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소심쟁이가 오지랖 넓은 아줌마가 되었다.
딱 한 달만에 다시 찾은 베이킹 수업.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호밀빵을 만든다. 샤워종이 어쩌고 프랑스 밀이 어쩌고 호밀의 특성은 어쩌고. 어쩌고 저쩌고 손도 뇌도 쉴 틈이 없다. 틈틈이 메모해 가며 듣는 베이킹 수업은 만드는 재미에 알아가는 기쁨이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이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건 덤이다.
아줌마가 되고 나니 아줌마스러워지는 게 몇 가지 있다.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은 나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오지랖이 생긴 거다. 오지랖의 대상은 나보다 어리면 누구나인 듯하다.
언젠가는 열심히 자기 계발하며 일하고 성장하려는 강사와 3교대 일을 하면서 오전 시간을 내어 빵을 만들러 온다는 수강생이 대상이었다. 그대들 열심히 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라고. 오지랖이 태평양이 된 걸 깨달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어쩌다 그렇게 이야기가 흘렀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어느 순간 나는 '어른'이랍시고 그들을 토닥이고 있었다. 그들은 낯선 누군가에게서 응원을 받는 게 처음이라 어색하지만 감사하다고 말해주었다. 돌아서서 꼰대 같아 보이진 않았는지 조금 걱정되었지만 그보다는 나의 변화가 너무 웃겨서 미처 그들의 반응까지 살필 겨를도 없이 지나간 날이었다.
오늘 또 오지랖이 넓게 굴었다. 출근해서 두 타임째 수업을 하고 있는 강사가 아침밥은 커녕 물도 제대로 못 마시고 5시간 수업을 진행 중이란다. 가방 안에 있던 초콜릿을 꺼내 전해주고는 그거라도 먹고 오라고 오지랖을 부렸다. 웬만하면 십 분 덜 자도 밥을 먹고 출근하라고 잔소리밖에 되지 않을 말도 덧붙였다. 기가 막힌 게 머리로는 '오지랖이야' '네가 먼데' '잔소리야 하지 마'하면서도 입은 어느 사이 나불거리고 있다. 몹쓸 '내 새끼 같은 마음' 때문에 참기가 쉽지가 않다.
돌아보면 나도 똑같았다. 엄마 품에 살던 때는 상황이 나은 편이었지만 혼자 살면서부터 제일 먼저 사라진 게 아침밥이다. 자취 초년생이 가장 쉽게 스킵하는 게 끼니다. 아침밥을 바쁘니까 저녁밥은 귀찮아서. 집에서 해 먹으면 버리는 게 더 많으니 귀찮을 수밖에 없다.
배가 정말 고파 죽을 것 같을 때까지 버티다가 '어!' 하는 순간 후다닥 일어나 냄비에 물을 올리고 라면을 끓인다. 운 좋게 남은 찬밥이라도 있으면 감사한 지경. 가끔 3분 카레나 미트볼 따위의 즉석식품이라도 쟁여둔 게 있으면 땡큐. 냉동실에 엄마가 보내준 국이 있으면 진수성찬이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나면 급하게 지운 허기의 후유증으로 다시 드러눕는 게 일상인 주말. 배달도 귀찮은 자취생은 그냥 그렇게 한 끼를 때웠으니 나머지는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끼니를 더 먹을 일을 만들지 않는다. 모든 자취생이 그러진 않을 테니 너무 심했나? 미안하다. 나만 그런 거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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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책과 매체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법에 대해 듣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건강한 음식을 제때 잘 챙겨 먹어야 한다. 먹는 것이 곧 내가 된다. 충분한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 당이 들어간 음료는 지양해야 한다. 술과 담배는 멀리해라. 적당한 운동은 필수다. 최소 8시간의 수면을 취하라.
건강해지는 방법은 별 것 아니다. 하지만 그걸 실천하는 삶을 사는 건 아는 것만큼 쉽지 않다.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없고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지나고 보니 핑계다. 다만 하고자 하는 마음이 별로 없었을 뿐이라는 걸 이제는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이 좋은 점이 여기에 있다. 자꾸 접하다보면 가랑비에 옷이 젖어드는 것처럼 젖어든다. <마녀 체력>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을까> <움직임의 힘>을 읽다 보니 매일 운동하는 이유가 자꾸 늘어났다. 심지어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죽는 법> <운명의 과학>도 운동을 해야 하는 근거를 제시했다. 물론 운동의 첫 시작이 건강하게 가족들 곁을 지켜주어야겠다는 내적 동기임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 있었다면 과연 500일 가까운 기간 동안 운동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응원해주는 함께 하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분명하다. 좋다는 운동을 30년 가까이 잔소리를 듣고도 하지 않았던 내가 누구에게 "건강을 지키려면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어요." 할 자격이 있을까?
수업을 담당했던 강사는 평일에 능력 개발을 위해 학교를 다니고 있다. 늦깎이로 들어가서 힘든 수업과 과제량에 죽을 것 같다면서도 용돈이라도 벌겠다고 주말에도 수업을 진행한다. 그런 시기에는 먹는 것, 자는 것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는 게 제일 쉽다. 끼니는 쉽고 간단한 즉석식품이나 반조리 식품, 배달 음식으로 때운다. 잠을 조금 줄여서 과제를 한다. 그렇게 부족해진 잠을 늦잠으로 보충하고 아침밥은 거른다. 운동은 시간 많은 사람들이 하는 여가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부작용으로 밤에 폭식하고 야식 하는 습관도 생긴다. 나도 그랬다. 당장 운동 안 한다고 어떻게 되는 거 아니고, 지금 대충 사 먹는다고 몸이 이상해지는 건 아니니 괜찮을 거라고 믿으며 눈을 감고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진짜 괜찮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면 너무 늦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이상하지 않다.
지독하게 솔직하라! 한 번도 미움받지 않은 것처럼!
<실리콘벨리의 팀장들>
상상을 하나 해 보자. (당신이 남자라면) 친구가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지퍼가 내려가 있고 사이로 셔츠가 튀어나와 있다. (여자라면) 치마 뒤쪽이 말려올라가 스타킹에 끼여있다고 해보자. 원래 친한 사이라면 서슴지 않고 달려가 이야기할 수 있다. "야, 너 지퍼가 내려갔어." "치마 말려 올라갔어. 다시 보고 나와."
그런데 얼굴은 알지만 서먹한 사이거나 혹은 처음 보는 사람이다. 순간 망설인다. 이 말을 하면 저 사람이 민망해하지 않을까? 눈이 마주쳤지만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어쩌지?
예전에 나였다면 못 본 척하는 행동했을 확률이 아주 높다. 정말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안 그래도 어색한 사이에 굳이 다가가 더 어색해질 말을 할 이유가 없다. 혹여 나중에 알았다 하더라도 나는 못 봤다고 잡아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미안하다. 그동안 외면한 사람들아.) '완전한 솔직함'을 구현할 방법은 세상에 없다고 믿었다. 무엇이든 상대가 조금이라도 불쾌할 수 있는 이야기는 피했다. 괜한 오지랖을 부려 민망한 기억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지금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지하철에서 가방이 열려있어도 다가가서 말을 건넨다. "저기. 가방이 열려있어요." 예전 같으면 괜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어 절대로 아는 척하지 않았을 일이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바꾸었을까?
여기에는 '내 새끼 같은 마음'이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라는 정체성에 완전히 사로잡혀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보면 내 자식 같은 마음이 들어서 그냥 모른 척을 하기가 힘들다. 설사 오해를 받거나 '저 오지랖 넓은 아줌마는 뭐야?' 하는 시선을 받는다 하더라도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베푼 관심이 돌고 돌아 내 새끼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는 손길로 바뀔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들이 지퍼가 열렸는지 모르고 다닐 수도 있고, 딸이 치마가 말려 올라간지도 모르고 나올 수도 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침밥을 굶고 밤에 폭식을 할 수도 있고, 가방이 열린 것도 모른 채 귀에 이어폰을 꽂고 허둥지둥 다니다 물건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 이래서 엄마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한 없이 오지랖을 부릴 수밖에 없다. 일부러 '완전한 솔직함'을 만들어 내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완전히 솔직해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고 보니 어떤 면에서 '꼰대'와 '잔소리꾼'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지낼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아니까, 나중에 어떻게 후회할지는 더 잘 아니까 자꾸 말해주고 싶은 거다. 아니야.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진짜 중요한 걸 놓치는 실수는 하지 마. 이게 잔소리고 꼰대 짓인지 알면서도 하고 오니 헛웃음이 난다.
다음엔 그냥 책을 한 권 권해야 할까 보다. 이 참에 보물 지도에 '잔소리하고 싶을 때는 책을 사주는 것으로 대신할 정도로 부자가 된다.'를 넣어볼까? 생각하고 보니 기분 좋은 상상이다. 당장 적어 넣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