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콕맘 예민정 Aug 17. 2020

어제와 다른 나

금세 달라지는 너

<걷는 사람, 하정우>를 완독 했다. 휴가 중에 읽기에 적당한 길이와 깊이의 책이라 챙겨 와서 다행이다. 완독을 했지만 오늘은 단편적인 생각만 남긴다. 완독 기념은 휴가를 끝내고 따로 시간을 내야겠다. 


책을 읽는 중에 따로 표시를 해 둔 부분이 있다. 영화의 작업 중 믹싱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부분이다. '믹싱'이란 영화의 대사, 소리, 음악 등을 관객들이 조화롭게 들을 수 있도록 혼합하고 조절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대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볼륨을 조절하고, 음악을 넣기도 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물이 대사를 주고받을 때 뒤쪽 창문이 열려 있다면 자연스럽게 이에 어울리는 소리가 들리도록 조율해주는 것도 믹싱에 하나라고 한다. 


믹싱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믹싱 작업을 하다 보면 오늘은 잘 안 들리는 것 같던 대사가 다음 날 들어보면 적정한 볼륨일 때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나는 영화를 보기만 했지 그런 작업을 해 본 적이 없지만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았다.


첫째의 유튜브를 편집하면서 유독 내 목소리가 나오는 장면이 거슬렸다. 가능하면 내 목소리는 작게 해도 되지 않을까? 볼륨을 조절해 놓으니 딱 좋았다. 내 목소리는 굳이 크게 잘 들릴 필요가 없으니 자막 정도만 넣어줘도 다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업로드 영상을 보면 내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들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막도 완전히 다 넣은 것이 아니라서 결국 영상에 빈 구멍이 생기고 말았다. 이유는 내 목소리가 거슬린다고 생각한 내 기분 때문이었다.


나의 감각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바뀌는데 어떻게 나에 대해 확신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마음이라고 다를까? 나의 감각과 마음은 순간순간 바람의 흐름처럼 변한다.  (중략) 누군가와 생각이 다를 때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현재 나의 기분이나 마음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 또 내가 그렇다면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걷는 사람, 하정우> p. 226


같은 장면, 같은 연출, 같은 상황이라도 다르게 들리고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순전히 내 기분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내 기분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수만 있다면, 혹은 최상이 아님을 알아챌 수만 있어도 인간관계의 실수가 훨씬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상대의 장점을 잘 찾아내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항상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건,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이건 가능한 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도 최상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상대의 최상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여유도 가질 수 있게 된다. 




<소리 지르지 않는 엄마의 우아한 육아>의 저자는 아침을 힘들어하는 유형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시간에 아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평소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이들에게 설명을 했다고 한다.

"나는 아침에 기분이 좋고 싶어. 좋은 얼굴로 인사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 그런데 너희는 항상 슬프고, 화가 나 있고, 신경질적이고, 피곤한 모습이야. 나는 그런 감정을 없애줄 수도 덜어줄 수도 감당할 수도 없어."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간혹 잘 자고 일어나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잠이 덜 깨서 투정을 부리거나 짜증을 낸다. 컨디션이 좋을 때보다 많이 보채고 신경질적이다. 이때 엄마가 스스로가 평소의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불화가 생긴다. 엄마는 아이들이 자신을 힘들게 하기 위해서 그런다고 생각하기 마련이고, 아이들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화만 낸다고 받아들이고 만다.


이전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변화에 대해 조금씩 알아차리기를 연습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화를 낸 이유는 너희의 잘못이 아니라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 컨디션이 나빠진 엄마의 탓이니 이해해주기 바란다는 설명을 종종 하기도 했다.(그래서 가끔 아이들은 내게 커피를 마시라고 한다. 엄마가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나의 기분을 나도 잘 알아채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 눈치껏 알아서 행동하기를 강요했음을 깨닫고 얼마나 미안해했었는지 모른다. 이런 감정을 말로 설명했더니 큰 아이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아마 속상했던 순간들이 떠오른 게 아녔을까?


오늘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으면서 매 순간 기분이 변하는 것이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이 변덕을 부리는 것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지, 하나의 인격체로 그들도 사람이니까 수면의 여부, 배고픔의 정도, 날씨, 기분, 바이오 리듬 등의 영향으로 매 순간 기분이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닐까?



Photo by Unsplash


아이들을 사람으로 존중하고 있지 않았기에 이런 사고도 생겼다는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의 기분 변화는 원인이 있지만 아이들의 기분 변화는 변덕이라고만 치부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잠이 와서, 혹은 배가 고파서, 열이 나서, 아파서, 동생이 작품을 망쳐서, 먹고 싶은 반찬이 없어서... 기분이 변할 수 있는 이유는 수백만 가지였을 텐데.


그저 어제와 다른 나의 기분이 문제인 것이 아니었다. 매 순간 우리는 변화하고 기분이 달라질 수 있다. 나와 마찬가지로 아이들 역시 그럴 수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이제야 깨닫다니. 이렇게 서투르고 어설픈 엄마라 매번 아이들에겐 미안하다. 그럼에도 또 어느 순간 욱하며 소리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다만 희망적인 것은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일 수 없다 하더라도 아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많이 다르다. 이렇게 점점이 달라지는 시간들이 쌓이면 조금은 더 좋은 엄마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렇게 희망해 본다.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 속에서 하나의 변화를 깨달을 수 있어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속 걸어야만 할 것 같을 때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