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가려져 있는 자비심을 찾아보자.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절대 온화하거나 자비로운 엄마가 아니다. 너무 칼 같아서 아이들은 엄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까 꽤나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타입에 가깝지 않을까? 그저 좋기만 한 엄마가 아니라서 우리 아이들이 고생이 많다.
실내 미끄럼틀에서 첫째가 떨어졌다. 떨어졌다가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다. 미끄럼틀 제일 높은 부분에 한쪽으로 걸터앉아 까딱거리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한 미끄럼틀과 함께 미끄럼틀은 옆으로 아이는 앞으로 '쿵'했다. 큰 아이 허리 정도의 높이의 작은 미끄럼틀이고 바닥에 매트가 깔려있긴 하나 위험하긴 매한가지. '쿵'소리가 나자마자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거실로 향한다. 딸아이는 즉각 "넘어졌어요." 하며 눈치를 본다. 본인도 하면 안 된다고 한 행동의 결과라는 걸 너무 잘 아는 거다. 아프고 놀란 것보다 엄마한테 혼나는 게 더 무서운 8살이라니. 순간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에미야, 너는 대체 왜 그렇게 사냐.' (이러고도 돌아서서 또 혼낸 건 비밀로 하자.)
공책을 이용하든 이 책의 뒤에 마련된 오프라인 명상 다이어리를 이용하든 명상을 처음 시작할 때는 그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명상 경험은 금세 잊히고 명상하기 전의 감정과 뒤섞이고 만다. 이때의 기록이란 사지선다식으로 다수의 항목 가운데에서 정답을 하나 고르는 것이 아니라 산책하러 나가서 본 것과 같은 식으로 당신이 명상 중에 알아차린 것을 적는 것이다.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p.306
명상 다이어리는 이렇게 되어 있다.
1. 오늘 시간을 내어 '10분 명상'을 했는가? YES/NO
2. '10분 명상'을 하기 직전에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그 느낌이 편안했는가? YES/NO
3. '10분 명상'을 마친 직후에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그 느낌이 편안했는가? YES/NO
4. 오늘 당신은 어떤 기분이었는가? 그 기분이 하루 동안 어떻게 바뀌었는가?
5. 오늘 하루를 살면서 사소한 것들을 알아차렸는가? YES/NO
(오늘 샤워를 할 때 물의 따스함을 자각했는가? YES/NO)
6. 전에는 결코 알아차리지 못한 것 중에서 오늘 처음 알아차린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있었다면 무엇인가?
생각보다 간단해 보이지만 정곡을 찔리는 질문들이다. 하루 동안 나는 얼마나 현재에 존재했고 어느 정도를 알아차리고 있었던 걸까?
어제의 명상 다이어리(명상을 하고 하루를 모두 보내 가장 최근이 어제임으로)
1. 오늘 시간을 내어 '10분 명상'을 했는가? YES
2. '10분 명상'을 하기 직전에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그 느낌이 편안했는가? NO
3. '10분 명상'을 마친 직후에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그 느낌이 편안했는가? NO
4. 오늘 당신은 어떤 기분이었는가? 그 기분이 하루 동안 어떻게 바뀌었는가? 아주 피곤하고 짜증 나고 화가 치밀어올랐다. 하루 동안 기분이 계속되었다. 운동을 쉬기로 한 저녁이었지만 전혀 여유를 부리지 못했다. 마음이 조급했다.
5. 오늘 하루를 살면서 사소한 것들을 알아차렸는가? NO
(오늘 샤워를 할 때 물의 따스함을 자각했는가? NO)
6. 전에는 결코 알아차리지 못한 것 중에서 오늘 처음 알아차린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있었다면 무엇인가? 없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조급하게 만들고 짜증 나게 만들었을까? 어제까지만 해도 명상하는 내내 생각들이 난무해서 눈앞이 혼탁했다. 차라리 멍하면 좋겠는데 복잡한 머릿속에 생각이 뒤엉켰다. 무슨 생각에 사로잡혔구나를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다른 생각이 엄습해 왔다. 명상이 편안하지 않았다. 심지어 불편함이 너무 길게 느껴져 12분 타이머를 맞추지 않고 명상을 시작한 것이 아닐까 의심마저 들었다. 결국 명상을 하다 말고 눈을 떴고 시간은 3초가 남아있었다.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를 마저 읽어야 하는 날이라는 신호가 잡혔다. 빨간불. 경고등이다 조금 더 나가면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는 균형이 무너질 듯하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약자인 아이들의 몫이 된다. 문제는 언제나 '나'다. 경로를 이탈했으니 바로 잡아야 한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다. 나만의 시간에는 독서와 명상이 꼭 들어간다. 낮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까지 하려니 아이를 너무 심하게 방치한다는 자책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한 시간 정도 책을 읽고 하루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수면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면서 아침 미션을 하려면 일찍 자는 것이 필수다. 한동안 잘했는데 요 며칠 무너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조금씩 늦어진 취침 시간에 이미 마음은 잠들기 전부터 조급함에 시달린다. '수면이 부족하진 않을까?'
아침 알람을 손에 든 채 어느 사이 잠들었나 보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10분이나 지났다. 마음이 다시 조급해진다.'아, 오늘은 한 시간까지 책은 못 읽겠구나.' 낭패감으로 시작하는 아침이라니. 대체 무엇을 위해 미라클 모닝을 시작한 걸까? 예전 같으면 자고 있었을 시간에 일어났다는 것에 박수를 쳐줄 수는 없었던 걸까?
생각했던 시간보다 글쓰기가 조금 더 걸렸다. '오늘은 1시간 30분 안에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자그마치 10분이나 더 걸렸네.' 10분 더 걸렸다고 버스를 놓치는 것도 아니고 준비된 식사가 식어서 못 먹는 것도 아닌데(어차피 끝나고 준비할 식사였다) 왜 그렇게도 안달일까? 10분 빨리 끝내면 세상이 바뀌나?
"엄마, 이것만 하고 같이 놀자." 점심을 먹고 한참(절대 내 기준이다) 놀아주다 팀원들 글을 잠시 읽으려고 앉았다. 글 두 편만 보고 얼른 책 읽고 설거지는 10분이면 되니까 아이들 하원까지 놀아줄 수 있겠다는 시간 계산을 빠르게 한다. 개학을 앞두고 학교에서 연이어 알림장이 온다. 혹시 놓치면 안 될까 봐 자꾸 신경이 분산되니 더 짜증이 난다. 거기에 보태어 딸아이 보챔이 심하다. 장난치고 노래 부르며 조금 있다 놀아주겠다는 말을 연속으로 몇 번이나 했을까? 글도 못 읽고 아이랑 놀아준 것도 아닌 시간이 마구 흘러갔다. 예정했던 글 읽는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 한 편도 제대로 못 읽었다. 그때까지 조르고 보챈 딸아이에게 화가 폭발했다. 좀 있다 놀자고 하지 않았느냐고!!!! 아마 학교에 화풀이를 할 수 있었다면 학교에 전화해서 '제대로 다 정리를 하고 보내라고!!!!'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결국 분출된 분노는 살얼음판 같은 집안 분위기를 가져왔고 계획한 스케줄은 망가졌다. 화가 난 나는 그냥 집안일을 시작했고, 아이는 혼자 퍼즐 놀이를 시작했다.
Photo by Tomáš Nožina on Unsplash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비행기를 타 본 기억을 더듬어보라. 먹구름이 잔뜩 끼고 안 좋은 날씨에도 비행기가 이륙한다. 처음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은 걱정한다. '이렇게 날씨가 안 좋은데 어떻게 비행을 하지?' 걱정을 털어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는 먹구름을 지나 그 위로 날아오른다. 먹구름을 보았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푸르고 맑은 하늘이 펼쳐진다. 그렇게 우리 위에는 늘 푸른 하늘이 있다. 다만 먹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뿐. 어떤 순간에도 푸른 하늘을 연상하는 건 틀리거나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다. 있는 사실을 그냥 믿는 것이지.
우리는 너무도 많은 일들과 감정에 엉켜 온갖 색으로 물들다 못해 시커매진 구름에 가려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위에 항상 맑고 청명한 하늘이 있고 눈부신 태양이 비추고 있음 잊고 말이다.
책의 저자는 맑은 하늘에는 '자비'와 '수용'도 있다고 한다. 자비심이란 일부러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구름이 흩어지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고도 한다. 내게는 '자비'와 '수용'이 없는 덕목이라고 단정 지었음에 일침을 가하는 구절이다. 다만 분노와 짜증이라는 구름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분노와 짜증을 인지하고 자연스럽게 '자비심'이 고개를 내밀 수 있도록 해는 것이다.
결국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바꿀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오늘도 나는 변함없이 머릿속으로 스케줄을 짜기 시작했다. 몇 시까지 글을 쓰고 점심을 먹으면 몇 시가 될 것이고 뒤에 저녁 반찬으로 돈가스를 만들 예정이니 책은 30분밖에 못 읽겠구나. 화장실 청소를 계획했지만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한다. 안방에서 뒤구르기를 성공했다고 크게 소리치는 아이에게 즉각 반응해 주지 못했다. 글을 얼른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에 한 문장을 완성하고 서야 형식적인 "잘했네."를 해주었다. 자각한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아이를 불렀다. 엄마가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지금은 글을 마무리하고 싶어. 혹시 지금 엄마가 글 쓰는 걸 그만두고 놀아줬으면 좋겠어? 물어봤다. 곰곰이 생각하던 아이는 그냥 글을 쓰란다. 조금 있다가 엄마랑 같이 돈가스 만들기를 하면 재밌을 테니 지금은 혼자 놀 수 있겠다고 하고 갔다. 꼭 분노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물론 여전히 칼 같은 엄마라 여지가 없긴 하지만 오늘은 제발 버럭 하지 말고 가려진 자비로움을 발견하는 하루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