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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해 Sep 06. 2024

미운 오리 새끼

요즘 나는 미운 오리 새끼가 된 기분이다. 미운 오리 새끼는 안데르센이 지은 단편동화이다. 하얗고 자그마한 오리 새끼들 속에 섞여있는 유독 몸집이 크고 회색빛을 띄는 오리가 알고 보니 크고 아름다운 백조였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동화에서 다른 동물들이 새끼 백조를 타박하고 차별하는 것처럼 지금 나에게 누군가 질타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동화의 결론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미래의 멋진 모습을 꿈꾸며 현재의 부진함을 헤쳐나가려 애쓰는 내 모습이 미운 오리 새끼와 닮아 보이기도 한다.


지금 나에게는 두 가지 큰 계획이 있다. 하나는 내가 직접 집필한 책을 출판하는 것이고, 하나는 국제합창대회에 출전하는 것이다. 책 출간을 위해 생각해 놓은 목차가 있기는 하지만, 한 편 한 편 초고를 쓰고 글을 다듬고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글을 쓰려고 소재로 생각해 두었어도, 막상 글을 쓰면 글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고, 글을 완성하기까지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글 한 편을 완성했더라도, 그다음 글을 향해서 계속해서 마라톤을 달리는 기분이다.


합창대회 출전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속한 구립여성합창단은 지금까지 국내 대회 성적이 좋았던 공을 인정받아, 구청의 지원으로 국제합창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부르거나 듣는 노래와는 다르게, 대회에서는 피아노 반주가 없고 음정과 박자가 정교하게 구성된 곡을 부르곤 한다. 반주가 없다 보니 음정이 올라가거나, 내려가기가 쉽고, 박자가 조금이라도 어긋나서 전체적인 흐름이 무너지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고작 4-5분 남짓의 짧은 시간으로 평가는 끝난다. 결국에는 무대에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연습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책을 출간한 나 자신을 뿌듯해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이뤄낸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의 이 시간을 묵묵히 견디려 한다. 또한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때의 느낄 자부심을 기대하며, 지금의 지지부진한 연습을 견디고 또다시 반복한다. 어쩌면 이런 나의 모습은 미운오리새끼가 아니라, 언젠가 날아오를 날을 꿈꾸며 날갯짓을 연습하는 체리필터의 노래 <오리날다>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내가 글쓰기 수업을 들었던 작가님들의 출간기념회와 북콘서트를 다녀왔다. 왕성히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을 보자면, 나도 과연 저렇게 꾸준히 저술활동을 할 수 있을지, 그렇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내용으로 책을 쓰게 될지 그려보게 된다. 하지만 아직 첫 번째 책이라는 관문을 마주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 이후의 삶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직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고 나면 어떤 새로운 삶의 장이 펼쳐질지 기대하며 미래에 나를 내맡긴 상황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의 내가 마치 아무런 성취도 이루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초중고를 잘 나와서 대학도 졸업했고,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도 받았고, 책도 한 권 번역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계속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하는 걸까? 나는 때때로 내가 성취감을 먹고 산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성취하고, 성취감에 나 자신을 뿌듯해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심리학자 서은국은 그의 책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은 아이스크림과도 같다고 했다. 행복은 아이스크림처럼 금방 녹아 없어지기 때문에, 계속해서 인간은 새로운 행복을 찾아 나선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행복을 찾아 나서는 인간의 행동은 행복을 느끼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행동을 했을 때에 우리 뇌가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다만 행복을 느끼는 일이 반드시 지금 당장의 생존과 직결되어 보이지는 않을 수도 있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으면 지금 당장 내 입장에서는 배가 고플지 모르지만 미래에 집단으로서 살아남는 일에는 도움이 된다. 게다가 생존과 번식을 위한 행복 추구라는 관점에서는 내가 계속해서 무언가 새로운 성취를 찾아 나서는 일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지금 당장 생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잡아먹힐 위험이 큰, 화려한 꼬리를 자랑하는 수컷 공작새가 암컷에게 선택을 받아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듯이 말이다.


그러니 내가 미운 오리 새끼든지, 날고 싶은 오리든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계속해서 성취에 목말라하는 일은 어쩌면 나라는 사람의 유전자에 새겨진 생존 방식이 바로 성취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생존을 위해서는 과거의 행복에 머무르기보다는 새로운 행복을 찾아 나서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내려고 하는 일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한 순간 나 자신을 백조로 느꼈다가도 다음 날이 되면 나 자신을 미운오리새끼로 느끼는 일은 어쩌면 생존을 꾀하는 한 인간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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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노다해(https://linktr.ee/dahae.roh)


대학원에서 통계물리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과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단법인이다. 주로 회계/세무를 담당하지만, 사무국 규모가 작아 거의 모든 일에 손을 대고 있다. 부캐로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한다. 과학 강연, 과학 글쓰기, 과학책 번역을 하고, 과학 타로도 만든다. 과학과 과학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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