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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Aug 07. 2020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끝을 몰라도 괜찮은 길. 꽃 길.

갑자기 나타난 노래로 생각이 깊어진 날이다. 자주 들었고 심지어 팬이기도 했던 그룹의 노래를 유튜브 알고리즘이 찾아왔다. 왜 이 영상이 재생되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나는 시황을 들으며 설거지 중이었다. 듣고 있던 경제 방송이 끝났지만 세제가 듬뿍 묻은 손을 당장 쓸 수 없어 그냥 두었다.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다른 시황이나 투자 전문채널들이 이어지는데 어제는 웬일인지 '비긴 어게인'이 자동 재생되었다.


https://youtu.be/YS10Cdaz2Kk



GOD - 길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Photo by Stephen Walker on Unsplash



설거지를 하다 말고 멈췄다. 내가 가 이 길이 어디를 향해 있는 것일까? 질문이 떨쳐지지 않는다. 부르는 이들의 마음이 담겨서일까? 먹먹하고 찡한 마음에 멍하니 한참을 영상을 바라봤다. 이 마음이 영상 속 이들을 향한 것인지 나를 향한 것인지도 구분도 되지 않으면서 말이다. 


'엄마'라는 직업을 가진 전업주부가 8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 믿는다. 시간을 만들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한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엄마가 되어주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노력한다. 분명히 8년 나보다는 성장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길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그려본 적이 있나 싶기도 하다.


노래 가사처럼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다. 가끔은 궁금하다. 저렇게 성공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달랐을까? 길을 봤을까? 어떻게 봤을까? 지금 내게는 무엇이 부족한 걸까? 부족한 걸 안다 한 들 채울 수 있긴 한 걸까? 성공이 뭘까? 행복이 뭘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감당이 안된다. 아마도 질문의 끝 즈음에는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다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자꾸만 피하고 싶었던 마음을 들켜버린 듯하다.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는 중이다. 욕심내지 않고 잠들기 전 10분씩 한 챕터만 읽다 보니 꽤나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 다만 메시지의 무게가 있는 편이라 가능한 한 가볍게 읽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었더니 공교롭게도 '죽음'을 생각해보라고 한다. 


오늘이 삶의 마지막이라면 무엇을 할까? 아마 책을 읽고 글을 쓰지는 않을 것 같다. 만약 내일이 없다면.... 우습게도 제일 먼저 주방과 냉장고를 정리하고 각각 메모를 쓰고 있을 것 같다. '이건 재작년 묵은지고 이건 김장 김치야. 된장이랑 고추장은 이게 전부야. 다 먹으면 사야 해. 냉동실에 들어있는 해산물은 이런 게 있고, 내가 없으니 남은 엿기름이랑 식재료는 엄마한테 드리면 되겠다.' '이건 첫째가 좋아해서 쟁여둔 거니 늦지 않게 먹어야 해. 둘째는 이것만 있음 밥을 잘 먹어. 막둥이는 말 안 해도 알지?'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마음을 메모에 한 자 한 자 쏟을 것이다.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내가 없는 내일부터 삶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그 메모를 본 신랑의 반응은 "마지막인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뭐 이런 걸 하고 있었어!!" 하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이유는 그만큼 지금 충실히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조금 더 온 마음을 다해 매 순간 사랑을 담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한 마디라도 사랑한다고 더 이야기하고 고맙다고 안아주는 시간을 더 가져야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남은 시간들을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리라. 엄마는 책을 읽어야 하니 너희들끼리 놀아라가 아니라 말이다. (글을 쓰는 지금 내 앞에 앉은 아이들은 피자에 소스를 찍어먹는 건지 소스를 핥아먹기 위해 피자를 먹는 건지 알 수 없는 행동들로 속이 터지게 함으로써 감성을 깨 준다. 더 이상 깊이 빠져들지 말자.)


내일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한다. 지금의 순간들이 쌓여 길을 만들고 그 길이 조금 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향할 거라 믿는다. 모든 노력이 나를 포함한 가족 모두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미루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 순간순간, 과연 삶의 목적과 맞게 살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밸런스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는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해야 하고 어느 정도는 당장 오늘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충실하게. 매일을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기에 롤러코스터를 타듯 미래에 몰두하는 기간과 현실에 몰두하는 시간으로 나누어 몰입도를 다르게 사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사는 게 이렇게 녹녹지 않은 것인지 몰랐다. 챙겨야 할 것들도 많고 알아야 할 것들도 많다. 몸은 하나인데 하고 싶고 해야 할 것들은 갈수록 쌓여만 간다. 지내다 보면 부족한 것들만 보이고 못하는 것들만 두드러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덕분에 조금만 더 일찍 깨닫고 살았다면 지금은 조금 덜 고되지 않았을까 하는 소용없는 질문도 하게 된다. 


어느 때인가 '힘들다.' '지친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돌아보니 골짜기를 조금 지났는지 지쳤다는 생각을 며칠간 안 했음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사는 건 힘들지만 못할 정도는 아닌가 보다. 이렇게 지나서 의욕이 뿜 뿜 하며 지내다 또다시 슬럼프가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Photo by Gabe Pierce on Unsplash



앞에 앉은 아들이 3초에 한 번씩 "그런데,  엄마~!"하고 말을 걸어온다.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어 "엄마, 이거 할 동안만 쉿!" 하고 말했다.


"힝~! 나 엄마한테 할 말이 백만 개 있는데!"


집중해야지 하다 말고 웃음이 터졌다. 하고 싶은 말이 백만 개가 넘는 아들을 앞에 두고 집중하겠다고 조용히 시킨 내 생각이 틀린 거다. 어쩌면 글을 쓰겠다고 앉아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이 순간도 행복이 아닐까?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한번만 더 웃고 사랑한다고 말하다 보면 내가 가는 길의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 길이 꽃길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꽃길이 아니어도 좋고, 꽃길이면 꽃길이니까 좋은 거다. 그 끝이 어디든 웃으면서 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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