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베이킹 수업은 전분의 호화를 이용한 빵 만들기가 주제이다. 전분의 호화를 쉽게 이해하자면 밥 짓기를 떠올리면 된다. 쌀이 끓는 물에 닿아 투명해지면서 점성을 가지게 되는 상태가 바로 전분이 호화 반응을 일으킨 상태이다. 전분이 호화되면 쫄깃한 식감을 가지게 된다. 우리가 좋아하는 쫀득한 밥은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갑자기 전분의 호화? 뭐 하자는 거지? 베이킹으로 방향을 전환했나 싶은가?
방향을 바꾼 게 아니다. 임정섭의 <글쓰기 훈련소>를 읽다 보니 '글 쓰는 거랑 빵 만드는 거랑 다를 게 없잖아!' 싶은 마음이 들었다. 베이킹을 하고 매일 책을 읽고 쓰면서 느낀 공통점 몇 가지를 정리해본다.
전분의 호화를 이용한 탕종 식빵은 베이킹을 하기 전에 미리 탕종을 준비해 두는 것이 포인트다. 탕종은 3~4시간 전 또는 하루 전에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탕종을 이용해서 식빵을 만들면 쫀득한 식감이 살아난다. 더불어 과발효나 과도한 오븐 스프링(빵이 구워질 때 부풀어 오르는 현상)도 줄여준다. 준비 과정이 더해지면서 더욱 맛있는 빵이 완성되는 것이다.
글쓰기도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탁! '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쓰려면 평소에 계속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이야기와 연결되겠구나.'. 에피소드가 생기면 '무슨 책의 무슨 내용과 연관시키면 좋겠어.'. 더불어 꼭 메모를 해야 한다. 브런치가 좋은 점이 여기에 있다. 메모를 뼈대로 저장했다가 글을 쓸 때에 살을 붙이고 가다듬어 발행을 하면 된다. 시작은 며칠 전이지만 발행은 마무리하는 날이 되는 것이다. (블로그는 처음 글을 작성한 날로 정렬된다. 별차이 아닌 듯 하지만 글을 매일 쓰는 입장에서 순서가 꼬이는 점이 흡족하지 않다.)
주로 오전 시간에 글을 쓰는 나는 잠들기 전부터 다음 날 무슨 글을 쓰지 생각한다. 아침을 차리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쓸까?' '저장해 둔 이야기에 이걸 덧붙여야겠어'. 머릿속을 찍어보면 한 귀퉁이에 늘 '뭘 쓸까'가 적혀있을 듯하다.
2. 정성스러운 노력을 충분히 들여야 한다.
식빵처럼 단순한 빵은 반죽이 특히 중요하다. 처음 재료가 섞일 때부터 100%의 반죽상태가 될 때까지 충분히 치대 주어야한다. 조금 팔이 아프다고,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이 과정을 대충 하거나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면서 완성도 확인없이 1차 발효에 들어가버리면 발효도 잘 되지 않고 완성된 빵도 맛이 없다. 반죽도 1차 발효, 2차 발효까지 모두 정성을 기울이고 충분히 노력해서 각 단계별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무슨 이야기를 쓸지 충분히 생각하고 틀을 잡고 써야 한다. 흔히들 초고는 쓰레기라고 한다. 그 말에 힘입어 일단 쓰고 잘라내고 고쳐 쓰고 다시 쓰는 과정도 필요하다. 맞춤법에서부터 문맥상의 오류는 없는지, 필요 없이 말이 길어지진 않았는지 단계를 정해 다듬어야 한다.(이렇게 쓰고 보니 퇴고가 짧아 많이 찔린다.) 그 모든 단계에서 충분히 정성스러운 노력이 들어가야 보기에 좋은 글이 완성된다.
3. 실패는 필수. 계속 똑같은 결과물을 얻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책으로 베이킹을 배웠어요. '의 함정이 있다. 책은 실패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실패를 '할 수도 있다'가 아니다. '해야 한다'이다. 책 대로만 하면 빵집에서 만난 것과 비슷한 결과물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절대 그렇지 않다. 베이킹 경험이 많은 사람도 특정 빵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계속해서 구워내는 데에는 실패의 과정이 반드시 있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었던 나는 '베이킹이랑 안 맞아.'라고만 생각했다.(고백하지만 알아도 소질이 있는 건 아닌 거 같다.) 베이킹 유튜버들의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글 속에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이 케이크만 20번째 굽고 있어요." "촬영이 잘못돼서 다시 구웠는데 이번엔 빵이 다르게 나왔네요." "레시피를 조금 수정해야겠어요."
티브이에서 나오는 장인들, 빵집에서 있는 갓 구운 빵들은 완벽해 보인다. 그 완벽함에 현혹되면 그전에 많은 실패를 겪었기에 눈앞에 완성된 결과물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기 쉽다.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
30분의 시간을 두고 글을 뚝딱 써내시는 분들이 있다. 매번 글쓰기에 1시간에서 3시간이 걸리는 나는 시간이 늘 부족하다. 시간의 한계를 지어놓으면 그 안에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해서 따라해 본 적이 있다. 결과는. 처참하게 실패하고 그냥 시간을 좀 더 확보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의 한계가 작용하는 범위도 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이 퀄리티가 높고 잘 정돈된 글을 쓰는 걸까? 어쩜 이런 글을 30분 안에 쓰는 걸까? 비교도 되고 좌절도 했다. 글을 쓰다가 풀리지 않아서 멈추고 저장해 둔 글만 해도 몇 개나 된다. 덮어두고 다른 주제로 쓰고 미션을 해낸 날도 많다. 한 달을 쓰면서 한 번 정도 글이 술술 써지는 느낌을 받은 날이 있다. 30분 만에 글을 완성하는 분들은 그런 느낌으로 매번 글을 쓰는 걸까? 그들은 실패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집에서 하는 베이킹의 장점은 100% 완벽하지 않아도 먹을만하면 그냥 먹는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쓰는 글이 100% 반죽으로 1차 발효-성형-2차 발효-굽기 까지 완벽하지 않았다고 한들 누가 뭐라고 할까? 쓰고 보니 맞춤법이 틀려있는 것도 많고 잘못된 내용을 쓰는 경우도 있다. 실수도 하고 실패를 해도 매일 쓰다 보면 기본 실력이 탄탄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처음부터 완벽한 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자. 부끄럽다고 쓰지 않으면 이마저도 남지 않는다.
4. 충분히 익을 시간이 필요하다.
식빵처럼 틀을 이용해 굽는 빵은 권장 시간을 최대로 지키고 충분히 구워주어야 한다. 윗면에 색이 났다고 굽는 걸 멈춰버리면 속까지 다 익지도 않고 형태도 무너지는 빵을 만나게 된다. 틀에서 꺼냈을 때 옆면과 밑면에 노릇하게 색이 나지 않은 빵을 본 적이 있다. 아차 하는 마음에 다시 틀에 넣어 구워도 형태는 찌그러지고 맛도 별로없다.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딱딱해지는 것은 피하기 힘들다.
글을 쓴다는 건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때문에 살아온 시간도 어느 정도 쌓여야 한다. 더불어 쓰는 시간도 충분히 필요하다. 만약 내가 20대에 지금과 같은 글을 쓰려고 시도했다면 하루에 8시간이 걸려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몸으로 살아낸 시간과 더불어 풀어내는 시간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시간을 거슬러 '빨리'를 추구하다 보면 설 익어 딱딱하고 먹기 힘든 글이 되고 만다. (꼭 나이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20대에도 깊이 있는 인생 이야기를 풀어내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은 짧지만 농도 깊은 삶을 살았으리라 짐작된다.) 글을 쓰고 인생을 살아가는 시간이 더해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지금도 익어가는 중이다.
5. 적당히 식혀야 한다.
갓 구운 식빵은 무척 맛있다. 결을 느끼며 뜯어서 먹는 빵은 아무리 비싼 빵을 가져온대도 비교가 되지 않는 맛이 있다. 하지만 식빵을 용이하게 먹으려면 한 김이 식은 후 빵칼로 예쁘게 잘라두고 먹어야 한다. 그래야 샌드위치도 토스트도 모두 가능하다. 너무 뜨거운 빵은 예쁘게 잘리지 않는다. 이미 잘려 포장된 식빵들이 뜨겁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을 처음 쓸 때가 생각난다. 대작가들이 집필하는 모습이 연상되면서 뭔가 인생에 큰 획을 긋는 양 의지를 불태웠다. 처음 열정이 불타오를 때는 욕심이 과하게 붙는다.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슈가 되는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다. 운이 좋아 핫한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래 두고 먹기에 좋은 글을 쓰긴 어렵다. 초반에 핫한 글의 행운을 맞이하면 비슷한 글을 쓰려고만 하다가 지쳐서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
적당히 한 김 식히고 글의 구조도 살펴가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적절히 녹아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글을 읽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며 어떻게 잘라야 읽기가 편할지 고려해야 한다. 나의 이야기를 쓰는 거지만 결국 읽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것은 잊어선 안 된다.
반달 쓰기부터 거의 두 달 정도 글을 썼다. 부족한 것이 글쓰기 실력만은 아닐 텐데도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욕심이 한창 끓어오르는 참이다. 왜 마음처럼 글이 나오지 않는지 조바심에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문득 빵과 다르지 않다는데 생각이 닿고 보니 덕지덕지 붙은 욕망들이 보인다. 빵을 실패했을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
충분히 읽고 많이 써보자. 시간이 필요한 일임을 스스로 받아들이자. 최선을 다하되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제 한 김 식히고 읽는 사람이 편안한 글을 고려하며 써볼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