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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Aug 19. 2020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다시 모두 다 함께

친정으로 4박 5일 짧은 휴가를 다녀왔다. 말 그대로 주는 밥 먹고 잘 자며 꿀 같은 휴식의 시간을 끝내고 (너무 더워서 집 밖으로는 꼼짝도 안 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집 밖이 위험해졌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첫째 방학의 막바지, 아이들과 다시 함께 하기로 했다. 덕분에 둘째가 다치고부터 대략 한 달. 계속해서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나의 하루는 꽤나 바쁘다. 휴가 첫날, 남편이 나를 보며 "일하는 나보다 하는 일이 더 많아."라며 혀를 내둘렀다. 아침저녁 경제 방송을 듣고,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책은 육아서, 경제서, 마음공부 그리고 읽고 싶은 것을 넘나드는 중이다. 가끔 구독 중인 채널에 끌리는 영상도 봐야 하고, 뉴스 등등 챙겨봐야 할 것들도 있다. 건강한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하고 인증하는 것도 빼먹으면 안 되는 일과 중 하나다. 그러고도 틈이 나면 공부하고 싶은 것들이 컴퓨터 바탕화면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여기까지는 완전히 개인적인 일상이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끼니를 매번 챙겨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한다. 중간중간 장도 봐야 하고 빨래와 청소도 해야 한다. 남편이 저녁 청소와 아이들 씻기기는 도맡아 해 주니 그나마 저녁 시간에는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어떻게 보아도 분주한 하루임은 틀림이 없다.   


이러다 보니 늘 머릿속은 서너 가지 생각이 함께 한다. '아, 이걸 해야 하는데...' 설거지를 하며 오디오북으로 책을 읽거나 경제 방송을 들으면서도 중간중간 머리가 쉴 틈이 없다. 그러다 순간 놓친 것이 있으면 메모하고 다시 듣고... 내가 느끼기에도 하루가 너무 분주하고 바쁘다.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이렇게 노력해야만 하는 걸까? 매번 쫓기는 듯한 느낌. 아이들에게 너무하고 있다는 느낌을 이제 지우고 싶었다. 



Photo by Claudio Hirschberger on Unsplash


꼭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만 얻어지는 여유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으니 마음가짐을 우선 바꿔보자 싶었다. 


매일 읽고 쓰기를 시작한 지 넉 달. 이제는 조금 압박감에서 벗어나도록 의식적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욕심이야 한도 끝도 없지만 할 수 있는 선에 대한 나름의 타협을 하고 있는 중이다.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먹고 지내는 시간이 먼저다. 이렇게 정하고 나니 난이도가 있는 책은 잠시 밀쳐두게 되었다. 조금은 쉽고 가볍게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책들로 책장을 다시 구성했다. 글은 틈틈이 읽고 있는 책 중에 어느 한 구절에서 생각이 떠오르면 쓰기로 결정했다. 그러다 보니 쓰는 시간이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글 쓰는 압박감은 조금 줄었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잠시 시간이 빌 때. 저녁을 준비하다 잠시 5분. 아이들과 같이 낮잠 자고 일어나서 잠깐 10분. 이렇게 모인 시간마다 글을 쓴다. 


예전만큼 많이 생각하지도 못하고, 이번 달 계획했던 글쓰기와는 방향이 틀어졌지만 속상하지는 않다. 이건 이대로 가치가 있을 거라 믿기로 했다. 의외로 좋은 점도 있다. 이렇게 쓰니 글에 대한 기대치가 없다. 잘쓸 수도 없고, 잘 쓰기도 쉽지 않으니 그저 끈을 놓지 않았으면 되었다 하는 정도로 만족하게 된다. 


챙겨 듣던 경제 방송도 아침 잠시, 저녁 설거지 중에 잠시만 듣는다. 놓친 것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꼭 들어야겠다는 방송은 체크해 두었다가 다음 날 오전 가사 중에 다시 들으면 된다. 하는 일은 비슷한데 조금씩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책 속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한 장면이 나온다. 


태평양 한가운데, 조난당한 한 남자가 튜브를 붙잡고 표류하고 있다. 그때 저 멀리서 똑같이 튜브를 붙잡은 한 여자가 헤엄쳐온다. 그들은 나란히 바다 위에 떠서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잡담을 나눈다.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눈 후 여자는 어딘가 있을지 모를 섬을 찾아 헤엄쳐가고, 남자는 그 자리에 남아 맥주를 마신다. 여자는 이틀 낮, 이틀 밤을 헤엄쳐 어딘가의 섬에 도착하고, 남자는 그 자리에 남아 술에 취한 채 구조대에 의해 구조된다.  p.25

 

작가는 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열심히 하지 않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가지게 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마 대부분의 우리들은 열심히 헤엄친 '여자'에 쉽게 감정 이입할 것이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난 노력을 이만큼 해서 얻었는데, 넌 노력을 안 하고 얻었지 않느냐.'라고 분노할 수 있다. 그런데 남자는 정말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일까?


책은 여자가 미처 눈치재지 못해서 그렇지 남자와 여자 모두 '운'이 있었기에 구조가 된 거라 설명한다. 여자도 헤엄친 방향에 섬이 있었던 것이 운이었고, 남자도 그 자리에서 구조된 것은 운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나의 생각을 조금 더 보태자면 여자는 헤엄치는 노력을 했고, 남자는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용기를 내는 노력'을 한 것이라 말하고 싶다.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 역시 노력이다. 영원히 구조되지 않아 여기에서 죽으면 어쩌지? 남자도 불안하지 않았을까? 다만 남자는 그 불안에 휩싸이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열심히 노력했다고 반드시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열심히 안 했다고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 p. 29


작가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 비례하지 않음을 인정하면 한결 편안해진다는 이야기를 한다. 물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부귀영화가 내 손에 떨어지길 기다리라는 의미가 아님을 똑똑한 나의 독자들은 잘 알리라 믿는다. 그래서 말이다, 이 책이 말하는 것처럼 너무 지쳤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의 방향을 조금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지금 그렇게 노력의 방향을 바꾸어 모두가 만족스러운 시간을 갖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를 위해 필요한 위로들을 찾아 읽으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한다. 이 선택의 끝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언젠가 다시 숨도 쉬는 것을 잊을 만큼 다시 열심히 살게 될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조금 더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여러분도 이런 해방감을 맛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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