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차 Oct 08. 2021

나에게 위험천만인 이 남자

존재하지 않아 줘서 고마운 바로 그 남자

로맨틱한 사랑  청춘들의 특권이다!라고 이제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고 어르신들도 여기저기서 멋지게 외치시니  말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 그것이야 말로 나이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푹 빠져버리고 말아서  하루 종일 그 사람을 생각하며 가슴속에 팔랑팔랑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16살 볼 빠알간 사춘기 소녀도 백발의 할머니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사랑에 빠지는 나이와 수순에 대한 매뉴얼이 담긴 이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말이지... 내 나이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결혼을 하고 배우자가 있긴 하지만..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글쎄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사랑은 고사하고 주변에 있는 인간들에게 실망하고 지친 것이 한두 번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다면 그것은 나와 사랑에 빠져야 되는 것이 운명으로 정해진 이 세상 단 한 사람, '소울 메이트' 정도는 되어야 가치가 다.


소울 메이트라.. 우리는 아마 죽을 때까지 지구 상 어딘가에 나의 소울 메이트가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소울 메이트인 나를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채워지지 않은 외로움으로 고독하며, 아직도 자신에게 짠 하고 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사람.


자. 그럼 이제 과감하게 나의 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일단 내가 여자고 이성애자이니 그 안타까운 소울메이트는 남자로 하는 게 맞겠다. 이 남자는 음악을 좋아하고 종종 혼자 술을 마시면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내성적인 사람이라 친구들이 많진 않지만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죽마고우라고 부를 수 있는 친구들 두세 명 정도와 술도 마시고 수다도 떤다. 아무리 술을 마셔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 남자는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없는 외로움을 느끼며 그를 위로해주는 음악을 듣는다. 이 남자의 외로움이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향한 그리움에서 비롯되는  것을 나는 알고 있지만,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법이라 이 남자 왜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지는 모르는 채 이렇게 또 하루를 보낸다.  

어쨌든 나의 소울 메이트는 야심한 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한껏 센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어떨 때는 음악을 듣다가 눈물이 날 것만 같은데, 그럼 또 너무 창피하니까 아.. 나 또 왜 이러지 하며 눈물이 쏙 들어갈만한 생각을 한다. 어제 본 유튜브 웃긴 영상이라던가, 친구 놈의 어이없는 카톡 내용이라던가.  친구 놈을 생각하고 있자니 갑자기 보고 싶어 져서 나의 소울 메이트는 그의 최애 곡을 친구한테 보낸다. 친구 놈한테 바로 카톡이 온다. '아.. 뭐야.. 혼네? 누굴 혼넨다는 거야? 지루한 팝송. 난 무조건 8090 가요인데. 터보 없냐?'


아.. 안타깝다. 이 남자가 내 핸드폰의 플레이 리스트를 쭉 훑어본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음악의 90프로 이상이 자신의 플레이 리스트와 같다는 것을 알고 20억짜리 미소를 지을 텐데... 그 미소는 마치 어린아이가 서  처음 솜사탕을 맛보았을 때  보여주는 그런 미소일 것이다.  여하튼 플레이 리스트를 보여줄 수 없어 그 미소를 볼 수 없는 나는 안타깝기만 하다.


어디 음악뿐이랴.  왓차의 '다 본 작품' 리스트와 '보고 싶어요' 리스트 또한 90프로 이상의 싱크로율을 보여줄 텐데... 이 남자와 내가 만난다면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안 가는 높은 가을 하늘 아래 사람없는 공원에 앉아 감명 깊게 본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집에 가는 막차를 놓치고 말 데..(이래서 드라마는 함부로 보면 안 된다. 남녀가 함께 있다가 막차를 놓친다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사람들은 들으시오. 막차 놓치면 카*오 택시로 편하게 택시 타고 집에 가면 됩니다.)


단지 영화와 음악의 취향이 같다고 전 세계 인구 80억 중 딱 한 명이라는 나의 소울메이트로 불릴 수는 없을 것이다. 소울 메이트라면 내가 모르는 내 마음도 단번에 알아차리고 위로해 줄 수 있어야 하겠지. 개인적으로는 엑스맨이나 스파이더맨이 되는 것이 더 수월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나의 소울메이트는 내가 힘들 때 내 마음을 읽고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서 살짝 안아주고 갈 것이다. 누군가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이렇게 해줬으면 싶은 그 순간! 이 남자는 귀신같이 나타나서 딱 그렇게 해주고 간다. 이것뿐이랴.. 이 남자는 나에게 때가 되면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골라서 스을쩍 내 책상에 두고 간다. '내가 좋아하는 책인데 너도 좋아할 것 같아서'라는 메모와 함께.  그가 추천해준 책은 늘 나의 인생 책이 되고 그가 밑줄 그은 부분은 나는 눈물 없이는 못 읽는 부분이 되고 는 것이다.


자,. 이쯤 되면 나의 소울 메이트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젊은이 시절에 소개팅을 주선해준다며 어떤 스타일이 좋아? 하고 사람들이 물으면 꼭 " 아.. 저는 딱히 조건이 있는 건 아니고요. 그냥 느낌이 맞는 사람을 찾아요"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 안 만나겠다는 소리 거나 연애를 무슨 무지개 위 날아다니는 유니콘쯤이라 여기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어렵지 않다.  이처럼 구체적이고 명확한 조건이 있으니  남자를 찾는 것은 전혀 힘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와 음악의 취향이 같고 말이 없으며 내 마음을 읽는 독심술이 있는 것으로 될까?

자. 이제 그의 일상으로 가보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애정 하는 영화를 보는 그의 집이 쓰레기장이라면 나의 소울메이트는 단숨에 쓰레기 메이트가 되고 말 것이다. 일단 그는 집에 물건이 많지 않고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이다. 필요 없는 것은 잘 사지 않지만 내가 필요한 것은 또 어떻게  알고 척척 사 오는지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인 것이다. 언제깔끔하고 깨끗하지만 그렇지 않은 환경에 있다 하더라도 싫은 티를 내지 않고 알아서 먼저 정리하고 청소를 하는 사람.. 아... 청소를 하는 남자의 섹시함이란!


이제 거의 다 왔다. 이제 마지막, 성격이 남았다. 내성적이라 말수도 적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며 내 마음을  읽는 신기방기한 능력이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정리정돈까지 잘하는 깔끔남인 나의 소울 메이트. 그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한없이 낙천적인 성격에 있겠다. 지저분한 것은 못 보는 깔끔남이지만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고 늘 긍정 에너지가 넘치고 말은 적 이 남자!  



하하하하하.. 나도 양심은 있는 건지 여기까지 쓰다 보니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 이런 남자가 진정 존재한다면 20년 동안 의리를 잘 지켜온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세상에 이런 남자는, 아니 이런 사람은 없다. 이런 남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의 소울 메이트는 이런 사람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미안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말 고마운 그 남자에게 나는 오늘도 내가 발견한 음악을 소개해주려 한다. 내가 보낸 문자에 그는 바로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도 이 곡 너에게 보내주려고 했는데 한발 늦었네.'



고맙다. 나의 소울 메이트여. 존재하지 않아 줘서 고맙고, 그래도 가끔 이렇게 꿈꿀 수 있게 해 줘서,





남편에게 존재하지 않아 다행인 나의 소울메이트에 대해서 글을 썼다고 말했다. 스포츠 중계를 보고 있던 그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묻는다. "야.. 너 소울 메이트는 나 아니었?"


나는 엄마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이고... 그랬구나.. 그렇게 생각했구나..."










작가의 이전글 똑똑히 들으시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