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해지는 모든 당위에 반기를 든다

by 하늘을 걷는 여자


여섯 번째 걸음

고정관념



“승무원과 관련된 고정관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냥 그러려니 하지, 솔직히 나도 되보기 전엔 그렇다고 생각했잖아.


-동기 K



나는 청개구리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그렇다고 말 안 듣는 개구쟁였느냐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으레들 시기 별로 듣고 자라는 '착한 딸,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 소리 꼬박꼬박 챙겨 들어가며 자랐다. 다만, 청개구리가 줄곧 저항해온 것이 하나 있다면 '고정관념'이었다. 납득 가능한 범위 외에 가해지는 모든 당위들에 어느 순간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되려 반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충고로 포장된 강요에 굴복하여 당연하다 여겨지는 편견 속에 갇히는 게 싫었다.



딸이라면, 학생이라면, 친구라면, 어른이라면. 수많은 ~라면 들이 매 순간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물론 그중 스스로 선택한 당위도 있다. 나는 늘 좋은 딸이고 싶었고 현재까지도 '자식이라면 부모에게 잘해야 해'라는 당위에 나름대로 순응하며 살아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나의 부모님이 나를 더 좋은 딸이 되어야겠다 마음먹게 만드는 분들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이 외에 마주한 당위들은 대개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하고 반문하게 만들었다. 가령, 여자라면 얌전해야 해, 언니니까 의젓해야 해, 블라블라블라. 고착된 고정관념이 호시탐탐 당위의 목줄을 들고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인지하지도 못한 채 굴복당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경우 격렬히 저항했다. 귀한 약도 억지로 먹일라치면 거부감을 느끼는 법인데 하물며 나를 한정 짓는 말들은 더 말해 뭐하랴. 강요받는 건 항상 싫었다.





중학생 때였을까.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짜인 프레임에 대한 경계가 없었다. 오히려 주어진 역할에 '맞다'라고 여겨지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본인의 책임을 다하는 거라 생각했다.


당시 나는 '모범 반장'이라는 역할에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학생이라면 응당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법, 좋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으며 학급 회의를 열어 우리 반의 발전 방향(주로 공부)에 대해 고민을 나눴고 가끔은 선생님을 대신하여 시끄러운 친구들을 꾸짖기도 했다. 내가 설정한 '모범생'이라는 프레임에 어떻게든 모든 친구들을 끌어넣고자 열과 성을 다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조용히 쌓여오던 몇몇 학우의 불만이 가을 학예회 준비 과정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반 친구들은 급기야 두 그룹으로 나뉘어 서로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물론, 나는 그 사이에서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행동에 부여되던 당위들이 하나둘 의구심의 도마 위에 올랐다.

"반장이 학급의 모범이 되어야지, 같이 싸우고 있어!" 학급을 제대로 이끌지 못해 분란을 만든 경위로 선생님께 불려 가 혼이 나 울면서 생각했다. '선생님, 저는 모범이 되기 위해 이미 최선을 다했다 생각하는걸요.' 선생님의 등장과 함께 학예회 소동은 일단락되었지만 이 사건을 기점으로 나는 지금껏 의심 없이 따르던 당위들에 물음표를 던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가온 그 해 겨울, 하루는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소나무가 양 옆으로 가지런히 늘어선 오르막길 끝,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운동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한창 눈싸움을 즐기고 있는 우리 반 녀석들이 보였다. 아침 조회까지 남은 시간은 약 15분.

평소 같았으면 10분 전에 입실하여 얌전히 책상에 앉아 정숙한 자습 환경 조성에 일조했겠으나 그날만큼은 이상하게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애당초 요조숙녀보다는 장군 쪽에 가까웠던 여중생은 가방을 냅다 던지고 부반장의 뒤통수를 눈덩이로 가격하며 출전을 선언했다. 내 생의 첫 일탈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범이고 뭐고, 날아드는 눈덩이 외에 그 어떤 것도 안중에 없었다.




아침 조회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각, 복도로 뛰어들어온 나와 친구들을 향해 담임 선생님의 꾸중이 쏟아졌다.

"아니, 모범이 되어야 할 반장, 부반장이 이러고 있으면 쓰겠어? 너희 다 아침 자습 시간 동안 손 들고 벌 서고 있어!"

선생님의 불호령에 따라 복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양 손에는 눈에 흠뻑 젖은 운동화가 들려 있었다. 근데 이게, 분명 벌을 받고 있는 중인데 자꾸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왔다. 줄곧 지켜오던 '모범적인 모습'과는 한참 멀었으나 기분은 오히려 좋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이후, 나는 '공부할 땐 공부하고, 놀 땐 노는 반장'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공부만 강요하던 고지식한 불도저가 우리들의 친구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반장이라면 모범이 되어야 한다'라는 기준에 맞춰 지금껏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오히려 모범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고 나니 사랑받는 반장이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모범'의 기준부터가 이미 주관적 해석의 영역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모범을 '공부'라고만 생각했을까.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라는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덫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그 이후로 나의 일탈이 계속되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곳곳에 숨어있는 선입견에, 고정관념에, 그리고 그릇된 당위에 경계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이따금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의 너는 네가 선택한 모습이 맞아?






그런 청개구리가 최근 들어 격렬히 저항하고 있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건 바로 '승무원이라면'.

승무원은 프레임이 확실한 직업군 중 하나이다. 사실 나 역시도 승무원이 되기 전에는 보편적인 이미지에 비추어 승무원들을 바라봤다. 깔끔하고 예쁜 어피어런스를 유지하는 사람,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닌 사람, 낯선 사람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등등. 그렇다고들 하는 그 모습에 나를 끼워 맞추기 바빴다. 백 번 양보해서 준비생일 때는 간절한 마음에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강요는 승무원이 된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간혹 마주친 이웃들이 '아, 혹시 승무원이시라는...?' 하며 알은체를 할 때면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던 쌩얼이, 무릎 늘어난 트레이닝 복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 느껴질 때면 더더욱 그랬다. 그 눈빛들이 '네가 정말 승무원이 맞아?'하고 묻는 것만 같았다. 시선을 의식하고 나니 스스로에 대한 압박이 점점 심해졌다. 제대로 꾸미지 않은 채로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서지 않을 때도 있었다. 지금 기분과는 상관없이 서비스용 미소를 지으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아버지께 리모컨 건전지 심부름을 받았다. 자연스레 화장대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앉는데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니, 내가 겨우 동네 슈퍼 한 번 가는 데 이렇게 오버해야 해?' 뒤이어 찾아온 진-한 현자 타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잊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너 지금 뭐하냐? 이게 네가 선택한 모습이 맞아?'


딸, 친구, 후배, 동생, 승무원. 인생을 살아오며 수많은 이름표를 얻은 것은 사실이나 결국 나는 그저 나일뿐인데. 경계를 늦춘 사이 또 한 번 프레임의 함정에 빠졌구나 싶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왕년의 청개구리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반대되는 행동만 쏙쏙 골라해 가며 승무원의 이미지를 와장창 깨부숴보겠다? 뭐 이런 유치한 계획은 없다. 다만 사람들이 승무원에게 기대하는 모습에 나를 맞추지 않으려 한다. 무엇으로든 나를 포장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달까. 과도하게 착하고 싶지도 친절하고 싶지도 않다. 까놓고 말하자면, 그럴 수 있을만한 그릇도 아니다.

그저 솔직하게 풀어낼 나의 이야기가 부디 많은 이들의 딱딱한 사유에 크고 작은 균열을 만들어내길 바랄 뿐이다. 이 세상에 사각형은 직사각형이 전부인 줄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통해 정사각형을, 마름모를, 그리고 사다리꼴을 발견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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