건만, 당시에는 못 느꼈던 고갱의 노랑이 강렬하게 남으면서 새로웠다. 나도 고갱에게서 이런 노랑을 느꼈었던가? 뭔가 기억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노랑은 다른 것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니체의 책을 뒤적이다 깨달았다. 내 기억 속 찬란한 노랑은 반 고흐의 것이었다. 고갱과 함께 살기도 했다는 고흐의 이야기를 다시 읽고 싶어 졌다. 무슨 책이 좋을까?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도 있고 <반 고흐의 귀>도 있다. 니체를 전기로 접하면서 느꼈던 새로움을 <반 고흐의 귀>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 오늘은 이 책이다.


얼마 전 밀리의 서재를 통해 오디오 북으로 들었던 책이다. 귀를 잘라 창녀에게 선물했다는 반 고흐. 저자는 그가 귀를 다 잘랐는지, 일부만 잘랐는지, 잘랐다면 얼마나 어느 부위를 잘랐는지, 왜 잘랐는지를 알아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주로 테오와의 편지를 통해 알려진 접근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그의 삶을 재조명해보고자 했다. 접근 방법도 신선했고, 무엇보다 정말 '왜' '정확히'가 책 속에서 밝혀진다고 하니 궁금했다.


내게 고흐는 최근에 만난 니체와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둘 다 정신적으로 많이 아팠다. 아버지는 목사였고 한 때 종교에 몸담고자 했으나 결국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는 점도 같다. 형제가 있었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물론 니체의 여동생과 고흐의 남동생은 결이 다르다. 어쩄거나 그들의 삶에 동생이 없었더라면 지금 알려진 그들의 모습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점은 일치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둘 모두 안타깝고 슬픈 이들이라는 느낌. 어째서 그렇게 아플 수밖에 없었을까. 달라질 것은 없었을까?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대가로 나온 결과물을 어떤 시선을 바라봐야 할까.


사실 이래서 철학이 좀 어렵고 때론 싫다. 답도 없는 것 같고, 자꾸 마음이 무겁다. 생각이 생각을 불러와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자꾸만 의문이 들게 한다. 막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철학을 빼고는 생각을 이어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라 꽤나 힘든 요즘이다.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많이 읽지 못해 아직은 저자가 어떤 식으로 고흐의 삶에 다가갔는지 밖에 알지 못한다. 저자는 고흐의 삶에 다가가기 위해 고흐가 귀를 자른 곳이기도 하고 살았던 곳이기도 한 도시(아를)가 지금의 모습과 달랐음을 깨닫고 먼저 당시의 모습을 재연해 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그림에 나오는 이웃들의 데이터베이스를 하나씩 만들어간다. 


카페 주인, 푸줏간 주인, 우편배달부, 의사 등 각 개인에 대한 파일을 만드는 것이 너무나도 지루한 작업이 될지라도, 아를에서 반 고흐의 삶을 이해하려면 그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살던 이웃들에 대해 확인된 정보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중략)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인물들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지자 그들은 내게 19세기의 길고 긴 장편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진짜 사람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반 고흐의 편지들처럼, 내 데이터베이스 속 정보들을 통해 그가 하루하루 어떻게 존재했는지 알게 되었고, 그의 그림들을 통해 이 도시에서 보낸 그의 시간을 유일무이한 일기장으로 집어낼 수 있었다. (중략)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캔버스 위의 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들은 반 고흐의 친구였고, 그가 매일 보았던 노동자와 동네 사람들, 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사람들이었다.
<반 고흐의 귀> p.53



지금까지 그림을 볼 때는 고흐의 작품이라는 생각만 했다. 그림 속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고흐에게 무슨 의미였는지, 왜 그렸는지까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예술에 문외한이라 나는 그랬다.) 그들이 당시에 살아있던 사람이었고, 어떤 식으로든 화가와 관계를 맺고 있었을 거라는데 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지금의 사진처럼 당시에는 그림이 있었던 것일 텐데, 그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그동안 미술관이며 전시회장을 찾아다닌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저자는 '귀는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첫걸음이었다고 한다. 그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그의 삶 속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던 곳, 함께 했던 사람들, 지역 문화, 거리의 분위기, 사람들의 특성을 모두 알아야만 한다. 그는 지루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계속해서 퍼즐 맞추듯 맞추어나간다.


아마 이 글을 쓰고 나서도 나는 계속 책을 읽을 것 같다. 꽤나 두께가 있는 책이라(600페이지가 넘는다) 다 읽으려면 며칠이 걸리겠지만 한동안 이어진 책 유목민 생활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다음 장이 너무 궁금해 죽겠다.) 내일은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지... 최대한 많이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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