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저편에서 조각을 꺼내오다
'해외의 날씨가 더 좋고, 집들은 돌로 만들어졌고 그 외의 모든 것이 더 단단하다.
카를스루에에는 새로운 송수관이 설치되고 있는데,
그는 지난 7년을 그 도시에서 살아왔다.
이 도시의 상수도가 그에게는 사랑하는 조국의 모든 문제보다 더 소중하다.
<유러피언> p.548
그 언젠가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의 사진을 꺼내 글을 썼던 기억이 떠올랐다. 서둘러 블로그를 열어 글을 뒤져본다. 찾았다!
3년전 알게 된 고려인 마을.
이렇게 고려인들이 모여서 살 수 있도록 마을의 모양을 갖춘 것도 얼마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마을을 공사해 주던 국내 건설회사는 완공을 하지 못하고 더이상 공사를 해 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래서 이 집들은 구조는 있는데 마감이 전혀 되어 있질 않았다. 바닥공사가 끝나지 않아서 방 역할도 하지 못하는 방에는 누우면 냉기가 그대로 뼈 속깊이 파고들었다. 문이나 창문이라도 있는 집은 그래도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집은 있는 문도 마무리가 되지않아 손잡이가 없고 맞지 않는 것이 허다했다.
수도관 공사도 마을 입구까지밖에 되어있질 않아 집에서는 물을 구경할 수 없어 씻거나 빨래를 할때는 마을 입구에 임시로 마련한 우물 옆 펌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했다.(세상에 펌프라니!!!!) 그나마 그까지 되어있는 수도관도 녹이 슬어 붉은 녹물이 펌프를 통해 쏟아져나왔다.
잊고 있었다. 여전히 그 마을에선 여름도 추워하며 녹물이 나오는 우물을 사용하고 있을까?
작성날짜가 2006년도. 그로부터 3년 전이니 아마 러시아를 갔던 해가 2003년 여름이었나보다.(이 와중에 글쓰는 말투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이 더 놀랍다.) 그토록 열악한 상황을 처음 겪어봤었다. 솔직히 저 사진과 글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기억조차 나지 않았을 짧은 시간. 이방인을 바라보는 러시아 현지인의 경계가득한 눈빛.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고려인들의 힘겨움. 어린 나이를 핑계로 감당하기 힘들었다는 핑계로 묻어두었던 기억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유러피언> 속에 그려진 러시아와 내가 겪은 러시아를 겹쳐본다. 도대체 사랑하는 조국의 문제가 상수도보다 소중하지 못하면 안되는 이유는 뭘까? 한여름임에도 이가 딱딱 떨리게 시린 녹물에서 머리를 감았다. 그나마 머리를 감는 것도 여행객인 우리를 위한 그들의 배려였다. 그들은 그 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랑하는 조국'은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걸까?
한국에서 온 귀여운 남학생들이라며 내 남동생을 꽤나 마음에 들어했던 고려인 여자 아이도 이제는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있겠다. 그들의 삶이 지금은 조금 나아졌는지. 바람 한 점 막지 못하던 그들의 집은 이제 살만해졌는지. 구들장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바람이라도 막아줬으면 좋겠다던 그들의 아프도록 시린 웃음이 17년을 지난 지금에서야 기억났다.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고려인'으로 통칭되어 불리고만마는 사람들. 부디 지금은 따뜻하고 안전하게 살고 있기를... 늦고 힘없는 기도이지만 한순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