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어렵지 않아요.

결국 음악의 본질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에 있다.

by 로지

'클래식'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혹시 양갈래 머리를 하고 우산을 쓰고 있는 손예진이 생각난다면, 좋다. 당신은 나랑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개인적으로 매인 포스터에 조인성이 크게 나오지 않은 점이 제일 마음에 안 든다. 미안하다. 농담이 길었다.


명품 가방을 마구 들고 다닐 만큼 부유하지는 않았어도 사업하시는 아버지를 둔 덕에 풍요롭게 자랐다. 대학생 때부터 자동차가 있었고 몇 백만 원씩 드는 호화 배낭여행을 부담 없이(나는 부담이 없었다. 부모님의 부담은 모르던 시절이다.) 다녀왔다. 사치하지는 않았지만 절약해본 적도 없었다.


그 시절 내게 문화생활은 돈으로 공허함을 채우는 최고의 사치재였다. 누군가 내일 뭐하냐고 물으면 "미안, 공연 예약해놨어." 할 때, 명품 가방을 들고 있는 것보다 짜릿했다. 누구나 가는 영화 말고 오페라나 뮤지컬을 보러 가는 게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즐기는 순간이 좋아서 대구-서울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티켓 가격이 있으니 누구랑 같이 갈 이유도 방법도 없다. 내가 좋은 날, 내가 좋은 시간에 혼자 훌쩍 다녀와도 되는 몇 안 되는 것들 중에 하나였다. 돌아보면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대상 없이 눈치를 봤다. 그래서인지 타당한 이유를 들어 혼자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그렇게 좋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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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rindam Mahanta on Unsplash



독립하면서 결혼하면서 그리고 친정집이 몇 차례 이사를 하면서 그 시절 모아두었던 많은 음반과 팸플릿들을 정리했다. 그러면서도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 모차르트 전집, 베토벤 교향곡 시리즈, 오페라와 뮤지컬 음반, 그리고 나를 처음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입문시킨 카라얀 지휘 음반 등. 분명 아이들이 자라면 같이 들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유튜브가 이렇게 발달하지 모르고 말이다.


음악 역시 문외한이던 내가 갑자기 클래식 음악을 즐겨보려니 쉽지 않았다. 음반으로 듣는 클래식 음악은 익숙해질 때까지 듣기만 해도 좋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연주회에 가니 음악이 끝난 건지 이어지는 건지도 구분이 안됐다. 혼자 박수 타이밍을 못 찾아 부끄러워하고는 다시는 연주회는 가지 않았다.

오페라로 눈을 돌렸다. 스토리가 있고 막의 시작과 끝맺음이 분명해 접근성이 쉬웠다. 같은 오페라를 다른 공연으로 보는 재미도 조금씩 생겼다. 누구와 공유할 수 없지만(진짜 잘 아는 사람에게는 찍 소리도 못 낼 정도이니) 혼자 고품격 생활을 한다는 기분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렇게 허영과 과시가 점철이 된 문화생활은 점점 나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경지(?)까지 올라 오페라 축제기간을 기다리거나 해외 유명작이 공연을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설레는 정도에 이르렀다.


이 대중이 원하는 것은 오락, 즐거움, 낮 동안 일과에서의 위안이었다. 그들은 신화 관련 지식이 없어도, 또 대본을 펼쳐보지 않아도 금방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음악 드라마를 원했다.
<유러피언> P.175



나의 겉멋 문화생활의 시작은 런던이었다. 잠시 언급한 호화 배낭여행(너무 모르고 가서 정말 돈을 많이 썼다)의 시작점이 런던이었다. 런던에 가면 '오페라의 유령'을 보는 거라기에 현지에서 티켓팅을 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고작 2박 3일 일정에 무리수를 뒀지만 운이 좋아서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면서 짧은 영어실력으로 팸플릿을 더듬더듬 읽어가며 공연을 봤다. 그럼에도 소름 끼치게 좋았다.

이 곳은 '오페라의 유령'만을 공연하는 공간입니다. 다른 곳에서 하는 건 오리지널이 아닙니다. 하는 듯한 느낌을 풍긴다는 것이 너무 신선했다. (나중에 한국에서 본 공연이 더 좋았지만 말이다.) 제법 낡았기에 깊은 전통을 느낄 수 있었다면 당시의 철없음이 너무 티가 날까? 이런 게 장인 정신인가? 하며 멋모르는 감탄을 했던 기억도 부끄럽지만 남겨본다.


<유러피언>을 보면 처음부터 모든 공연장에서 하나의 공연을 올렸던 게 아니라고 한다. 공연장을 찾을 수 있는 티켓 파워가 있는 계층(당시에는 귀족)은 한계가 있으니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주려면 웬만하지 않으면 계속 공연이 바뀔 수밖에 없다. 지금의 대부분 공연장들도 그렇게 운영을 한다.

산업 혁명이 일어났고 늘어난 부를 가진 계층도 생겨났다. 그들은 귀족을 대신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티켓 파워가 있었다. 거기에 철도가 놓이면서 사람들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지니 공연을 찾는 사람의 수가 많아진 덕에 유명한 공연은 지속적으로 올릴 수 있는 형태로 바뀐다. 짐작하건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어느 때인가 전문 공연장도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한 곳에서 한 공연만 해도 퀄리티가 좋으면 전 세계에서 찾아와 보는 시스템이라니. 마차 타고 이고 지고 대본과 악보를 궤짝에 실어 다니던 그 옛날 예술가들이 봤으면 천국이라고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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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Vlah Dumitru on Unsplash






혹시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드라마를 아시는가? 10년도 지난 일본 드라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원작은 만화책이었던 것 같다. 당시 노다메 열풍은 한국도 벗어나지 못해서 영화제였던가? 한국에서 행사가 있을 때 우에노 주리가 방문하기도 했었다.

줄거리는 피아노를 치는 여자 주인공(노다 메구미)과 트라우마를 가진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남자 주인공(치아키 신이치)의 사랑과 성장을 다룬 정말 만화 같은 이야기다. 만화, 드라마 모두 성공을 거둔 것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이 돋보였던 이유는 클래식을 시각화했다는 점에서 꽤나 깊은 인상을 남긴다.


악보로 발간된 오페라 아리아는 극장으로부터 가정의 거실, 살롱, 무도장, 뮤직홀, 술집 등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 아리아는 공원의 악대, 거리의 음악가 등이 연주하였고, 마침내 모든 사람이 그 아리아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일단 그 곡조를 알게 되자 사람들은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알고 싶어 했다.
<유러피언> p.186


<유러피언>에 따르면 처음부터 음악이 지금처럼 대중화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궁중에서 음악은 사교, 만찬, 무도회의 반주곡에 지나지 않았다. 사교의 장에 빈 틈을 매우는 정도, 모임을 만드는 핑계에 불과했던 음악이 점점 전문성을 갖추고 대중화된 것에는 복합적 요인이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 전반의 변화가 음악계에도 찾아온 것이다. 음악 공연은 귀족들만 즐기던 문화에서 부르주아 계층들까지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이어졌다. 인쇄술의 발달, 기차로 인한 물류 이송의 용이함, 피아노의 대중화 등이 맞물려 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악보'라는 수단으로 음악은 널리 널리 전파되었다. 어느덧 가정에서 음악이 연주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고(하이네에 따르면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그 음악이 어디에서 나온 건지 궁금해했다. 음악가 입장에서는 악보로 판매 수익도 올릴 수 있고 홍보의 효과도 누릴 수 있었던 셈이다.


정확한 데이터를 증명하지 못하긴 하지만 당시 노다메 열풍은 클래식계의 새바람을 일으켰다. 삽입되었던 곡은 다른 연주자의 버전으로도 판매량을 늘렸고, 클래식 채널에서는 새로운 청취자가 생겨났다.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원래도 유명하였던 음반들은 추가 발매를 했고, 열풍을 타고 모차르트 전집 등의 기획 앨범들이 쏟아져 나왔다. (뒤이어 노다메 영상에 스치듯 나오는 모차르트 전집은 나도 가지고 있다.)


당시 음악 전문가들과 클래식 애호가들은 이 드라마에 대한 비판을 많이 했다. 그만큼 인기가 있었다는 것에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원곡을 훼손할 정도의 각색이 많고 음악을 심하게 희화화한 것에 대한 비난도 쏟아졌다. 처음 클래식을 접하는 이가 이 드라마에 삽입된 음악을 들으면 왜곡된 음악으로 시작하게 되니 위험하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https://youtu.be/_iHeD2K7oLg


https://youtu.be/I6ZPvXsM0H4


자. 어떠셨는가? 너무 왜곡이 심하고 희화화해서 문제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클래식 애호가는 아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 같은 문외한이 들으면 뭐가 얼마나 왜곡된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드라마를 통해 그 옛날 처음 갔던 오케스트라 공연 도중 손뼉 칠 타이밍을 몰라 부끄러웠던 나를 극복하게 되었다. 음악은 즐기는 것이라는 기본에 충실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는 저렇게 검은 깃털이 솟아오르고 노다메의 연주처럼 아름다운 형태의 소리 알맹이들이 쏟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재밌지 않은가? 이후로 클래식을 즐기는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되었다. 가끔은 지휘자가 되기도 하고, 영상으로 표현된다면 이 음악은 어떻게 그려질까 상상한다.


덕분에 우리 집 아이들이 '오페라의 유령' 음반을 들으면서 같이 "아~~~~~"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손짓하며 깔깔거린다. 장엄하고 진지해야만 할 것 같은 클래식을 눈에 보이듯 다소 유아틱 하게 그려낸 그들의 해학에 박수를 치고 싶다. 감사하다. 덕분에 클래식도 유쾌하게 즐기게 되었다.





<유러피언>을 읽기 전과 읽고 나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지금 '유럽'이라 통칭되지만 그 안에는 분명 각각의 나라가 존재함을 새삼 깨달았다는 점이다. 당연한 사실 같지만 굉장한 의미가 있다. 무언가를 다른 시각에서 보는 첫 연습이라고나 할까? 세상에는 당연한 것도 없고, 그래야만 하는 것도 없는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유럽 여행을 하고 싶어'라고 하지 콕 집어 '프랑스로 여행 갈 거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클래식의 거장 베토벤, 모차르트... 이렇게 말하지만 정작 베토벤은 독일 사람,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사람 이렇게 구분 짓지 않는다. 그들은 분명 다른 국적의 사람이지만 한 뭉탱이로 묶여 클래식의 거장이다.


흔히 유럽은 문화의 성지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문학, 음악, 예술 그 모든 것들은 전통이 깊고 뛰어나다고만 생각한다. 어떻게 의심 없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유러피언>은 그 해답을 제시한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가 의도한 이미지에 각인된 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왜 한 번도 클래식의 거장에 미국인은 없는지를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음악의 풍이 달랐다고 해도 유럽 외 다른 국가에도 분명 좋은 음악은 존재했을 텐데, 그것들은 왜 '고전'으로 추앙받지 못했을까? 우리나라 음악은 왜 클래식이 아닐까? 클래식은 누가 정한 걸까? 국토의 경계나 철도의 노선으로 보았을 때 러시아는 왜 유럽에 속하지 못했을까? 그럼에도 이 책에는 러시아의 영향에 대해 왜 이렇게 많이 다뤄질까?


<유러피언>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라 모두 소화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미처 깨닫지 못한 의문들을 가지게 되었고 다방면으로 답을 찾기 위해 촉각을 세우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좁디좁은 시야를 가진 내가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어 감사하다. 또한 다음에는 (진짜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아이에게 들려주는 유럽 이야기로 각색한 나만의 <유러피언>을 써 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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