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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Aug 08. 2020

한밤중에 대청소를 한 사연

제발 방 정리 좀 하면 안 되겠니?


나는 사용하는 공간이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를 좋아한다. 어지럽고 정리가 되지 않아 답답한 공간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그렇다고 정리 정돈을 정말 잘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정리는 못하면서 정리된 상태를 좋아한다니.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렇게 된 것에는 깔끔하고 정리를 잘하며 부지런하신 엄마의 영향이 컸다. (강조해서 말하지만 절대 원망하는 것이 아니다.) 대충 퍼질러놓고 학교를 다녀오면 깔끔하게 정리 정돈된 방에서 다시 생활할 수 있었다. 엄마는 버릴 건 버리고, 봐서 애매한 것들은 한쪽에 몰아두셨다. 나머지는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 있으니 나는 그저 사용만 하면 되었다. 버려진 것들에 전혀 불만이 없었고, 버려지면 안 될 정도로 소중하다면 미리 치워두면 된다. 힘들이지 않고 깨끗한 환경이 유지되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엄마가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냐 하면 그건 아니다. 늘 '정리해라." "좀 치워라." "개가 똥을 눠도 모르겠다." "여자애 방이 이게 뭐냐." "어휴, 저걸 누가 데리고 가려는지..." 청소와 정리 정돈에 대한 잔소리를 끝이 없이 이어졌지만 솔직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흔히 말하는 어지럽히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의 전형인 셈이었다. 나는 허물을 벗 듯 벗은 것들은 그대로 두는 타입이라 움직인 동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유형의 사람이다. 불행히도 아이들은 나의 성향을 많이 물려받았나 보다. 지금도 집 안을 둘러보면 아이들이 어디에서 무얼 하고 놀다가 장소를 바꿔 무얼 했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다. 맙소사! 정리 정돈을 잘 못하는 깔끔쟁이 엄마에게 어지럽히기만 하는 아이가 셋이라니. 그대들이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을 집 안 곳곳에서 볼 수 있다.


Photo by Tanaphong Toochinda on Unsplash


아이들 방이 엉망진창이 된 지 두어 달쯤 된 것 같다. 큰 아이는 무언가 버리는 것에 많이 인색한 편이다. (버리고 나면 미련을 두지 않는 둘째랑은 성향이 많이 다르다.) 종이접기 한 색종이. 그림 그려놓은 각종 도화지. 본인이 만든 스티커, 꼬치에 꽂아 만든 소떡소떡까지. 구석구석 몰래 박아둔다. 보관이 아니라 박아둔다. 책꽂이 책을 들어내면 구석에서 만들었을 당시에는 개구리 모습이었을 종이조각이 나오고, 블록 박스를 정리하면 떨어진 소떡 일부가 나온다. 스티커는 곳곳에 붙어있고, 쓰다 만 스티커와 각종 작품이라 불리는 종이들이 책장 아래, 장난감 통, 서랍장, 책 사이에 가득히 들어있다. 

몇 번이고 정리함을 만들어주고 만든 것들 중 소중한 것은 모으고 시간이 지나 시시해진 것들은 버리라고 했지만 아이는 버리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표현해야 할 만큼 싫어하는 것 같다. 어느 사이엔가 정리함은 가득 차고 또 구석구석 빈틈없이 무언가가 들어찬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무리 사주지 않는다고 해도 장난감 등등은 계속 쌓이게 마련이다. 한정된 공간에 그것들을 다 수용할 수 없으니 방 안은 그냥 보기에도 가득 찰 수밖에 없다. 좁은 집에 놀이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에 설치해 둔 2층까지 장난감과 박스, 블록, 그림들로 가득 찼다. 도저히 방에서는 놀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차고 나니 아이들은 자주 노는 놀잇감을 거실로 가져 나와 놀기 시작했다. "정리해야 하지 않겠니?" "오늘은 할 거야?" "좋아. 오늘 한다고 했으니 믿어볼게. 대신 내일 아침에 확인했을 때 이 상태면 엄마가 들어가서 다 버릴지도 몰라. 알았지?"


늘 시작은 존중하려 노력한다. 그렇게 스스로 정리할 기회를 준 것도 두 달이 넘었다.(기회를 주고 다음날 바로 버렸어야 하는 게 아닌가 늘 후회한다.) 드디어 한계에 다 달았음을 알리는 경종이 울렸다.


"지금 하고 있는 설거지가 끝나면 엄마가 방 정리를 시작할 거야. 두 달 넘게 기다려줬으니 할 말 없지?"


이렇게 시작된 한밤중의 대청소. 위기의식을 느낀 첫째는 아빠에게 도움을 청했다. 지금부터 정리를 잘할 테니 아빠가 엄마를 좀 말려줬으면 좋겠단다. (자질구레한 작품(?)들 하나하나 꼽아가며 이건 버릴 것인가 보관할 것인가 의견을 맞춰보는 건 주로 남편만 해주는 일이다. 엄마는 조율이 없다. 기회를 상실했으니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은 쓰레기통 행이라는 걸 너무 잘 아는 것이다.)

지켜보던 남편이 중재에 나섰다. 버리는 것들 선별은 아빠랑, 엄마는 남은 것들의 자리를 다시 잡아 정리하기로 합의를 하고 늦은 밤 세 식구가 대청소에 돌입했다. 방안 구석구석에서 찾아낸 작품이라 쓰고 쓰레기라 읽는 것들이 잔뜩 나왔다. 집에 있는 가장 큰 쓰레기봉투 20L를 꺼내왔지만 순식간에 한가득 찼다. 아직 절반도 정리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참고로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은 풀과 스카치테이프, 글라스데코 등이 칠해져 있는 종이라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한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는지 모르겠다. 이 청소가 오늘 끝이 나긴 하는 건지. 다리도 아프고 엉덩이도 아프고 정말 힘들고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2시간 반여의 시간이 흐르고 자그마치 50L의 쓰레기를 버렸다. 재활용으로 낸 종이만 큰 이불 가방으로 하나. 그 외 플라스틱류도 박스 하나가 꽉 찬다. 


"우와~ 방이 정말 시원해졌어. 얼음이 있는 것처럼 시원하고 상쾌해."

며칠 전 기분을 나타내는 단어를 배우고 난 후라 상쾌하다는 말도 써먹는 아이다. 지친 남편과 나는 지금의 상태가 유지되지 않을 시에는 경고 없이 버리겠다는 협박을 했다. 듣기는 한 것인지 아이는 "엄마 아빠가 같이 정리해주니까 깔끔하고 좋아." 한다. 


'말끔히 치우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아이가 스스로 청소하는 것을 기대해도 될까?'라는 질문 대신 차리라 '내가 아이에게 원하는 건 뭘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중략)
해결법은 간단하다. 나는 그럴 때 아이의 방으로 가서 정리를 한다. 아이에게 명령을 하면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해진다. 우리가 남편이나 친한 친구, 직장 동료에게 방이나 책상을 깨끗이 치우라고 요청할 때 어떻게 대하는지 생각해보면서 목소리 톤이나 말하는 방식이 아이를 대할 때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아이에게 소리치는 것과 달리 좋게 좋게 요청할 테다.
<소리 지르지 않는 엄마의 우아한 육아>  p.140



그저 어지럽히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인 것이 당연한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정리를 잘 못하니 혼자 정리를 할 수 있도록 키우는 편이 모두를 위해 좋은 쪽이라고만 생각했다. 조율하고 존중하며 정리해도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피곤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혼자 하도록 연습을 시켜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스스로 정리하라고만 말로 시켰다. 정말 이기적인 엄마가 아닐 수가 없다. 아직 같이 하는 연습이 필요한 아이임을 자꾸만 잊는다.


"부모가 원하는 것과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달라요."


<소리 지르지 않는 엄마의 우아한 육아>의 저자 다니엘라 가이그는 자신의 기대치와 아이의 기대치가 다름을 인정하고 육아를 하라고 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깔끔하게 정리된 집 안이다. 그걸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아이는 놀고 싶을 테고, 당장 원하는 놀이를 시작하고 싶을 것이다. 그때 엄마가 나서서 "안 돼. 지금 놀던 것은 제자리에 두고 다른 놀이를 하도록 해. 그게 규칙이야."라고 하면 받아들여질까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나 역시 지금도 설거지가 쌓여있지만 책을 읽고 싶으니 책 읽기를 먼저 한다. 거기에 내가 아니면 설거지를 할 사람이 없고,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다음 끼니를 준비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기에 뒤이어서라도 설거지를 하는 것이지 그것이 아니라면 나도 누군가에게 미루고 하지 않고 버티지 않을까?


다시 한번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당신의 일정은 당신에게만 해당되는 계획이라는 점이다.
p. 137
아이들은 지금 자신의 상황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으며 놀이에 흠뻑 빠져 모든 것을 잊은 것뿐이다. 이런 고도의 집중력은 우리가 회사에서 업무를 수행할 때 장점으로 꼽지 않는가? 그런데 왜 아이가 집중력을 발휘하는 순간에는 이를 긍정해주지 않고 화를 내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p.141

 

Photo by Bekah Russom on Unsplash


아이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일부러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은 것이 아니라 질문의 시작점을 바꾸면 쉽게 해결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 정리 정돈을 안 하지?' '왜 밥을 안 먹지?' '왜 말을 안 듣지?'가 아니다. 


살면서 내가 원하는 것과 아이가 원하는 것이 일치하는 것 순간이 드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원하는 바와 아이가 원하는 바를 조율하며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일단 엄마의 연료탱크가 충분히 차있어야 한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 그래야 내 안에서부터 여유로움이 번져 나올 수 있다. 지쳤단 생각이 들거나 나도 모르는 한숨이 나온다면 하던 일을 멈추자. 그리고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이 휴식인지, 수면인지 영양보충인지 빠르게 파악하자. 정서적으로 결핍이 된 것이라면 어떻게 충전하면 좋을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잠시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공원이라고 산책하자. 하다 못해 마트에서 장보는 것도 혼자 하면 힐링이 된다. 시간에 쫓기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많은 육아 멘토들이 육아는 장거리 레이스라고 말한다. 하나하나의 디테일은 조금씩 다를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의 행복도 지켜줄 수 있다는 대전제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고작 2시간 30분 정도 아이방 대청소를 하고 난 감상치고는 너무 거창한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50L에 달하면 쓰레기를 버리면서 오늘도 육아와 행복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는... 나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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