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을 잡는 비행 권태기

by 하늘을 걷는 여자


아홉번째 걸음

권태




"비행에 권태를 느낀 적이 있어?"


주기적으로 오지, 권태.
이래서 정말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관리를 잘해야 하는 것 같아.


-동기 Lee




각 잡힌 유니폼에 반짝이는 또각 구두. 캐리어를 끌고 전 세계를 누비는 커리어 우먼.

승무원 꿈나무의 눈에 비친 '승무원'이란 직업은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준비를 하면 할수록 더 그랬다.


'매 비행이 여행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겠지? 승객들도 여행이 주는 설렘에 한껏 고취되어 있을 거야. 어떤 외국인들에게는 처음 만나는 한국인일 수도 있겠다! 한 나라의 첫인상을 보여주는 민간 외교관이란 말이 이래서 있는 거구나.'


승무원에 대해 알아갈수록 나는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그 꿈이 더 간절해졌다.


승무원이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물 공포증을 극복해냈고 올곧은 생각과 바른 태도를 습관화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가차 없이 채찍질을 했다. 힘이 들 때면 출국장에 하루 종일 앉아 퇴근하는 승무원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유니폼을 입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출국장을 빠져나오는 내 모습을 그리며.






3개월 후, 꿈에 그리던 승무원이 되었다. 합격 통지를 받고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간절했던 꿈을 이루고 나니 무서울 게 없었다. 모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는 흔들릴 일도, 아플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나는 어리고, 분별없이 긍정적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나는 정통으로 권태를 맞았다.

찰리 채플린이 말했던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나는 '인생'이라는 말을 '승무원'으로 바꿔도 명제가 성립한다고 확신했다.


비행을 시작한 이후로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기 센 중국 기조들 사이에서 겸손은 무능이었고 잠깐의 '어버버'도 용납되지 않았다.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되기는커녕 중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몇몇은 아예 바보 취급을 당했다. 여행의 행복에 도취되어 있을 거라 기대했던 승객들은 자주 화를 냈으며, 비행기 안에서는 어떤 종류의 무례함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진심을 담아 건넨 마음은 번번이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중국이 좋고 사람이 좋아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업무가 손에 익기 시작하면서 권태를 느끼는 빈도는 더 잦아졌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보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발전은 없고 되려 불만만 늘어갔다. 으레들 말하는 '내가 이러려고 4년 동안 대학 공부했냐'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오히려 승무원을 갈망하던 옛날의 내가 그리웠다. 기대와 희망으로 하루를 차곡차곡 쌓아가던, 반짝이던 그때의 내가 그리웠다.



힐링이 필요했다. 문드러가는 속을 감추고 친구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친구들의 반응에 나는 오히려 죽은 조개 마냥 입을 꾹 닫고 말았다.


'너무 좋겠다. 매일이 여행이겠네, 다음번에는 어디로 떠나?'

'승무원이라니, 내 친구 너무 자랑스러워!'

‘힘들다고? 그래도 나는 너무 좋을 것 같은데.'


환상으로 만들어낸 승무원의 모습은 마냥 이상적인 것이었다. 당연도 하지, 나도 그런 줄 알았으니.

처음에는 이렇고 저래서 너무 힘들다고 죽는소리도 해보았으나 나중에는 그저 희미한 미소를 띠며 '그렇지' '좋아' '괜찮아'로 일관했다. 물론, 힘들다는 내 말에 친구들은 많이 힘드냐며 위로와 공감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공유되지 못한 경험은 피상적인 위로를 낳을 뿐이었고 굳이 불행을 알려 걱정을 안겨줄 필요는 없다는 게 최종적인 내 결론이었다.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말하는 게 괴로웠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기 시작했다. 비행을 핑계로 모든 약속을 고사했다. 내가 승무원이라는 것이 전혀 자랑스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 자신이 한심했다. 승무원이 부끄러운 승무원은 혼자 꽁꽁 숨기 바빴다.






12월 중순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곧 내 생일이었다. 우리 회사는 생일날 무조건 휴가를 준다. 달력을 보니 생일은 평일이었다. 그날을 누구와 어떻게 보낼지 고민스러웠다. 평일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불러내기에 제약이 있다는 것은 둘째치고 내가 그동안 바쁘다고 고사한 사람이 몇인가. 그렇게나 숨을 땐 언제고 생일이라고 이제야 얼굴을 비춘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면목이 없었다.


고민 끝에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언니에게 연락했다. 입시 설계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언니는 마침 성수기 업무를 어느 정도 마무리 지었다며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언니에게 그날이 내 생일임을 밝히지는 않았다. 알면 부담을 느낄 것 같았다.






생일 당일이 되었다. 집을 나설 준비를 하는데 언니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하자, 오늘 생일이구나! 축하해! 우리 곧 보자!=)



당황스러웠다. 아니, 도대체 생일인 건 어떻게 알았지?


“언니, 너무 고마워! 근데 어떻게 알았어?”

“아, 알람이 뜨더라고!”


아차. 내가 카카오톡 생일 알림을 간과했구나. 행여나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는 달리 언니는 아주 태연히 ‘곧 만나자’고 했다.

어쩌겠는가.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약속 장소로 향했다.






* 다음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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