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콕맘 예민정 Aug 20. 2020

'대충'을 찾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대충이 없었네.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어느 사인가 '뭐하고 놀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엄마가 관여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늘 같은 듯 다른 놀이를 찾아내지만 엄마가 거들면 같은 놀이도 재미가 배가 되는 기적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가끔 놀아주는 만큼 엄마는 색다르게 놀아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뭐 그런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기도 하다.


오늘은 '종이비행기를 접어 골대 안에 넣기'를 했다. 몸을 많이 쓰는 게 재밌을 것 같아 시도했지만 역시나 의도대로 되는 것은 없다. 나는 열심히 정석대로 종이비행기를 접는다. 첫째는 몇 번 하다가 가위와 풀을 가져와 종이비행기를 꾸민다. 관심 없이 로봇 놀이 중이던 둘째가 느닷없이 종이비행기 접기에 열의를 보인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접는데.... 저렇게 접는 게 훨씬 오랫동안 나는구나! 더 길다. 크게 감탄해주고 접는 법을 배운다. 신이 난 둘째가 종이비행기를 접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던 색종이와 A4용지를 모두 사용해 종이비행기를 다 접었다. 어제 배송받은 물품이 담겨있던 커다란 종이봉투를 골대 대신 사용하기로 했다. 접어놓은 비행기를 각자 들고 출발선에 섰다. 이제 모두 날린다.


Photo by Reza Rostampisheh on Unsplash


종이비행기가 골대 안으로 들어가는 확률은 7/105. 그것도 마지막에 아이들이 골대 앞에 서서 던져 넣은 것이다. 종이비행기가 잘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본격적인 놀이의 변수는 이제껏 관심 없던 막내가 비행기에 관심을 보이면서부터이다. 크고 작은 비행기를 모아 하늘로 던지며 놀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다 구겨진다. 둘째는 운다. 첫째는 자기 비행기 사수하기에 바쁘다. 그러다... 결국 모든 비행기 형태로 보이는 종이 뭉치를 봉투에 담았다가 아이들 머리에 뿌려주는 놀이가 되었다. 뭐, 늘 그렇지만 놀이가 무슨 법칙이 있겠는가. 그냥 놀고 싶은 대로 노는 거지.


사실 아이들은 아빠랑 노는 시간을 더욱 좋아한다. 엄마는 주로 책을 읽고 자기 공부하기 바쁜 이유도 있지만, 재밌게 놀지 못하기 때문에 엄마랑 놀이에는 별로 미련이 없어 보인다.

나는 좀 꽉 막힌 스타일이라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골대에 넣어요'하는 놀이를 하면 정석대로 비행기를 접고 날려서 골대에 넣기만 한다. 비행기를 접다 꾸미기로 바뀌지도 않고, 구겨서 던져 넣는 법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저 주어진 룰대로만 정석대로만 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나도 아이들도 같이 노는 게 별로 재밌지 않았다. 놀이의 룰을 따르지 않는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치기 바빴고, 아이들은 엄마가 재밌게 노는 걸 자꾸 방해한다고만 느꼈으리라.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허용범위가 넓은 아빠와 놀기를 더 좋아하고(지금도 그렇다) 엄마는 그저 밥이나 주고 혼내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나는 무언가에 한번 꽂히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반드시 끝장을 봐야 한다. 그저 가벼운 취미 생활이 되어도 괜찮을 텐데, 왜 나는 그 정도 선에서 멈추지 못하는 걸까. 왜 나는 뭘 해도 적정선을 모르고 끝까지 달리고야 마는 걸까. <걷는 사람, 하정우> p. 216 


솔직히 이 구절을 처음 읽을 때는 '나도 이런 성격이면 좋겠다.' 했었다. 끝장을 보는 성격. 성취를 이루거나 목표를 달성해야 끝내는 성격이길 바랬다. 끝까지 하는 끈기, 이루고야 마는 성취욕 이런 게 없어서 뭘 하건 성과를 보기 전에 포기해버리는 내가 참 싫었다. 그 결과, 해 본 것은 많지만 무엇 하나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이 없다는 점이 내게 가진 불만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게만 생각했었는데, 최근 지인과의 대화 중에 들은 말이 "이 언니, 대충이 없네. 대충이! 뭘 그렇게 잘하려고 해!"이다.

그러고 보니 잘하지 못하는 걸 부끄러운 거라 생각했다.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했었듯이) 남들에게 보이는 어떤 것이든 보는 이가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었다. 특출 나게 잘하거나 뛰어난 결과물을 낼 만큼 시간을 투입할 수 없으니 기본에라도 충실해야지. 대충 하지 못하고 지금 수준에서 뽑아낼 수 있는 결과치를 모두 뽑아내야 하는 성격이었다. 그렇다 보니 초반에 배우고 익숙해지는 속도는 남들보다 많이 빠르지만 쉽게 지치기도 했다. 빠르게 지친 만큼 쉽게 "이만하면 됐어." 라 말하며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 두리번거린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게 필요한 것은 '대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좀 적당히 하고, 좀 대충 하면서 길게 길게.... 아이들이 내게 가르쳐준 오늘의 교훈이랄까. 덕분에 내게 필요한 부족함의 정확한 정체를 알게 되었다. '대충'하면서 지치지 말고 끝까지. 

글을 이렇게 쓰면서도 '내일은 종이 텐트에 그림을 어떻게 그리지' 고민하는. 나는 '대충'을 많이 찾아야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