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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차 Aug 18. 2021

벤자민 서 여사

나에게 온 아기


숫자는 나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던 내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단번에 알려주는 노화의 주 증상이 나타났다. 동네 애기들을 바라볼 때 달라진 내 눈빛이다.

애기들, 더 정확하게는 만 2세에서 5세 정도의 유아들이 하는 말이며 행동들이 내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워졌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그들을 만나면 평상시에는 무척 무표정한 내가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다.

 그들의 보호자가 아닌 제삼자가 되어서 그들을 지켜보면 정말 재미있다. 도대체 어떤 위험한 곳으로 끌려간다고 생각하길래 안 가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떼를 쓰는지.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병사가 무기에 집착하듯 그들은 편의점에서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과자와 사탕에 집착한다.

 아.... 일주일에 딱 이틀 정도만 저들과 같이 살고 싶다.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그 '먹는 입'도 보고 싶고, 샤쿵샤쿵 볼을 대고 안아 주는 것도 하고 싶다. 햇살이 따뜻한 오후에는 산책도 같이 하고 끊임없이 해대는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대답도 해 주면서 말이다. 그들의 밤낮이 바뀐다면 밤에는 화내지 않고 같이 놀아주고 낮에는 쌔근쌔근 자는 얼굴을 마냥 바라볼 자신이 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정말로 내 인생에 갑자기 돌봐야 할 애기가 생겼다. 밥을 먹다가 졸기도 하고, 밤에는 잠을 안 자고 서성 거리기도 한다. 과자를 보면 일단 움켜쥐고 본다. 그러다 나와 얼굴이 마주치면 활짝 웃으면서 안아달라고 한다. 무서움을 많이 타고 고집이 매우 세다.


애기는 나의 엄마다. 파킨슨 성 치매를 앓으시는 엄마는 이렇게 종종 애기가 되어 우리에게 나타난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마법에 걸린 듯 애기가 되는 엄마를 나는 동네 애기 바라보듯 웃으며 볼 수가 없다. 미소는커녕 화를 내며 잔소리로 윽박지르기 일쑤이다.


밥 먹다가 꾸벅꾸벅 졸면 밥을 먹어야 기운이 난다며 신경질적으로 억지로 깨운다. 과자를 움켜쥐고 놓지 않을 때는 그러다 배 아프면 또 응급실에 가야 하니 고집을 부리지 말라고 소리를 지른다. 겨우 겨우 자나 싶어서 한시름 놓으면 5분 만에 깨어서 벌떡 일어나는데, 그럴 때는 그렇게 밤낮이 바뀌면 아버지가 힘드시다며 나무란다.


애기들이 하는 행동들이 대부분 그들의 잘못이 아니듯이, 엄마는 잘못이 없다. 사실 엄마는 잘못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억울하다. 애기들처럼 내가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이 자라기 만을 기다려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제를 이렇게 만든 책임자를 찾아 추궁해서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예전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보고 한동안 내 인생 영화라 여겼던 적이 있다. 얼마 전 영화의 원작인 고전 단편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을 읽게 되었다. 원작은 영화와는 많이 달랐다. 소설의 벤자민은 로맨틱한 순정남도 아닌 괴팍한 노인의 몸 와 마음으로 태어난 애기에 불과했다. 애기 벤자민은 아버지 서재에서 시가를 피우다 들키기도 했고 유치원에서는 노인처럼 늘 꾸벅꾸벅 조는 바람에 결국은 유치원을 그만 두기도 했다.

엄마랑 비슷하다. 바람이 부는 창가에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 문득 엄마가 할머니의 몸을 하고 태어난 애기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니 왠지 웃음이 난다.

오늘도 엄마는 아버지에게 관심을 얻기 위해 떼를 쓰며 소리를 지른다.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아버지인 미스터 버튼의 관심과 사랑을 원하는 벤자민처럼.

벤자민은 유치원에 적응하지 못했고, 엄마는 주간 보호센터에 적응하지 못했다. 아버지 서재에서 시가를 피우며 어른 행세를 한 아기 벤자민처럼 엄마도 나에게 애들 교육 문제로 잔소리를 하거나, 아직 혼자인 언니의 중매를 서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건다.

엄마가 벤자민 버튼과 동격 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힘들고 지치는 이 모든 일들이 웃기고 재미있어진다. 목욕을 할 때마다 서씨성을 가진 이 벤자민 여사는 자기 피부가 곱다고 나에게 자랑을 한다. 나도 질세라 무슨 할머니 피부가 이렇게 곱냐고 맞장구를 쳐주며 이러다 점점 젊어지는 것 아니냐고 너스레를 떤다.


벤자민 서 여사님이 나이를 거꾸로 먹든 제대로 먹든,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하든 밥을 안 줬다고 떼를 쓰든, 나는 이 분이 매 순간은 아니더라도 잠깐이라도 행복을 느끼며 지냈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희미해지는 엄마의 그날이 올 때까지 내가 지치지 않고 엄마를 보살피고 웃게 할 수 있을까?

 나의 서 여사가 종종 웃을 수만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엄마를 벤자민으로도 만들고 동네 애기로도 만들 수 있다.


 이제 편의점에서 동네 애기들을 만나면 내 아이들의 어릴 적 모습이 생각나기보다 벤자민 버튼을 닮은 엄마 생각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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