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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Aug 18. 2020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

애 셋 엄마의 진지한 고민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꿈이다. 아마 이 문장을 읽자마자 남편은 폭소를 터트릴지도 모르겠다. '미니멀리스트? 푸하하 하하하하하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실 입으로 소리 내서 말했다면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나도 그렇게 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나는 미니멀리스트와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미니멀로 가는 길에 가장 큰 걸림돌은 늘 아이들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 휴가를 통해서 문제는 역시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준비성이 너무 많은 스타일이다. 아이 셋, 남편과 나 이렇게 다섯 명이 다른 곳도 아니고 친정을 4박 5일 다녀오면 트렁크가 두 개 필요하다. 트렁크에는 혹시 빨래가 제때 마르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스케줄로 많이 필요하게 될지 모르니 아이들 여벌 옷은 늘 일정보다 넉넉하게...(매번 옷가지 몇 개는 꺼내지도 않고 가져온다.) 여벌 신발도 한 켤레씩 넣어두고, 부부가 운동을 매일 하겠다는 마음으로(늘 마음만) 운동화와 운동복도 챙긴다. 어떤 책이 손에 잡힐지 모르니 책도 종류별로 몇 권 챙기고, 다이어리에 필기구까지.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노트북까지 넣으면 이제 기본 짐은 준비되었다. 


여기에 다섯 식구가 장거리 이동을 하니 이동시간 내내 마실 물과 커피, 먹거리 등이 큰 장바구니 하나 추가된다. 물을 왜 싸서 다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아이들은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다. 가까이 공원 한 바퀴를 돌아도 500ml 텀블러 2통으로는 모자란다. 언제 어느 시기에 물이 필요할지 모르는데, 가다가 휴게소에서 사면되지? 절대 안 되는 말이다. 오늘 집에 돌아와 정리하면서 세어봤는데 텀블러만 6개를 챙겼지만 추가로 물을 2병이나 더 구입했어야 했다. 


나가면 웬만한 건 다 구입할 수 있는 요즘이다. 골목만 돌면 편의점이 있고, 눈 닿는 곳곳에 커피 전문점이 즐비하지만 우리 가족은 이동시에 대부분 기본적인 것은 챙겨서 나가는 편이다. 부족한 것만 구입해도 만만치 않은 시간과 돈을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이런 나의 성격이 집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건 아닐까?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졌다.


Photo by Hannah Busing on Unsplash


신혼일 때 남편이 전자레인지를 하나 구입하자고 했었다. 아이 이유식을 데워도 그게 편하고(그때까지는 중탕을 했다), 바쁠 때 냉동실에 비상식량을 땡! 하고 돌려 간편하게 해결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설득했었다. 단호하게 "필요 없어!"를 외쳤지만 결국 남편이 전자레인지 겸용 오븐을 구입하면서 제일 잘 쓰는 가전 중 하나가 되었다.


남편은 빵 만들 때마다 반죽이 너무 힘드니 반죽기가 하나 사자고 했다. 나는 단호하게 "필요 없어!"라고 말했지만 역시 반죽기를 사고 나니 빵 만들기가 훨씬 쉬워졌다. 남편 없이 큰 식빵 틀 2개의 반죽을 할 수 있다니. 신세계를 맛볼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 무선 물걸레 청소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남편이 몇 달을 노래 부르듯 말하고 다녔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청소는 주로 남편이 한다.) "청소기가 있잖아. 필요하면 대걸레로 닦으면 되지." 결국 남편은 용돈을 모아 청소기를 구입했고, 그 결과 청소 후 바닥이 뽀득뽀득한 것에 매료되어 매번 청소할 때마다 "물걸레로 해 줘."라고 말하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사면 제일 잘 쓰는 여자'가 되었다. 아마 앞으로도 남편이 뭘 사자고 하면 나는 필요 없다고 외칠 것이지만, 막상 그게 생기면 제일 잘 쓰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물론 대부분의 기계와 물건들이 있으면 더욱 용이하고 편리하니 만들어져서 판매가 되는 것이겠지만, 정말 그것 없으면 못살까?를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편리함을 이유로 집 안 곳곳이 기계로 가득한 것 역시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도 없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고 결심을 해도 당장 큰 가전제품부터 처리해야 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왠지 무언가를 자꾸 구입하면 점점 미니멀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어 대상 없는 죄책감마저 들 때가 있다. 선반 구석구석, 장롱 곳곳에 쓰지 않는데 '혹시나'하는 마음에 쟁여두고 있는 것들부터 처리해도 집 안이 한결 쾌적해질 것임을 잘 안다. 그런데 왜 이런 것조차 이토록 힘들까?





함께 습관 형성 모임을 하고 있는 멤버가 읽고 있는 책이라며 소개해주었다.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밀리에 찾아보니 마침 있다. 휴가 중이고 잠시 읽기에 딱이라 바로 선택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 그림에서 답을 찾았다.




물건 비우기는 1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다는 것.


비우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오늘부터 시작한다고 바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거실을 만나는 게 아니다. 하물며 갖고 싶은 장난감이 백만 개가 넘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하루아침에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를 기대하다니. 욕심이 너무 과했다.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는 다자녀 가정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모든 삶이 똑같은 모습이지 않은 것처럼 각자에게 맞는 미니멀리스트의 모습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원하는 모습까지 가는 데는 1년이 걸릴지도 혹은 10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이미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물려받은 아이들 옷까지 짐을 한 가득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 많은 옷들과 짐을 다시 제자리에 넣고 정리를 하려면 꽤나 또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시간이 끝날 때 즈음에는 계절이 바뀌고 또 계절 옷을 정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계속해서 정리는 해야 한다.


시간을 길게 잡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느긋해졌다. 그래, 8년을 쌓은 짐이니 정리하고 버리는데 4년이 걸릴지도 몰라. 정리하는 4년간 쌓인 짐은 또 2년이 걸려서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지. 그럼 어때? 며칠 전 세탁기가 고장 난 김에 베란다를 정리하듯, 그렇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정리하고 줄이면서 지내다 보면 나도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완전한 자신감은 아니지만 조금은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어도 좋을 것 같은 생각에 이 밤 혼자 흐뭇해하며 실실 웃는 중이다. 내일 아침에 이 글을 읽으며 웃을 남편 얼굴도 그려진다. 

"여보, 대충 웃어. 나 진짜 미니멀리스트가 꿈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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