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걸음
시작
“왜 승무원이 되고 싶었어?”
음, 승무원 관련 책을 읽는데 온 세상의 기운이 막 나한테 꽂히는 느낌이랄까,
그냥 너무 하고 싶었어.
-동기 S
취업한 지 2개월이 흐른 직딩의 통장잔고였다. 아니 이보다 겸손할 수가. 분명 취업을 하긴 했는데 돈은 없고 부모님 뵐 낯은 더더욱 없고. 깊어지는 가을보다 더 깊은 한숨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그로부터 2개월 전 2016년 8월, 유난히 습하던 여름날. 갓 취업 전선에 뛰어든 햇병아리 취준생은 MICE 전문가를 꿈꾸고 있었다. 뭐 조금 더 솔직해보자면, 사실 뭐든 상관없었다. 열심히 해서 '잘'의 경지에 접어들면 흥미는 자연스레 따라올 거라 생각했다. 2016년의 하반기 취업을 목표로 MICE 관련 교육과 학회 활동에 참여하며 조금씩 경험을 쌓았다.
그러던 중, 한 이사님의 연락을 받았다. 대학 시절, 각종 대외 활동을 쓸고(?) 다니던 중 친분을 쌓은 분이었다. 오랜만에 이사님을 찾아뵙고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다 이사님께서는 MICE 분야로 취업을 준비 중이라는 내 근황을 들으시고는 본인과 함께 광고홍보 쪽 일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요목조목 그려주신 황금빛 미래 끝자락에 MICE 관련 업무도 원한다면 따다 줄 수 있다는 설탕 발린 말이 따라붙었다.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이사님은 업계에서 나름 인지도 있는 프리랜서였고 무엇보다 내가 열렬히 하고자 하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 인맥으로 쉽게 '취뽀'를 해도 되나?' 싶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2개월이 흘러 2016년 10월.
결과를 미리 말하자면, 완벽한 실패였다.
두 달간 월화수목금토일 하루도 쉬지 않고 출근을 했고 수많은 미팅에 참여했으며 수차례의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실제로 현장에 나가 촬영을 도왔고 명함이 만들어졌으며 내 아이디어가 긍정적으로 검토되기도 했다.
하지만 뭣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이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근로 계약서였다. 이사님과 나의 업무관계는 단순히 '구두 계약'으로 성립되어 있었고 따라서 그 어떤 법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
'신뢰'라는 안경을 끼고 바라본 세상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덫이었다.
두 달간 내가 받은 임금은 단 50만 원.
두 달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
지금 생각해보면 '50만 원'과 '끈기'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명한데 나는 끈기 있는 사람이라는 걸 왜 그렇게 아득바득 증명해내려 했는지.
조금 더 시간이 흘렀다. 내 아이디어가 이사님의 것인 양 계약이 이루어지던 날을 기점으로 깨질 것 같지 않던 신뢰의 벽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속상하다는 나의 한풀이에 근로 계약서도 안 쓰고 그런 막노동을 하고 다녔냐는 친구의 대답이 돌아왔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랬다. 밤낮없이 이어진 헌신 끝에 남은 것은 '사회적 인정'도 '돈'도 아니었다. 화려한 언변으로 그려낸 네버랜드는 신기루일 뿐이었다. 세 달만에 알게 된 사회의 맨 얼굴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함께 일하던 팀원의 견제도 어느 정도 있었다고.
뭐 지금은 세 달 정도로 끝나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당시 '유리멘탈 햇병아리'였던 내게 있어 깨져버린 신뢰가 가져온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일단 팀으로 일하는 직종은 무조건 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같은 장소에서 매일 마주치는 것도 싫었다. 극단적인 생각이었다. '모 아니면 도'식의 직업 추려내기였다. 승무원은 그 직업 추려내기에서 살아남은 직종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