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시대에 거문고 장인이었던 백아(伯牙)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가장 잘 알아주었던 오랜 벗 종자기(鍾子期)가 숨을 거두자
“나의 소리를 이해해줄 이가 세상에 없는데 거문고가 더 이상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울부짖으며 거문고 줄을 끊었다 전해진다.
백아절현(伯牙絶絃), 애달픈 사연이 이 사자성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나니 어쩐지 네 글자 앞에 괜스레 숙연해지고 만다.
나에게도 종자기와 같은 이들이 있다.
물론 내게 '장인' 수준의 기술은 없다. 하지만 백아가 종자기 앞에서 거문고 연주하는 것을 가장 즐거워했다는 점을 들어 은근슬쩍 스스로에게 백아의 자격을 부여해볼까.
최근, 나는 감사하게도 나의 종자기들과 두 번째 하자 리스트를 이루었다.
바로 글쓰기 모임이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차마 발화(發話) 하지 못했으나 세상에 내놓고픈 뭉글뭉글한 마음을 오래도록 곱씹고 이에 상응하는 단어를 신중히 걸러내어 흰 종이 위에 형상화시키는, 그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
하지만 나의 글쓰기에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면 글의 뿌리가 되는 마음이란 녀석이 쉽게도 흔들린다는 점이었다.
모든 창조물은 마음을 기반으로 하기에 상황, 환경, 컨디션, 심지어는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서 쉽게 태어나고 부서지기를 반복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부서졌다. 차라리 겁을, 우울을, 좌절을 창조물로 탄생시킬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일단 부정적인 기분에 잠식되고 나면 눈 앞에는 도망, 회피와 같은 선택지밖에 보이지 않았다.
단단한 마음의 방어책을 세우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켜낼 수 있도록 좀 더 강해지고 싶었다.
그렇기에 나는 늘 연대를 꿈꿨다. 함께이기에 더욱 빛날 수 있는 글쓰기를 꿈꿨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기다리던 순간을 맞았다.
한 달 만에 비척비척 집에서 나온 반백수 셋은 한적한 카페 한구석에 모였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은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본인이 최근에 얼마나 오랫동안 집에 콕 박혀 있었는지 열과 성을 다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오구오구,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이들은 이 글의 주인공인 종자기이자, 놀랍게도 회사 동기들이다.
사실 우리가 입사 초부터 막역한 사이었던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서로를 마주칠 기회가 잦았던 것도 아닌데 어쩌다 방이라도 하루 함께 쓰게 되는 날이면 희한하게도 평소에는 잘 않는 속 얘기를 그렇게나 해댔다.
어렴풋이 추정해보건대, 서로 다른 삶 속에서 사뭇 비슷한 감정의 결을 느꼈던 것 같다. 같은 우물을 판 사람들은 서로 알아보기 마련이랄까.
작년 중순, 나는 브런치를 시작했다.
시작할 적만 해도 설렘에 마음이 간질간질했건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딘가 불편했다. 나만 알던 감정의 민낯을 타인과 공유하는 게 왠지 스스로 발가벗는 것만 같았고 작년에는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도 유난히 많았던 탓에 찾아온 글태기를 극복할 마음의 여유 또한 부족했다. 평정을 잃고 나자 아니나 다를까, 열심히도 휘청였다. 심지어 한동안은 글을 쓰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이러한 마당에 나를 아는 누군가에게 나의 글을 공개한다?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작년 여름, 비가 끝도 없이 내리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글밍아웃을 했다. 은근한 커피 향에 취했는지 쏟아지는 빗소리에 홀렸는지 알 수 없으나 구슬 언니에게 요새 글을 쓰고 있다 털어놓았다. 갖은 설득 끝에 기어이 얻어낸 글을 다 읽고 난 그녀는 형식적인 칭찬이 아닌 진심 어린 감상을 들려주었다. 나조차 의도치 않았던 글의 사각지대를 짚어내는 언니의 감상평은 그 이후로도 고된 창작 끝의 ‘사이다’가 되어 주었다.
홀리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시간 동기로서 지켜봐 온 언니는 왠지 비슷한 감정의 폭으로 내 이야기를 이해해줄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두 번째 글밍아웃을 감행했다.
'다 읽어봤어. 글에서 네가 느껴지더라. 너는 봄 같이 따뜻한 글을 쓰는구나.’
와, 소름. 그녀는 내가 줄곧 표현하고자 했던 글의 느낌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봄 향기가 은근히 풍기는 글, 구김도 포장도 없이 온전히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글. 언니는 내가 담고자 했던 나를 알아봐 주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우연찮게도 글쓰기는 셋의 공통분모이기도 했다.
마음의 우물을 글로 길어내는 구슬 언니와 올곧은 시선을 꾸준히 글에 담아오던 홀리 언니.
‘글’이라는 거대한 우주 속 서로 다른 궤도를 돌던 소행성들이 우연한 지점에서 충돌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우리 같이 글 써보는 거 어때?"
라는 뜬금없는 막내의 제안에 언니들이
"오, 대박. 어떤 식으로?"
라며 놀란 기색은커녕 화색을 띤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당연한 결과가 여태껏 당연하지 않았던 이유는 당장 주변을 살펴봐도 알 수 있듯, 글쓰기를 취미로 두고 있으면서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실로 하늘의 별 따기였기 때문이다.
말을 맞추기라도 한 듯 글쓰기 모임 창단을 위한 의견과 규칙들이 모아졌고 우리는 밴드를 개설하여 이틀에 한 번 씩 주제를 정해 글을 올리기로 했다.
그렇게 글쓰기 모임 글로우(글과 로망과 우리)가 탄생했다.
덕분에 나는 요새 다양한 영역의 글들에 도전 중이다.
산문에, 시에, 논설문까지. 주제에 맞춰 글감을 모으고 흰 종이에 마음껏 나를 내려놓는다.
나의 글을 알아주는 든든한 종자기가 있기에, 오늘도 망설임 없이 백아가 되어 연필을 잡는다.
또, 나 역시 그들의 종자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맘을 다해 글을 읽고 감상을 남긴다.
이들이 곁에 있는 한 ‘하자절필’은 없을 듯싶다.
감사한 요즘이다.
두 번째 하자 리스트도 성공적으로 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