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는 서로의 동의 하에 얼굴도 모른 채 연락을 시작했다.
미스테리한 그는
누구보다 규칙적인 5-10 생활을 고수하는 사람이었으며
취미로 홈트레이닝과 기타연주, 대청소를 즐겼고
친구들과의 한탕보다 영화 한 편에 맥주 한 잔을 더 즐기는 명실상부 집돌이었다.
2주 남짓의 시간동안 얼굴 모를 그와 연락을 나누며
늘 시차를 넘나들어야 했던 나와 달리 언제나 예측 가능한 그의 일상에 안정감을 느꼈고
취미에서부터 느껴지는 그의 철저한 자기 관리 습관은 마냥 털털한 내게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친구들과 만나는 날이면 오히려 피로감을 호소하며 집으로 호닥닥 돌아올 계획을 세우는 것마저 꽤나 귀엽게 느껴질 때즈음, 드디어 그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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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첫 만남부터 이전에 만났던 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인상을 주었는데
일단, 그는 매우 솔직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범위의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꾸며진 언사‘ 따위는 없었다.
자신의 지난 삶과 연애사를 고저없이 정직하게 ’폭로’해대는 그를 보며 처음에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사람은 허울만 좋은 공작새 부류는 아니구나 싶어 오히려 그의 말들에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에 나 역시 나라는 사람을 허심탄회하게 오픈할 수 있었다.
신선했다. 상대방과 솔직함의 임계치를 두고 어색한 줄다리기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어쩐지 후련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면
뭐랄까, 오리무중이랄까. 당최 그의 심중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내게
호감을 드러내되,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했고
장난스럽되, 적극적인 이성적 접근은 없었다.
그간의 연락을 통해 서로 꽤나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나를 밀어내지도, 그렇다고 딱히 당기지도 않는 그의 태도에
우리가 과연 ’다음‘을 그릴 수 있을지 알쏭달쏭해하며 서로에게 헤어짐을 고해야할 시간이 다가올 즈음
“다음 번에도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자연스레 다음을 기약하는 그의 모습에
옳다쿠나, 기쁨의 웃음을 눌러 참지 못하는 낯선 나를 보며 생각했다.
혹시 나, 금사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