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내가 대장부인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연애를 시작하니 세상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이었다. 사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내가 아주 당차고 자신만만한 사람인줄 안다. 그런 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뭐랄까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속성이 공존하는 데에서 의외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감각기관이 예민한 편이다. 특히 청각이 예민하다. 초등학생 시절 부터는 내 방에는 시계가 없었다. 시계 초침 소리가 거슬렸다. 어느 순간 부터는 손목시계의 초침소리도 거슬렸다. 그래서 초침이 없는 손목시계로 바꿨다.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갔는데, 어디에선가 스피커 고주파 소리가 들려서 인터미션에 직원에게 이야기해서 좌석을 바꾼 적도 있다. 길을 걸을 때는 차소리가 시끄러워서 보통 메인에서 한 골목 들어간 길로 걸어다닌다. 예민한 것에 더해 이런 소음이 신경쓰이고 불편하다.
거기에 나는 생각도 많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책 제목을 보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이 책에서는 전체 인구의 약 30%의 사람들이 생각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생각이 많지 않은 사람은 생각이 많은 사람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센서티브>라는 책도 읽어봤다. 감각기관이 예민한 HSP(Highly Sensetive Person)에 대한 책이었다. 이 책도 몹시 공감하면서 읽었다. 그 동안 이해받지 못했던 나의 특이함을 이해받는 기분이었다. 생각이 많은 것과 예민함은 다른 속성이지만, 나는 둘 다 갖춘 사람이었다. 거기에 불안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인생이 피곤할 수 밖에.
이런 고충을 이야기하니 한 친구는 자기도 생각이 많고 감각이 예민하다고 했다. 내가 언급한 책들을 읽어보며 자기도 비로소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기도 감각기관이 예민하기는 하지만, 그게 불편하게 느껴지거나 불안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런 태도가 무척 새로웠다. 감각이 예민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도 언젠가 그런 감각들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한편으로 또 다른 친구는 자기도 생각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이 많으면 하루 날을 잡아서 끝까지 생각을 파고든다고 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면, 그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한 번 결론을 내리더라도, 그 결론을 다시 의심하고 또 생각의 타래를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결론 짓기로 결정하고, 거기에서 생각을 멈추는 태도가 놀라웠다. 나는 내 생각에 짓눌리고 불안에 시달렸는데, 그 친구는 자기의 많은 생각을 컨트롤 할 줄 알았다.
나랑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친구들은 나와 다른 태도로 기질을 다루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불안하지 않고, 고통받지 않으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게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무던한 사람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도 거슬릴게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런 저런 요구 사항이 많았는데, 남편이 바라는 것은 소소하고 단순했다. 나는 내가 밖에 나가서 하고 싶은게 있어도, 내가 예민한 기질 때문에 거슬리는게 많았다. 하지만 남편은 예를 들어 피자를 먹고 싶다고 하면, 그게 어디에 있는 어떤 피자인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편은 내게 다 맞춰주려고 했다.
나의 예민한 청각을 배려해서 나와 길을 걸을 때에는 대로변에서 한 골목 들어간 길로 걸었다. 남편은 컴퓨터 소리가 커도 상관이 없었지만, 나를 위해서 볼륨을 줄여주었다. 음식점이나 카페가 시끄러우면 내가 괜찮은지 물어봐주었고, 내가 불편하다고 하면 기꺼이 다른 장소로 이동해주었다. 남편에게 배려받고, 또 남편이 나를 보듬어주면서 나도 점차 자극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게 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해주었고, 시간이 많이 지나자 나는 스스로에게도 '괜찮다'고 할 줄 알게 되었다.
기질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고유한 본성으로 쉽게 변하지 않지만, 성격은 이 기질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후천적인 속성이라고 한다. 예민한 기질은 바꾸기 어렵지만, 기질을 다루는 성격은 변할 수 있었다. 나는 원래 불안했지만, 남편 덕분에 나의 예민한 기질을 편안하게 다루게 되었다.
나의 불안이 어디서 왔을까 돌이켜보면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가정 환경에서 그 답을 찾게 된다. 우리 부모 세대는 대부분 결혼과 출산에 대해서 별 다른 준비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저런 불화가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또래 모든 사람들이 나 같은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남편은 복불복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기질이나 성격이나 그냥 어쩌다가 얻어 걸리는 거라고. 그러니깐 우리 자식이 예민하고 불안하지는 않을지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고. 이런 남편의 담담한 태도 덕분에 나는 안정감을 느끼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진다.
예민한 기질이 반드시 안좋은 것 만은 아니다. 예민한 만큼 다른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섬세한 감각을 분면 유리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나의 예민한 감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른채 버거워했다. 하지만 남편 덕분에 스스로의 생각과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게 되었다. 앞으로는 이런 예민한 기질을 살려서 강점으로 만들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남편은 내게 속아서 연애를 했지만, 결혼은 이런 내 성격을 알고서 했다. 결혼식 하기 전에 정말 확실한거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다. 결혼식 하면 너 이제 못도망간다면서. 남편은 그럴 때 마다 다 알고 결정한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다짐을 했어도, 가끔은 억울한 마음이 드나보다. 어쩌겠는가. 이미 동네방네 소문 다 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