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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Dec 25. 2020

잠시 주저앉기

인정하고 넘어가는 중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을 가지 않은 지 정확하게 한 달. 유독 힘들게 느껴진 이번 주. ‘3월보다는 할 만한 걸~’하던 자신만만함은 어디로 가고 별것 아닌 실수에도 분노의 활화산을 분출하는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영하 6도까지 내려갔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저녁을 먹자마자 집을 나섰다. 가볍게 커피 한 잔 사 오는 정도의 산책을 계획했다가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집에 돌아오니 거의 두 시간가량을 서성이다 귀가했음을 알 수 있었다. 추운 날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조금 숨 쉰 듯한 느낌이었다.


역시 세 아이와 함께 24시간을 부대끼며 지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 겪었던 3월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나 보다. 최선을 다해  컨디션을 유지하려 노력해도 종종 무너지고 만다.


계획한 원고는 반도 쓰지 못했고, 독서도 도통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오늘도 멍하니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고 있다. 다시 멍텅구리가 된 상태다. 오늘 내가 겪고 있는 현상은 번아웃에 가깝다는 걸 깨닫는다. 에너지가 소진된 것이 분명하다.


번아웃이 왔음을 알아도 엄마는 쉴 수가 없다. 정해진 시간에 기상해서 매 끼니 식사를 마련해야 하고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먹질 않는다. 까다로운 것들!!!) 적당한 간식도 준비해야 한다. 틈틈이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와 머리카락을 청소기로 없애야 하고 아이들의 부름에 답을 하며 놀이도 해주어야 한다. 

학교를 가지 않는 큰 아이의 학습 진도도 체크해야 하고, 셀 수 없이 흘려보내는 많은 시간 중에 의미 있는 시간을 어떻게든 마련해 주기도 해야 한다. 놀기만 하는 일상에서 아이의 학습 공백을 걱정하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도 엄마의 몫이다.


***


둘째와 셋째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서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마련했다고 연락이 왔다. 올해는 크리스마스 행사를 할 수 없으니 선생님들이 인형극을 준비하여 영상을 보내주셨다. 선물 증정식을 대신해서 산타 할아버지가 아이들 선물을 어린이집으로 가져오신 장면을 찍어 아이들마다 메시지도 남겨주셨다. 그 선물을 받으러 어린이집에 다녀왔다.


“어머님, 괜찮으세요?”


막내 담임선생님은 나의 안부를 걱정스레 묻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세 아이를 육아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지 알아주는 것 같아 들을 때마다 가슴속에 무언가가 울컥하고 만다.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는 날도 있고, 가끔은 안 괜찮다고 말할 때도 있다. 여과 없이 힘들다고 말해버릴 때면 나보다 열댓 살은 어려 보이는 선생님이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인다. 농담이라며 웃어 보이고는 선생님과 이렇게 이야기하니 위로가 된다며 너스레를 떨어보지만,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겠다 싶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엄마들이 코로나 블루를 겪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아이들과 있으니 힘들다는 글을 쓰면 키우지도 못 할 거면서 애는 왜 낳았냐는 이야기부터 엄마 자격 운운하는 말까지 여러 가지 비난이 들리기도 한다. 엄마 자격과 하루 종일 육아하는 힘듦은 다른 문제라는 걸 멋지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그냥 비난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이렇게 푸념하는 게 엄마 자격이 없는 거라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뭐가 됐건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 자격은 없어도 엄마는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냥 그런 걸로 하지 뭐, 하고 만다.



엄마가 번아웃이 왔는지, 잠을 잘 자는지 아이들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저 오늘은 엄마가 기분이 좋은가? 그래서 얼마나 놀아주려나? 뭘 하고 놀아주려나? 나를 얼마나 바라봐 주려나? 혹시 기분이 좋으면 유튜브를 보여주려나? 과자를 먹도록 허락해주려나? 이런 것들에 온통 관심이 쏠려있을 뿐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제때 자고, 잘 챙겨 먹고, 운동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이것마저 무너지면 자칫 너도 죽고 나도 죽자는 식으로 아이들을 잡을 수 있다. 알면서도 글을 쓰는 지금도 수면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예민한 상태다. 며칠째 잦은 뒤척임으로 개운하게 잠들지 못했다. 숙면이 안 되는 이유에 밀린 글쓰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기에 얼른 해치우고자 아이들이 잠드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예민각’으로 나간다.

글이 써질지 알 수는 없지만 뭐든 해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깜빡이는 커서를 보면서 세미-번아웃에 가까운 상태임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글로 쓰자고 마음먹는다.



Photo by Max Bender on Unsplash


일상적이지 않는 시기가 길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정신적 번아웃을 겪고 있을 것이다. 극도의 피로감으로 어딘가 고장이 날 정도라면 충분히 쉬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는 게 선택지에 없는 사람도 있다. 너무 힘들지만 쉴 수도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없어 멍하게 몸을 움직이는 이들에게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 나 역시 이 글을 쓰고 나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댓글에 위로를 받을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즐기는 것도 한계라는 게 있다. 내가 원하는 건 번아웃을 잠재울 완전한 쉼이 아니다. 잠시 주저앉아 추스르는 찰나, 다시 일어나 움직일 여지를 주는 찰나 같은 휴식이 필요하다. 부디 나의 푸념 섞인 글이 우리에게 찰나 같은 휴식이 되었으면 한다. 모두가 잠깐 위로를 받고 다시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그러하듯이. 이제 다시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푹 쉬는 건 조금 더 있다가, 일상이 평온해지면 그때 하자. 오늘 하루도 고생이 많았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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