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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Dec 12. 2020

기다리는 설렘

한 달만에 도착한 의자



옮겨 다니며 글을 쓰다 보니 잦은 충격에 노트북이 기어이 망가졌다. “아, 나도 작업실 갖고 싶다.” 속상함에 불쑥 말하고 보니 진짜 작업실이 있었으면 싶긴 하다. 좁은 집에 작업실이 웬 말인가 할 법도 하건만 의외로 남편은 쉽게 대답한다.


“만들면 되지.”

“어디에?”


이럴 때 보면 평소에 어떤 방향의 사고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남편은 뭐든 된다고 생각하는 반면 나는 대부분 안된다고 보는 편이다.


“거실에.”

“티브이는?”

“애들 방으로 넣고 그 공간 비우면 되지.”

“어?!”


너무 쉽게 대답한다. 말이 되긴 하지만 현실성이 없다고 여겼다. 거실을 어떻게 작업실로 꾸민단 말인가. 안 그래도 뛰어놀 공간이 부족한데….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다….”


잠시 행복한 상상을 하고 그날 밤 작업실을 갖는 꿈을 꿨다.


다음 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못할 것도 없다며 작업을 시작했다. 당장은 책상이 없으니 가지고 있던 접이식 식탁의 양 날개를 펼쳐 예상한 자리에 놓는다.


“책상이 들어오면 대충 이 느낌이야. 괜찮겠지?”


말도 안 된다던 작업실은 점점 현실이 되어 눈앞에 모습을 갖춰갔다. 하루에 하나씩 거실과 아이들 방이 변했다. 그즈음 책상용 의자를 하나 구입했다. 식탁용 간이 의자를 볼품없이 놓아두기엔 모양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 높이가 맞지 않아 몸이 피곤했다.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


일주일에 걸친 작업실 조성이 끝나고 이제 의자만 도착하면 완성이다. 그런데 도통 배송 소식이 없다.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에 도착하는 시대에 감감무소식인 의자는 애를 태웠다. 그제야 후기를 찾아보니 대체로 한 달가량 배송 지연이 있음을 알아챘다. 지연이 될 거라던가, 언제쯤 발송이 예상된다던가 하는 친절한 메시지 따위는 없었다. 항의성 문의에 달린 답변으로 배송기간을 추정할 뿐이다. 

귀차니즘을 겸비한 게으름뱅이는 다들 늦게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느긋하다. '나만 늦게 받는 것도 아니라는데, 뭐.' 늦은 배송을 이유로 구입을 취소하면 검색부터 다시 해야 한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그러고 싶은 생각 전혀 없었다. 며칠 늦는다고 무슨 대수일까.


며칠 전, 택배사에서 오늘 의자가 배송될 예정이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갑자기 마음이 바쁘다. '의자가 온대~' 택배사 배송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이들이 장난감 배송을 기다리는 마음이 이러했을까? 매번 '기다려 봐.'라며 시크하게 무시했던 것이 미안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 깜깜한 밤이 되도록 의자가 오질 않는다. 내 의자 어디 갔지?


“저녁 늦게 다시 배송하거나, 내일 오겠지.”


남편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지만, 조바심이 났다. 한 달가량 아무렇지 않게 기다렸던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온통 의자 생각이 가득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배송기사에게 연락을 한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오늘 배송 예정이라던 의자가 안 와서요.”

“아! 그거 미배송 찍었는데 반영 안 됐던가요? 너무 커서 실을 공간이 없었어요. 내일 오전에 배송해 드릴게요.”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얼굴이 빨개지고 머리가 간질거리게 민망했다. 배송 문자를 받고 내일 배송이 될 거라는 통화가 이루어진 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다섯 시간. 손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던 어느 시절부터 저녁에 주문하면 새벽에 배송되는 현재까지를 온몸으로 ‘빠르게 감기’ 한 느낌이다. ‘당일 배송’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Photo by Element5 Digital on Unsplash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주문을 하면 2~3일, 지연되면 일주일 정도의 배송은 당연했다. 당시에는 배송정보를 실시간으로 알 수 없었고, 주문을 하면 며칠씩 기다리기 일쑤였다. 일주일이 지나도 오지 않아 전화를 해보면 누락됐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미안하다며 빠르게 보내주어도 2~3일이 지나야 물건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지냈어도 세상은 문제없이 돌아갔다.


빨라진 게 어디 택배뿐일까? 실시간으로 나누는 톡. 상대가 확인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는 문자. 원하면 바로 연결되는 화상 통화까지.


그립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어느 시절을 떠올리니 삐뚠 글씨로 꼭꼭 눌러쓰던 손 편지도 생각나고, 보내 놓고 확인을 기다리던 메일도 생각난다. 이제는 재현할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기다리는 설렘이 사라졌다. 선물을 곱게 포장해 우체통에 넣을 때 리본이 구겨질까 몇 번을 만지작거리던 망설임. 편지를 보내 놓고 답장을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던 핑크빛 애달음. 보낸 메일을 상대가 확인했음을 알아챘을 때 발가락이 오그라들던 긴장감. 짐작할 수 없어 기다릴 수도 없던 첫사랑의 답장을 받았을 때 기쁨.


만년필의 사각거림이 제법 즐겁게 느껴지는 요즘. 잃어버린 설렘을 찾아 손편지라도 써볼까? 캐럴을 들으니 손이 빨개지도록 꼭꼭 눌러쓴 카드라도 한 장 보내야 할 것 같다. 누구한테 보내지? 



코로나 19가 다시 확산되면서 배송 지연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기사가 보인다. 쏟아지는 물량을 소화하느라 밤낮없이 고생해주는 이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느긋한 설렘을 가져보자. 예상대로 도착한다면 감사한 일이고 조금 더 늦어지면 하루 더 설레면 되는 일이다. 고작 한나절을 못 기다려 배송기사에게 연락한 이가 하기에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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