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쓰는 요양보호사의 하루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쿵

by 김경화

1. 30분의 저주, 혹은 30분의 간구


요양원의 밤은 정적 속에 잠들어야 마땅하지만, 내가 근무하는 3층의 공기는 늘 날카로운 소음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시계의 짧은 바늘이 채 한 칸을 이동하기도 전에, 어김없이 벽을 뚫고 날아와 내 고막을 타격하는 소리가 있다. 띵동. 호출 소리다. 정확히 30분. 이 숫자는 이제 내게 단순한 시간의 단위가 아니다. 그것은 신경을 짓이기며 내려오는 금속성 소음이자, 내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러 오는 불청객의 목소리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어르신의 마지막 길목을 지켰다. 짓무른 살점을 닦고, 굳어버린 관절을 펴드리는 일은 내게 익숙한 사명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놓인 현실은 사명감이라는 숭고한 단어로 포장하기엔 너무나 비릿하고 처절하다. 남자 와상 환자인 그는 30분마다 기저귀를 확인해달라 떼를 쓰고, 닿는 곳마다 아프다며 내 마디 굵은 어깨를 주물러달라 무리하게 요구한다.

그의 요구는 끝이 없다. 해주면 해줄수록 그의 욕구는 화수분처럼 솟아나고, 나의 친절은 어느새 그의 당연한 권리가 되어 나를 옥죄어온다. 이제는 그가 입을 떼는 모양만 보아도, 아니, 낮이나 밤이나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내 온몸의 근육은 방어 기제처럼 딱딱하게 경직된다. ‘소리만 들어도 싫다’는 감정은 단순히 귀찮음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싶은 한 노동자의 처절한 거부권 행사이며, 소진될 대로 소진된 영혼이 내지르는 비명이다.


2. 무너진 경계, 인간과 짐승 사이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나는 ‘인간 존엄’의 가치를 수없이 외웠다. 클라이언트 중심의 케어, 그들의 자기결정권, 그리고 끝없는 수용. 책 속의 문장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고결한가. 하지만 3층이라는 특수 구역, 인지 능력이 거세된 이들이 모인 이 현장에서 그 문장들은 휴지 조각처럼 가볍게 흩날린다.

말이 통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설물을 쏟아내며, 타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휘두르는 그들을 보며 나는 자문한다. “이곳에 인간의 향기가 남아 있는가? 이들은 사람인가, 아니면 본능만 남은 존재인가?” 특히 또 다른 남자 어르신이 던지는 추잡한 성적 농담들은 내 인내의 둑을 무너뜨린다. 치매라는 이름의 면죄부 뒤에 숨어 매일같이 쏟아내는 성희롱은 내 영혼을 갉아먹는 오물과 같다.

나 역시 그리스도인이기에, 예수의 제자로서 그들을 긍휼히 여겨보려 숱하게 노력했다. 하지만 나도 살점과 피를 가진 인간이기에, 그들의 비인간적인 행태 앞에서 무너지는 자책감을 피할 길 없다. “미친 소리 하지 마세요.”, “쓸데없는 소리 마세요.” 단호하게 내뱉는 나의 날 선 목소리는 그들을 향한 공격인 동시에,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다. 내가 이 선을 지키지 못하면, 나는 요양보호사라는 전문직 직업인이 아니라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노예로 전락할 것만 같아 두렵기 때문이다.

거기에 정신과와 치매를 앓는 또다른 할머니 낮에는 괜찮은데 밤만 되면 사람을 의심하고 '약 타지마라', '신발에 물넣지마라'하면서 어떤 날에는 의심이깊어 밤을 뜬눈으로 보내고 워크바도 팽개칙 자해를 하고 그런 어르신이 배회를 하면서 낙상날까 마름은 조마조마.

또 한 남자 어르신은 초로기 치매로 매일 정신없이 배회하여 움직일때마다 낙상방지하기 위해 사람이 붙어서야 하고 .

또 다른 어르신은 식사거부하고 ㄸ 다른 어르신은 밤낮으로 본인하고 놀아달라 휠체어 밀어달러. 그외에도 엘튜브4명. 식사수발 대 여섯명. 현장은 녹록치 않다


3. 고장 난 기계의 소음, 그리고 침묵의 방패

결국 나는 침묵을 택했다. 기저귀를 갈고 체위를 변경하는 손길은 4년 차의 숙련됨으로 기계처럼 정확하지만, 내 입술은 굳게 닫혔다. 그가 내뱉는 부정확한 웅얼거림을 굳이 해독하려 들지 않는다. 그것은 소통의 거부가 아니라, 나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셔터’다. 그의 목소리가 내 영혼의 안마당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나는 마음속 귀를 닫고 그의 부르짖음을 ‘수리할 수 없는 고장 난 기계의 소음’이라 규정해 버렸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철회’이자 ‘탈인격화’의 방어 기제일 것이다. 하지만 현장의 나에게 이것은 ‘생존 전략’이다. 동료들은 기록도 하지 않은 채 부르는 대로 기저귀를 갈아주며 질서를 무너뜨리고, 관리자들은 현장의 고통을 모른 채 “아프다니 주물러 주라”며 무책임한 자비를 강요한다. 이 고립된 싸움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나는 이제 그 소리들을 내 마음의 그릇에 담지 않는다. 그가 내지르는 소음은 내 방어막에 맞고 튕겨 나가는 무의미한 파동일 뿐이다. 나는 그의 아픔을 대신 책임질 이유가 없으며, 나는 그저 그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돕는 조력자일 뿐임을 명확히 선을 긋는다. 이 선을 긋는 순간, 역설적으로 나는 다시 케어의 주체가 된다. 끌려다니는 노예가 아니라, 나의 속도와 나의 원칙으로 현장을 통제하는 전문가로 돌아오는 것이다.

4. 사명자의 길 : 나의 십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상자의 모든 무례함을 무조건 받아주는 ‘종교적 친절’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들의 비참함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려 애쓰되, 동시에 나 또한 하나님의 성전임을 잊지 않는 ‘거룩한 경계’를 세우는 일이다.

성령이 충만한 제자의 삶은 30분마다 울리는 벨 소리를 ‘나를 부려 먹는 소리’가 아니라 ‘주님의 긍휼이 필요한 영혼의 비명’으로 해석하는 영적 치환이다. 비록 내 체력은 바닥을 치고 마음은 지쳐있을지라도, 내가 닦아내는 그 육신이 주님이 사랑하시는 영혼임을 기억하며 내 손을 주님께 빌려드리는 과정이다.

성희롱을 일삼는 입술을 보며 사탄의 방해를 대적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을 보며 인간의 죄성 아래 놓인 육신의 한계를 애통해하는 것. 그것이 내가 3층 복도에서 지고 가는 나의 십자가다. “주님, 제 인내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주님의 인내를 제게 부어주소서.” 이 짧은 화살기도는 야간 근무의 긴 터널을 지나게 하는 유일한 등불이 된다.


5. 그럼에도 그들이 궁금해서 다시, 신발 끈을 조이며 출근한다


나는 책 쓰는 요양보호사다. 나는 오늘 밤의 이 처절한 기록을 통해 요양보호사가 처한 인권의 사각지대를 고발하고, 동시에 이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수많은 동료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 우리가 느끼는 회의감은 우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만큼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갈망’이 크기 때문에 생기는 정직한 반응이다.

오늘도 야간 근무를 위해 무거운 신발 끈을 조인다. 벨 소리는 또 울릴 것이고, 추잡한 농담과 무리한 요구는 다시 나를 시험대에 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소음들이 내 인격의 가치를 결정짓지는 못한다는 것을. 나는 그저 고장 난 기계들 사이를 묵묵히 통과해 나가는, 가장 강인한 생존자이자 사명자다.

아침 해가 뜨면 나는 이 지옥 같은 3층을 나서서 ‘진짜 나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펜을 들 것이다. 현장의 오물을 닦아내던 그 손으로, 인간의 존엄과 돌봄의 가치를 기록하는 글을 쓸 것이다. 그것이 내가 노예로 전락하지 않고, 케어의 주체이자 내 삶의 주인으로 우뚝 서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 밤, 주님께서 나의 지친 어깨를 안아주시길 기도하며, 나는 다시 3층의 복도로 걸어 들어간다. 그곳에 주님이 계시고, 그곳에 내가 기록해야 할 삶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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