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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Aug 16. 2020

계속 걸어야만 할 것 같을 때가 있다.

잘 쉬는 것도 중요합니다.

농담처럼 시작한 3년동안 매일 글쓰기다. 시간이 갈수록 생각을 풀어내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은 진리임이 느껴진다. 책을 많이 읽지 못해도 한 글자도 읽지 못하는 날은 없다. 글이 완벽하진 못하지만 떠오르는 잔상이라도 매일 남기고 있다. 그래, 부족하지만 그래도 계속하는 것이 어디야... 스스로 위로하며 세웠던 계획에서도 '할 수 있는 만큼만'을 지켜가며 매일을 채워가는 중이다.


Photo by Eric Rothermel on Unsplash


사실 이번 한 달을 신청하면서 꽤나 고민을 했었다. 시작하기 직전에 아이가 다쳐 평소와 같지 않은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방학을 맞이한 큰 아이까지 함께 하니 '조금 더 아이들에게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번엔 한 달을 쉬고, 다음번에 다시 이어가면 되지 않을까?'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국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는 선을 그어놓고 일단 시작을 했고, 벌써 절반이 지났다.


솔직히 이 결정을 잘했단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중간에 아이가 열이 나기도 했고, 방학을 맞이해 생활 리듬이 더욱 흐트러져버린 첫째를 보니 엄마가 하는 책 읽기와 글쓰기가 더없이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질문지로 쉬어가던 어느 날. 정말 아무런 압박감 없이 아이들만 바라봐주고 놀아주고 밥을 먹고 함께 낮잠을 자며 반나절을 보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진짜 내가 해야 할 일이 없으면 아이들이랑 하루 종일 맞춰줘도 화를 내거나 조바심을 낼 일이 전혀 없겠더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하게 친정에 있으니 잠이 늘었다. 밥도 챙겨주시고 아이들도 봐주시니 마음이 풀어졌나 보다. 밤에도 자고 아침에도 자고 낮에도 잔다. 틈틈이 잠을 자니 책 읽을 시간도 글 쓰는 시간도 더욱 줄어들었다. 잠이 늘어난 덕에 내용이 어려운 책은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렇게 집어 든 책이 <걷는 사람, 하정우>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67018988



가까운 지인들이 워낙 많이 읽고 다양한 서평으로 접했던 책이라 읽지 않았지만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덕분에 조금 부담 없이 집어 들 수 있었다. 


그의 걷는 이야기를 읽으니 걷고 싶어 졌다. 다만 불볕더위로 체감온도가 40도가 넘는 지금 말고 말이다. 달리는 책을 읽으면 달리고, 걷는 책을 읽으면 걷게 된다. 노력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읽으면 노력하며 살게 된다. 그렇게 읽는 대로만 살아도 삶은 조금씩 더욱 나아지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문득 생각해 본다.



Photo by Arek Adeoye on Unsplash


책 속에는 하루에 10만 보를 걸은 이야기가 나온다. 평소에 걷기 좋아하는 지인들이 모여 2만 보, 4만 보를 늘려가다가 10만 보를 계획하게 되었단다. 그들은 '10만 보의 날'을 위해 4만 보, 5만 보, 7만 보로 늘려 걸으며 계속해서 몸을 적응시켰다. 그리고 당일. 그들은 10만 보를 채우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고비. 그는 위기의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자연히 대화도 급격하게 줄어든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면서 가보려는데, 다리는 돌덩이처럼 무겁고 발바닥이 화끈거려서 땅을 디딜 때마다 너무 아팠다. 무엇보다 숨이 가쁘고 열이 올라서 도저히 더는 걸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점이다. 말 그대로 죽을 것 같은 순간. 옷은 땀에 푹 절었고 머리칼은 만신창이다. 몸도 몸이지만 무엇보다 더 이상 걷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견디는 것이 힘들었다. '난 아무래도 안 되겠는데' 포기 선언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그 고통을 문장으로 엮어서 입 밖에 내보낼 힘조차 없다. 그냥 걷는다. 무아지경 상태로 걷는다. P.77


읽는 내내 책 읽고 글쓰기도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달성해가는 모든 과정이 비슷하겠지만 말이다.) 작게는 하루에도 몇 번, 한 달 전체를 돌아봐도 몇 번의 사점이 찾아온다. 일이 힘들어서 일 수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서 일 수도 있다. 몸도 마음도 시간도 극한에 몰리게 되면 어김없이 '난 아무래도 안 되겠는데'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생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뭐가 잘못되는 것도 아니다. 포기 선언을 누구에겐가 할 필요도 없으니 어쩌면 글 쓰는 지금도 '난 더 이상은 아닌 것 같아'하면 끝이다. 선언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다시 그의 '10만 보의 날'로 돌아가 보자. 한 번의 사점을 지나면 시련을 딛고 성공하는 주인공이 되는 걸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버텨서 7만 보까지 찍으면 아까 사라졌던 낙관이 아주 잠시 찾아든다. 어쩐지 해볼 만한 것 같고, 곧 길 끝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의 순풍이 살짝 볼을 스친다. 하지만 방심하지 마라. 여기서 5천 보 가량만 더 걸으면 금세 그 마음이 또 뒤집히니까.
(중략)
아니 대체 하외이까지 와서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뭐를 위해서 내가 이렇게 가고 있는 거지? 10만 보를 걸어서 뭐하자고?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걷자면 계속 걸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걷는 목적을 잃어버렸다. P.78


매일 글을 쓰다 보면 중간에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왜 글을 쓰고 있지? 애들을 저렇게 두고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매일 써서 책을 출간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 시작할 때.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 그만둬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지배당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흥미롭게 느껴진다. 하와이에 왔으니 10만 보 걷기에 도전해보자며 다 함께 목표를 설정한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걷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그 '의미'란 걸 찾으면서 포기하려고 했을까? 어쩌면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 헤맨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P.79


한 달이라는 프로그램 덕에 마디가 생겼다. 매일 글을 쓰지만 한 달을 채우고 보름을 쉬었다가 다시 한 달을 채운다. 30일이라는 시간을 채우고 나면 처음에 마음먹었던 이유와 의미가 다시 되살아난다. 그래, 끝까지 잘했어. 스스로가 기특하고 대견하다. 의미란 최소한 시작할 때 그리고 끝내고 나서 찾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장거리를 걸을 때는 지치기 쉽다. 판단력도 흐려진다. 그러므로 걷는 시간보다 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때가 있다. 바로 '쉬는 시간'이다.
(중략)
쉬는 시간에는 지쳤다고 숨만 훅훅 몰아쉴 것이 아니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동화 속과 두 발의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하며 다음 오십 분을 준비해야 한다. 지쳤다고 그냥 늘어진 채로 목구멍에 물만 들이부으면 영락없이 탈이 난다. P.81


3년은 짧은 시간일 수도 짧지 않은 시간일 수도 있다. 매일 읽고 쓴다는 것이 다른 일상이 있는 우리들에게 쉽지 않은 일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리프레쉬에 충분히 쉬면서 돌아보고 점검하고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누구도 쉬지 않고 계속 걸을 수는 없는 것이다. 


리프레쉬, 질문지의 날. 종종 글을 쉬고 숨을 고를 수 있는 날들이 있다. 누구도 쉬지 않고 계속 걸을 수 없다는 말이 위로가 되는 것을 보니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고 하면서도 스스로를 조금은 닦달했었나 보다. 그래, 지금은 휴가 중이고, 아이들과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으니까. 주어진 시간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끈을 놓지 않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잠시 쉬어야 다시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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