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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Dec 18. 2020

이름

예민각에서 

우리 집 아이들은 다양한 별명으로 불린다. 쌩쌩이(빠르게 달리고 싶다고 해서), 천둥이(천둥벌거숭이 같아서), 도똥이(똥을 좋아하니까 이름 뒤에 붙여서)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호적에 적혀있는 이름보다 많이 불리는 애칭은 따로 있다. 무릇 애칭이라 함은 사랑스러움을 가득 담은 ‘보배’쯤 되어야 할 텐데 너무 막 부르는 건 아닌가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론은 '개똥이'가 되었다.


이름을 불러서야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를 떠올리면 더없이 소중한 아이들을 이렇게 불러도 될까 싶기도 하지만, 이만큼 정감 가고 입에 착 붙은 애칭을 다시 찾기가 힘들다. 어느 집이나 아이들이 귀하다 못해 최고 상전인 경우가 많으니 적당한 위치를 알려주기에도 나쁘지 않다며 합리화시키는 중이다. 덧붙이자면 "개똥아!"라고 부르면 화를 내지만 화를 내는 것 같지 않은 느낌도 든다. 그런 의미에서 제법 괜찮은 애칭이라 생각한다.


이슬아 작가는 [심산단련]에서 ‘행복도 불행도 언어와 함께 실체를 획득했다. 인간은 불행의 디테일을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확히 불행해지는 존재 같았다.’라고 했다.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준다는 건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보낸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것이 ‘개똥’이 되었건 ‘보배’가 되었건 애칭으로 불리기까지 무엇으로 부를지 어떤 의미와 마음을 담을지 부르는 이는 집중해서 그만을 생각한다. 언어와 함께 실체를 획득한다는 작가의 말은 말이 되어 나오는 순간까지의 대상에 몰입한 에너지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여보, 나도 글 쓰는 공간에 이름을 붙이면 좋겠어. 만들어 줘.”


작명 센스라고는 개똥만큼도 없어서 아이들도 개똥이라 부르는 사람이다 보니 아무리 떠올려도 작업하는 공간에 알맞은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쪽으로 나보다는 센스 있는 남편 찬스를 쓸 요량으로 아침부터 떼를 썼다.


“음... 작업실? 피시방? 게임방? 놀이방?”

“아니, 좀 그럴 듯하고 의미 있는 걸로 생각해 봐. 막 거기에 계속 들어가서 글을 써야 할 것 같고 그런 느낌으로."

“놀이방 좋잖아. 놀이처럼 계속 거기 있어라. 크으.”

"로판 소설 보면 사랑은 '은현각', '월하정' 이런 데서 이뤄진단 말이야. 그런 거 비슷하게!”


본인은 못해도 요구 사항은 정확하다. 남편은 반나절 동안 여러 가지 후보를 내세웠다. 지나면 생각도 잘 나지 않는 이름들을 들먹이며 웃고 째려보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남편은 유레카를 외치듯 말했다.


“예민각! 어때?”

“예민각?” 속으로는 '또 장난이군.' 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재주 예, 힘쓸 민, 집 각. 재주에 온 힘을 다하는 곳이라는 뜻이지. 음하하하.”


어! 풀이가 마음에 쏙 들었다. 재주에 힘쓰는 곳이라니. 어사화라도 하나 구해서 작업할 땐 쓰고 해야겠다며 농담을 나누고나서 작업실 입구에 ‘藝忞閣’ 현판이 붙었다. 저 자리에 앉으면 엄마가 예민해지지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도 덧붙었다.


아이에게 이름을 짓고 불러주는 것처럼 꿈도 자주 불러주고 아껴줘야 한다. 말로 글로 꿈을 가까이에 두고 매진하는 것은 0.1%의 재주를 타고나는 것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에는 긴 시간 지속해서 한 가지에 매달리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 나온다. 피실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첫 번째 그룹은 1년 정도의 시험 기간을 잡고, 2주마다 26회에 걸쳐서 학습한 것을 암기하게 시켰다. 두 번째 그룹은 4년 동안 두 달에 한 번씩 첫 번째 그룹과 똑같이 26회에 걸쳐 암기하게 시켰다.

그 결과. 첫 번째 그룹 학생들이 5년 후 학습내용의 56%를 기억한 것에 반해 두 번째 그룹 학생들은 76%를 기억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기간만 늘렸을 뿐 실제 학습시간은 두 그룹이 동일했다는 것에 있다. 이 실험을 근거로 노력의 총량이 같더라도 끝점을 길게 갖다 놓을수록 학생이 새로운 발견을 하고 세계적인 성취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결론이 나왔다.


투입된 총량이 같고 단순히 끝점만 늘린다고 해서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인 성취를 이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 실험은 기억력에 관련된 실험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에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비슷한 듯 다른 사례들로 끝점을 늘리는 것이 몰입한 이해를 지속하는 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준다는 확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이 실험을 전적으로 믿고 싶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하드디스크를 보다가 우연히 2011년에 쓴 ‘나의 꿈 나의 비전’이라는 글을 봤다. 문예 창작학부에 입학해서 글쓰기를 배우던 중 과제로 쓴 글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글 속에는 ‘10년쯤 뒤에는 내 이름으로 출간된 소설책 한 권 책장에 꽂아두었으면 좋겠다.’는 문장이 있었다.


글을 읽으면서 두 번 놀랐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무슨 일을 하건 10년 단위로 계획했음에 한 번, 그 꿈을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다시 부여잡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이번에는 십 년 뒤가 허망하지 않게 잘 부여잡고 현실로 만들어봐야겠다. 보물지도를 만들어 시각화하는 것이 좋다던데 그것도 해봐야겠다. ‘재주에 힘쓰는 곳, 예민각’에서 책 한 권이 나올 때까지 끝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늘려가면 가늘고 길게 몰입을 지속하리라 다짐해본다.


비슷한 꿈을 안고 오늘도 혼자 또는 같이 매일 글쓰기를 이어가는 이들과 나, 모두를 응원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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