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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Sep 25. 2020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방법

진심으로 꾸준히

최근에 지인 소개로 알게 된 유튜버가 있다. 그녀는 가사 노동과 육아만 해서는 안될 것 같아서, 뭐든 해야 할 것 같아서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정말 소소하게 시작했나 보다 했는데, 영상을 보니 그게 아니다. 촬영과 편집에 들인 정성이 보통이 넘는다. 브이로그라지만 이미 편집을 고려한 촬영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이 느껴졌다. 그녀를 보면서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건 없다는 걸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충분한 준비와 정성을 들이고 나서, 준전문가쯤 돼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기록의 쓸모> 저자 이승희 씨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책을 통해 팬이 된 독자가 작가의 블로그를 방문해 아주 오래전 글까지 모두 읽고 연락을 해왔다. 어설프고 다듬어지지 않은 예전의 글은 지우는 것이 어떻겠냐고. 작가에게 오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며 조심스럽게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흑역사도 역사다." 부족해 보이지만 그 글들이 있어 지금의 자신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자신은 그 글들을 지우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어설프게 시작했지만 다듬어가며 점점 좋아지는 방향으로 가는 일들도 있고, 처음부터 잘 준비해서 최선의 결과물을 내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시작해보는 것이 더 낫고, 아무렇게나 시작하는 것보다는 많은 준비와 실력을 갖추고 시작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끝까지 놓지 않는 꾸준함이 아닐까?




얼마 전 <킵 고잉>을 읽고 저자의 조언에 따라 가끔 똑똑해지는 내가 시키는 일은 일단 시작하고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중 하나가 읽겠다고 마음먹은 책은 웬만하면 읽거나 곁에 두려고 한다. 바로 읽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읽게 되니 시작이 반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책 소개를 보고 '읽고 싶어!' 하는 책이 생기면 서점으로 달려가 바로 훑어보는 것이 제일 좋지만, 현실은 집 밖은 위험해서(라고 쓰고 아이들에게 발목 잡혔다고 읽자) 모든 것을 배달에 의지해 사는 중이다. 별 수 없이 소개글과 영상에 의지해 마음에 불을 지피는 책은 구입을 하고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10개가 넘는 명함을 가진 저자가 소개하는 미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곳이었다. 개인인 나도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마 내가 가진 것 중에 세상에 쓰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까 싶은 마음이 몽실몽실 솟아올랐다. 물론, 며칠이 지난 지금은 그때의 두근거림도 사라졌고, 나는 여전히 쓸모가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다. 그래도 가끔 똑똑한 나를 믿고 '닥치고 일단 해'라며 주문을 거는 중이다.


솔직히 책이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초반부에는 속도감 있게 읽었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자꾸만 딴생각이 끼어들었다. 책의 내용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나와 상황이 맞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이 책은 직장인들, 특히 퇴사를 염두에 두고 있거나 퇴사를 하고 싶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나처럼 이미 경력이 단절되어 사회생활에서 벗어난 지 오래된 사람. 회사와 연관된 어떤 것도 다시 찾기 쉽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 시절을 돌아보며 못했던 것들을 후회하게 만드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이런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회사 생활을 했군.' 몹쓸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을 막는 것만으로 제법 힘이 들었다.


평생직장이 없는 요즘이다. 전 세계가 팬데믹에 빠지면서 이미 직장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아직 직장을 다니는 이들도 언제 회사에서 쫓겨날지 몰라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퇴사는 번지 점프와 비슷하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안전 장비를 갖춘다면 뛰어내릴 때의 아찔함을 즐길 수 있고 그 순간이 주는 해방감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번지 점프대에 오르면 두려움에 뒷걸음만 치다가 떠밀려 떨어질지도 모른다.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너무도 명확해서 모두가 퇴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더욱 타당하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4계급]

- 원격근무가 가능한 노동자 
노트북으로 장시간 일할 수 있고 화상회의를 하거나 전자문서를 다룰 수 있으며 전문성으로 무장한 원격근무가 가능한 노동자 

- 필수적 노동을 해내는 노동자
사회가 위기에 빠졌을 때 꼭 필요한 일을 해내는 사람들. 팬데믹 상황에서도 일자리를 잃지는 않지만,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의사, 간호사, 육아 노동자, 음식 배달 및 공급자, 창고 운수 노동자, 약국 직원, 위생 관련 노동자, 경찰관, 소방관, 군인 등 )

-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
제조업 직원, 소매점이나 식당에서 일하는이 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해고된 많은 사람들 

- 잊힌 노동자
이민자 수용소, 이주민 농장 노동자 캠프, 노숙인 시설 등에 있는 이들. 물리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공간에 있어 감염병에 가장 취약한 계급

출처 : <개인의 시대가 온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아찔하다. 답은 정해져 있다. 행동으로 옮기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나는 평범해서 별로 특출 난 게 없는데.... 할 수 있을까?'


나도 같은 생각을 한다. 저자는 계속해서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 내에서의 자신의 장점을 찾아보라고 한다. 유통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회계업무를 맡고 있다면 어느 누구보다 재무구조와 회계처리에 대해서만큼은 전문가이지 않느냐는 논리이다.

문제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앉지 않은 나 같은 전업 주부는 무엇을 특기로 무기를 장착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저자는 강연을 통해서 말한다.


"무엇이든 뾰족하게 날을 세우세요. 예를 들어 블로그 마케팅을 한다고 하면 관련 제품을 브랜드별로 다 구입하고 하나하나 꼼꼼히 리뷰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최고 점수를 받은 제품을 공동 구매하는 식인 거지요."


개인의 시대라고 해서 이 시대가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과거보다 좀 더 많은 역량을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시대가 온다> p. 22


이 책의 기획자(저자가 아니다)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우리에게 말한다. "진심을 담은 지속성으로 계속하세요. 그렇게 하다 보면 밑 빠진 독에도 물이 차는 날이 옵니다." 



Photo by Ruben Hutabarat on Unsplash


진심을 담은 지속성으로 물이 차는 날까지 계속하라는 말에 최근 알게 된 유튜버가 떠올랐다. 그냥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수 없어서 유튜버를 시작했다고 하던 그녀의 말이 좀처럼 잊히지가 않는다. 진심으로 무엇이든 해야겠기에 느리지만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계속해서 했던 그녀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렇게 쌓인 한 달이 일 년이 되고 십 년이 되면 전문가가 되어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 무엇을 진심을 담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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