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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걷는 여자 Mar 24. 2020

십수년 전의 단짝과 오해를 풀었다



이움이가 둘째를 낳았다더라.



 엄마가 슬쩍 눈치를 살피며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대답 없이 반찬을 깨작거렸다. 내 표정을 살피던 엄마가 말을 잇는다.


"이움이랑은 옛날엔 매일같이 붙어살았는데... 요새는 연락 좀 하나?"


엄마의 질문에 멀뚱이고 있던 나는 헛웃음이 터진다.


"아니, 안 하는 거 엄마도 알면서."


"... 필요하면 엄마가 번호 알아다 줄까?"


"..."


입을 꾹 닫았다. 아뇨, 엄마. 그럴 필요 없어요.

애초에 이움이 번호는 단 한순간도 지워본 적이 없는걸요.






  지금껏 소소하게 적어온 버킷 리스트에서 늘 상위 랭킹을 차지했던 것이 한 가지 있다. 수년이 흐르며 버킷 리스트 종이를 몇 차례나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단 한 가지 리스트만은 늘 깨끗한 종이 가장 윗 줄에 쓰였다. 다하자 프로젝트의 시작에 제법 잘 어울리는 내 첫 과제는 바로 '그리운 추억의 친구 만나기'였다.


 바쁘게 흐르던 시간이 온전히 내 몫이 된 스무 살의 봄쯤이었을까. 처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인생 연표를 그렸고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으며 신박하게도,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설문 조사지를 돌리기도 했다. 그리고 기나긴 회고 끝에 깨달았다. 내가 나로 자라날 수 있었던 이유의 팔 할은 사람이라는 것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예쁜 추억들이 지금의 나를 키워냈다는 사실을.

 나를 빚어낸 행복했던 추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그리고 기억이 닿을랑 말랑한 그 시작점에서 나는 이움이를 발견했다.


 





 이움(가명)이는 내 오랜 친구이다. 우리의 인연은 코흘리개 시절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가 되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그녀는 당연스레 내 곁에 있었고 우리는 바늘과 실처럼 어디든 함께 했다.  부모님이 서로 아는 사이였기에 그게 가능했던 것도 같다.

 뭐, 친구가 된 과정을 막론하고, 그 시절 꼬꼬마 하자의 눈을 빌려 얘기해보자면 이움이는 어디서나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였다.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손을 뻗을 줄 아는, 구김 없고 따뜻한 친구였고 유난히 웃음이 많았다. 신기하게도, 그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면 하나도 웃기지 않은 상황에도 비질비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움이와 점심시간마다 즐기던 맨홀 뚜껑 술래잡기, 소리를 악악 질러가며 겨루던 스키게임, 하교 후에 달려가던 학교 앞 떡볶이집, 철 없이 방방 뛰어놀던 내 침대 위.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 어디에나 남아 있는 추억들만은 십수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은 그 흔한 문자 한 통조차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지만.



 막역했던 우리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중학교에서 같은 반에 배정되고난 부터였다.

중학교 1학년이 된 우리는 서로 다른 반에 배정되었고 서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우리는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같은 반이 되어 마냥 기쁠 뿐!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속해 있던 무리와 이움이가 속해있던 무리는 학급 분위기니 교내 행사니 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하등 중요치 않은 문제로 종종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던 중, 같은 학급 친구였던 S의 이간질로 두 그룹 사이에 오해가 생겼고 끝내는 서로 등을 돌리게 되었다. 그 사이에서 난처해하던 우리는 불화가 장기화되며 자연스레 멀어졌다.

 훗날 S의 잘못이 밝혀져 서로 오해를 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멀어진 사이는 왜인지, 쉬이 좁혀지지 않았다. 더 이상 서로를 찾지 않았고 빈자리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또다시 부지런히 흘렀고 스무 살의 봄날에 이르러서야 행복했던 추억 한 켠에서 이움이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함께 웃고 뛰놀던 순간들이 내게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는지 깨닫고 나자 마음 틈새로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이움이가 보고 싶었다.   



  지금껏 변함없는 1순위 버킷 리스트였기에 사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두어 번의 접선 시도가 있긴 했다.

 첫 번 째는 약 7년 전, 생일 축하 연락이었다. 이움이의 생일 당일, 용기를 짜내어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축하해주어 고맙다는 답이 돌아왔다. 당시의 쫄보는 겨우 답장이 온 것에 만족하고 일단  후퇴했다.

 두 번 째는 4년 전의 '피자 카톡'이었다. 카톡 프로필을 보던 중 이움이의 프로필에 '아 피자 먹고 싶다' 라 쓰인 문구를 발견했다. 여전한 쫄보는 하루를 꼬박 고민한 끝에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이움아 잘 지내?
-응! 나야 잘 지내지. 너는?
-나도 잘 지내고 있어! 요새는 많이 바쁜가? 나중에 시간 되면 피자나 한 번 같이 먹으러 가자!
-뭐야ㅋㅋㅋ 알았어, 나중에 같이 가자!
-그래! 나중에 연락 줘. 잘 지내구
-응응 너도 잘 지내!


 나름 성공적으로 연락을 마쳤다고 생각했으나, 그 후로도 이움이에게서는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다.

상황이 이쯤 되자, 나는 나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당시에 적어도 우리 둘 사이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 같은데 혹시 나도 모를 새에 상처를 준 게 있나?
지금 내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연락하는 건 이움이에게 만남을 강요하는 게 되는 걸까?'  


 답을 알 수 없는 의문을 품은 채, 4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나대로 코미디 같은 하루하루를 맞닥뜨리고 있었다. 어차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생, 지금부터 하고픈 거 다 해보자는 심정으로 다하자 프로젝트를 결심했고 그 시작으로 이움이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지나온 시간에 놓친 오해가 있다면 풀고 싶었고, 상처를 주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다. 그렇게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이움아, 안녕! 잘 지내?
-응, 나야 잘 지내지.
-그렇구나. 음, 다름이 아니라 나는 요새 코로나 때문에 반백수 상태로 지내고 있거든. 같은 동네니까 혹시 시간 되면 커피나 한 잔 하자고 연락했어!
-그래? 그러면 내일 한시 반에 단지 앞 커피숍에서 볼까?
-응, 좋아! 그럼 내일 보자!

    

  속전속결이었다. 얼마나 오래 망설였는데 이렇게나 쉽게 약속이 잡히다니! 전혀 예상치 못 했던 상황이었다.

갑작스러운 진전에 적잖게 놀랐지만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다음 날을 기다렸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카페 2층 구석자리에 앉았다. 카페 안은 한산 했다. 이게 십몇 년 만이더라? 묘한 긴장감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분침이 약속 시간을 살짝 넘겼을 즈음, 커피 한 잔을 든 이움이가 2층에 모습을 나타냈다. 세월이 무색하게도, 이움이는 걸음걸이마저 예전 그대로였다. 마스크를 벗고 자리에 앉았다. 입가에는 어색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잘 지냈어?"


"응, 잘 지냈어. 아이고, 어색하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이움이가 어색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나는 사실 네가 만나자고 해서 무슨 일인가 했어. 옛날 친구들 만나고 다니기, 뭐 그런 거 하고 있는 거야?"


"어, 음, 맞아. 어떻게 예상을 했네. 옛날 친구들을 다 만나러 다니고 이런 건 아닌데, 여하튼 버킷리스트의 일부랄까."


"그렇구나, 나는 우리가 못 만난 시간이 되게 길었던 것 같은데 뭔가 너한테는 주기적으로 연락이 와서 무슨 일일까 싶었어. 결혼하나 생각도 하고."


 듣자 하니 이움이는 친구들에게 갑작스레 연락을 받은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들에게 종교 권유며 보험 권유며 갑작스레 청첩장까지 받아보고 나니 자연스레 내 연락 또한 경계했다고 했다.

 세월이 앗아간 신뢰가 얄궂게 느껴졌지만 여전히 털털하고 솔직한 모습에서 옛날의 이움이가 보였다. 나는 신천지도 보험 팔이도 예비 신부도 아니라고 너스레를 떨다가 조심스레 운을 뗐다.


"아니, 사실 다름이 아니라 나는 우리가 예전에 사이가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중2 때 이후로는 조금씩 멀어졌었잖아. 혹시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거나 하면 풀고 싶어서 연락했어."


 말을 들은 이움이는 오랜 기억을 되짚으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아니, 나는 딱히 그런 건 없는 것 같은데.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가?"


"아, 혹시 그때 뭔가 오해가 있거나 한 건 아니고? 나는-"


 이움이에게 내가 그간 오해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던 중2 당시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이에 돌아온 이움이의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우리 반에 그런 일이 있었어? 나는 솔직히 기억이 하나도 안나."


 이움이의 설명은 이랬다. 당시 이움이와 친구들은 한 학년 위 노는 언니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교 후에 이움이 무리를 불러내어 욕설을 퍼붓는 것은 일상이었으며 물건을 뺏고 가끔은 손을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외부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컸던 탓에 본인은 중2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학급 내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계면쩍어 했다.


"아니, 그 언니들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항상 그렇게 당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어. 선생님들한테 말하면 해결될 걸."


"그러게, 나는 네가 그런 일을 겪고 있는지 전혀 몰랐어. 티도 안 냈잖아."


"선생님들한테도 말하지 않는 걸 왜 같은 반 애들한테 이야기했겠어. 어찌 됐건 너한테 오해하고 있는 거 없어."


 이움이가 담담하게 말했다. 남몰래 숨겨온 이움이의 날들이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약간의 허무함이 밀려왔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실체 없는 오해를 쫓아왔구나.

 이야기는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초등학교 때로 이어졌다. 나는 신이 나 옛 추억을 잔뜩 끄집어내고는 '그때 기억나? 그때 기억나?', 연신 물었다.

 신이 나서 함께 맞장구 치치 않을까 했던 예상과는 달리 이움이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시간은 중2 때만이 아닌 듯했다.

 ‘정말?'

‘아 그게 너랑 놀던 거였나?'

‘내가 그런 적이 있었나?’

 그녀의 반응은 물음표로 점철되었다. 나는 꿋꿋이 말을 이었다.

  

 "나는 어쨌든 우리가 그렇게 멀어지고 나서 고등학생 때만 해도 공부하랴 뭐하랴 바삐 보내면서 다 잊히는구나 생각했는데, 음, 나중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되돌아보니까 내 좋았던 기억 속에 네가 꽤나 많더라구. 그래서 정말 고마웠어, 이렇게 돼서 아쉽기도 하고."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던 이움이가 말을 이었다.


"음 나는 사실, 그냥 무덤덤했던 것 같아.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엄청 관심을 쏟는 타입도 아니고 관심이 있더라도 궁금함 정도로 남겨두고 마는거지. 가까워지는 과정도 그렇듯 멀어지는 것도 무던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아, 그렇구나.

나는 그 대답에서 직감적으로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움이는 내가 아쉽지 않았다.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경우의 수였다. 모든 역사는 본인 위주로 쓰일 수밖에 없는 거라더니 딱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는 거구나.

겸연쩍어 어깨를 슬쩍 으쓱였다. 하지만 그게 다 였다. 딱히 서운하지도 아쉬운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그녀의 가식 없는 고백은 자신도 모르는 세월 동안 본인을 그리워했던, 친구의 오랜 진심을 위한 적절한 예우였다.




 딸랑. 이움이와 카페를 나섰다.

 

"다음번에는 네가 피자 먹자고 한 번 불러. 설마 이번에도 4년이 걸리진 않겠지"


그 말에 이움이가 까르르, 옛날같이 박장대소를 터트린다. 자신의 기준에서는 일 년 안에만 불러도 빠른 거라는 그녀의 얼토당토 없는 한 마디에 얼씨구, 기가 차 나도 함께 실소가 터졌다. 우리는 그렇게 서서 오래도록 웃었다.      






 이렇게 나는 첫 번째 다하자 리스트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오래도록 품어온 그리움이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록된 역사를 마주하게 될지 내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보라, 얼마나 재미있는가. 인생은 당연 두말할 것 없고 다하자 리스트의 결말마저 이렇듯, 예측불허다. 내 생각대로 순탄히 흘러가는 게 무엇 하나 없기에 다가올 순간이 더욱 재미있는거라구.


 혹자는 물을 수 있다. 오랜 기다림이 이렇게 마무리된 게 허무하거나 아쉽지는 않냐고. 물론 나 역시 사람인지라 사실 100%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다.

 하지만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오해를 푸는 것이었고 함께한 예쁜 추억에 감사를 전하는 것이었기에 목표를 이룬 지금, 나는 무척이나 개운하고 만족스럽다.

 따라서 그외의 어떤 감정도 지금만큼은, 자격이 없다.




 글을 보고 있는 당신, 혹시 그리운 누군가가 있는가? 돌아가고픈 과거가 있는가?

 그렇다면 나를 보라, 어차피 관계는 나만의 것이 아니지 않는가. 당시의 상황이 상대방에게는 어떻게 기억되어 있을 지는 들춰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다.

 직면하고픈 과거로 돌아가보라.

 돌아가서 맘껏 솔직하고 맘껏 그리워하고 맘껏 표현하자.

 누누히 말하지만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우리네 인생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방법은 매일에 충실하는 것 뿐이니까.



 이제는 4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이움이에게서 같이 피자 먹자는 연락이 오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드디어 오랜 그리움을 완전히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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