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학원
국비지원 부트캠프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어서'였다.
채용 합격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고 나니
새로운 공고를 봐도 별로 감흥이 생기지 않았고, 동기부여가 안되었다.
또 여러모로 자존감도 낮아지고 쭈굴쭈굴해졌다.
그러던 차에 나의 짝꿍이 이직을 하면서 국비지원 부트캠프를 듣는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따라 강남 간다고, 나도 부트캠프에 참여하기로 했다.
대학원을 거치고 통계학을 알게 되면서 데이터를 다루는 데에 관심이 있기도 했었고,
내가 익숙한 일을 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었다.
원래 나의 짝꿍도 데이터 분석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이래저래 알아보니 데이터 분석가는 대학원을 나오지 않으면 잘 안뽑는다기에
다른 직무 부트캠프에 참여한다고 했다.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부트캠프 파트 1을 마무리 하고 나니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데이터 분석에서는
문제를 formulate/구조화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이렇게 말했다.
"모든 대리석은 그것의 내부에 조각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의 참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조각가의 일이다.
Every block of stone has a status inside it and it is the task of the sculptor to discover it"
데이터는 그냥 흩어져있을 뿐 그 자체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를 발굴하고 찾아내서, 설득력을 갖추도록 모양새를 만드는게 데이터 분석가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사고가 뒷받침 되어야 하고,
또 내가 한 일을 전혀 모르는 제 3자의 입장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분석 의도와 분석에 사용된 데이터, 변수의 정의를 명확하게 밝히는 일은
분석을 진행한 나에게는 너무 명확하겠지만,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손이 많이 가고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다른 사람에게 내 분석을 소개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위해서는
이런 과정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문제를 구조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데이터가 있다고 해서 아무 결과나 뽑아낸다고 의미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서, 무엇을 볼 것인지 잘 생각해야한다.
대학원은 연구자로서 아직 다른 사람들이 풀지 않은 문제를 풀고
그 결과를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도록 훈련하는 곳이다.
그런데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를 풀 때에는
'풀 수 있는' 문제를 정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문제를 푸는게 다른 사람들이 연구한 것과 어떻게 연관되어서
그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밝혀야 하고,
또 문제의 결과가 학문적인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밝혀야 한다.
연구는 좀 더 기존 연구의 맥락을 고려해야한다는 점이 있지만,
연구의 많은 부분들이 데이터 분석과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을 선호하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
데이터 분석 직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대학원하니 떠올라서 좀 더 적어보려고 한다.
부트캠프에서 팀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니
지도교수가 나를 볼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우리 팀에는 이공계 전공이 아닌 팀원도 있었고,
이공계 전공이더라도 학부를 졸업한지 얼마 안되었다.
그러다보니 처음에 프로젝트 방향을 잡을 때에 무엇 봐야할지 모르겠다는 팀원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방향을 제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팀원의 입장에서는 시키는거 했는데, 내 말이 바뀐 상황이 되었다.
팀 프로젝트를 할 때에는 초반에 방향 설정을 잘 해서
팀원들과 적절한 합의를 이끌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팀원은 주장에 힘도 없고 근거도 빈약했다.
자신의 주장이라기 보다는 '멘토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
또는 '다해님이 그렇게 말했으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똑같은 주장도 다른 팀원은 자신이 데이터를 살펴보면서 느낀 점을 근거로 들었기 떄문에 설득력이 있었는데,
단순히 멘토가 말했다는 이유로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방향을 뒤엎자고 하니 설득력이 없었다.
(그렇게 정한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고, 그 논의에 본인도 참여했으면서)
그 밖에도 프로젝트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주장을 하면서
근거가 빈약해서 몹시 화가 났다.
대학원에서 학생은 지도교수의 지도를 받아 '자신의' 연구를 완성시켜나간다.
그런데 학생이 방향을 못 잡으면 지도교수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시켜보고
그렇게 시키는 일을 하면서 학생이 자신의 생각의 근거를 마련하기를 원할텐데
시키는 것만 하고, 주장의 근거도 빈약하면 답답하겠다 싶었다.
무엇보다도 학생 자신의 연구이고, 그 연구를 잘 해야 졸업을 하는데 말이다.
대학원 시절의 내 부족함을 이제서라도 깨달았으니 되었고,
또 그렇게 부족한 나를 내쫓지 않으셨음에 감사드리며...
++
우리 교수님은 내가 들고간 논문 초고를 보고는
연구논문보다는 보고서 같다는 평을 남기셨다.
보고서를 써보니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겠다.
연구는 상당히 커뮤니티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식은 마치 중립적이고 무색무취인 느낌이었지만,
결국 지식은 사람이 만들고,
또 그 지식은 관련 분야 연구자들끼리 공유된다.
새로운 연구는 기존의 연구를 기반으로 쌓아올려진다.
그렇게 연구자들의 공로가 서로 연결되면서
학계를 이루고 학문이 만들어진다.
그런 면에서 '연구'논문이라 함은
어째서 그런 연구를 했는지 기존의 연구 맥락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또한 연구의 결과가 기존 연구에 비추어 보아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하며
기존의 지식 커뮤니티에 새로운 점을 찍고
그 점을 기존 논문 네트워크와 연결하는 일인 것이다.
교수님이 나에게 보고서 같다고 한 부분은
바로 그런 '연결'이 없었기 떄문이라는 생각을 이제서야 한다.
이런 뒤늦은 깨달음을 하나씩 할 때 마다
대학원에 다시 가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우선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잘 하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