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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차 Aug 25. 2021

사라진 친구들

작별인사 vs  나가기

웃고 있던 친구들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모두 사라졌다.

다음에 또 만날 날을 정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그럼 나 나간다!" 경고까지 하고 모두 나왔다.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걸까?

멀리 사는 친구들을 이렇게 온라인 미팅으로 만나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떠는 것이 벌써 거의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비디오와 오디오를  자유자재로 껐다 키는  앱 사용법이나, 혹은 얼굴이 작아 보이게 노트북의 위치를 현명하게 정하는 것 등은 이제 매우 익숙해졌으나, 모임이 끝난 후 온라인으로 헤어지는 것은 아직도 영 어색하고 종종 쓸쓸하다.


보통 특별한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질 때는 헤어지는 시간이 다소 길어지기 마련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서로의 손을 잡다던가,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감추며 따뜻한 포옹으로 말없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던가 하면서 말이다. 뒤돌아서 걸어가는 모습을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바라보면서 '아~~, 언제나 또 보나. 그래도 이렇게 보니 좋네.' 위로를 하며 나도 돌아서서  최대한 밝고 경쾌하게  걷는다. 집에 오는 지하철 안 혹은  버스 안에서 음악을 듣거나 뉴스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내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고, 집에 들어와 잘 들어갔냐는 문자메시지를 서로 주고받으면 마침내 오늘의 소중한 만남에 기분 좋은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때문에 생긴 변화중  가장 두드러진 이슈는 아무래도 온라인 활동인 듯싶다.  온라인 수업, 온라인 회의, 온라인 취미 클래스, 심지어 교회나 성당의 구역 모임까지 이제는 온라인이다. 예전 같았으면 생소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불필요하기에 쉽게 시작하지 않았을 이런 것들이 지금은 어느 누구에게나 매우 친근해졌다.

그렇다 해도 헤어질 때 마치 타임슬립 영화에나 나오는 것처럼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람이 사라지는 이 느낌은 영 기분이 나쁘다. 친구들에게 왠지 둔한 언니라는 느낌을 줄까 봐 내가 먼저 '나가기' 버튼을 누른다 해도 어색함은 마찬가지이다. 다음에 볼 때까지 잘 지내라며 어깨를 토닥거려주고 돌아서서 걸어가는 대신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는 대신 어정쩡한 자세로 멍하니 서서 내가 이제 뭐 하려 했더라 고민하면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급작스럽게 번진 온라인 모임과 회의가 활성화되어서 그런지 이제는 미팅 중 내 뒤로 보이는 배경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되었다. 단조롭고 삭막한 벽지나 커튼 대신, 산이나 바다, 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을 배경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서비스가 추가되는 것을 보면  모니터 앞에서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것에 황량함을 느끼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닌가 보다. 그렇다면 구글이나 줌은 이제 곧 상대방 얼굴이 갑자기 사라지는 지금의 '회의에서 나가기' 기능에서 '서서히 친근하게 헤어지는 엔딩' 기능을 추가할지도 모르겠다. 회의에서 나가기 직전에 웃는 내 얼굴이 자동으로 저장되고, '나가기'를 누르면 얼굴에 가상의 몸이 생기고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뒷걸음질 치면서 걸어 나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얼굴 옆에는 말풍선이 더해져서 내가 미리 저장해놓은 말들로 인사를 면 어떨까?


나가기--> 나가는 동작 선택--> 작별인사 선택-->"오늘 얼굴 봐서 정말 좋았어. 오랜만에 웃는 네 모습 보니까 나도  좋은 하루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힘들면 언제나 연락하고, 내 맘 알지? 조심해서 들어가~~" --> 걸어가는 모습이 서서히 작아지면서 희미해짐.


친구들과의 온라인 미팅이 끝난 후 다소 허전한 마음으로 시작된 나의 쓸데없는 공상이 여기까지 미치자, 정말 이렇게 모든 것이 변하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난다. 이제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가까이 앉아 밥을 먹고 손을 잡으며 수다를 떨고 포옹을 하며 헤어지는 일보다, 온라인으로 만나 악기를 같이 연주하고, '해피아워'는  모니터 앞에서 각자 준비한 술을 마시면서 하고, 헤어질 때는 각자의 VR 캐릭터로 작별인사를 하면서 헤어지는 일이 더욱 흔한 일상이 되는 건 아닐까. 팬데믹이 종식되고 모든 것이 그전으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방 안에서 쉽게 모두의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할 수 있으니 그냥 하던 데로 온라인으로 만나자고 하면 어쩌지. 익숙해진 편리함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다.


안 되겠다.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일단 장소와 시간이라도 정해 놓아야겠다. "바쁠지 모르니 그냥 편하게 우리 하던 데로 온라인으로 만나자"라고 하는 사람이 없도록 아예 공지를 하는 것이다. 경기도에서 서울 가 한국에서 미국을 가일단 정해두자. 시경계선을 넘고 태평양 날짜 변경선도 훌쩍 넘어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는 상상을 하다 보니 벌써 마음이 바빠진다. 누군가와의 만남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나는 장소가 친구가 오기 편한 곳인지 두 번 세 번 알아보고, 식사를 하게 된다면 역시 서로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조심스럽게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방향으로 정하려 노력을 하게 된다. 장소와 메뉴를 함께 상의하고 고르는 시간, 외출 준비를 하는 시간, 약속 전후의 이동시간 등의 이 모든 것들이 친구와의 '약속'에 딸려오지만 이들은 결코 낭비되는 시간들이 아니다.


요즘은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최대한 빠르게 목표를 달성하지 않으면 비효율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지만, 효율성을 따지면 안 되는 어떤 가치들은  좀 내버려 둬야 하지 않을까.   '너와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는 유명한 드라마의 대사처럼, 소중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그 두 시간뿐만이 아니라 만남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헤어지고 집에 도착하는 마지막 순간까지의 그 모든 것이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언제 어디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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