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박물관에 간 적이 있다. 어떤 박물관에 갔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은 없다. 어린 시절 쓴 일기처럼 자발적으로 간 것이 아니라 방학 과제를 위해 갔었거나 부모님의 손에 이끌리어 갔었다. 박물관보다는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테마파크에 가고 싶었다.
집 근처에 국립농업박물관이 생겼다. 작년 회사를 퇴사하고 지금 회사에 입사하기까지 6개월 동안 쉬면서 다니던 산책로에 박물관이 있었다. 박물관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산책로에 있어서 입장료가 무료여서 쑥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 별세계가 있었다.
해냄 출판사에서 출간된 『청소년을 위한 박물관 에세이』는 해냄 출판사의 대안교과서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수능 논술 교과와 연계한 청소년 필독서이기도 하고, 청소년들의 진로교육을 위한 청소년 지식 교양 인문서이기도 하다. 5명의 박물관 학예연구관과 2명의 교육대학 교수가 함께 쓴 공저다. 저자 중 한 명인 김인혜 작가는 내가 예전에 읽고 서평을 쓴 해냄 출판사의 『살롱 드 경성』의 저자이기도 하다.
박물관은 우리의 편견 속에 재미없는 공간이 아니다. 사실 박물관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있다. 역사와 미술 작품뿐 아니라, 게임, 애니메이션, 로봇, 차, 인형, 동화책, 곤충, 만화, 케이팜, 음악, 춤, 범죄, 인물, 컴퓨터, 공룡, 동물, 식물 등의 다양한 박물관들도 있다. 조용히 읽고 보는 것을 넘어 만지고 놀고 체험하는 박물관도 많다.
국립한글박물관이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처럼 박물관 명칭이 붙은 것만 박물관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쟁기념관, 헬로키티아일랜드, 소래역사관, 박인환문학관, 충청북도농업과학관 등 박물관으로 분류된 곳만 박물관은 아니다. 박물관의 개념에 기초하여 보면 창경궁, 화순 고인돌 유적, 서울동물원, 서천 황새마을, 안동 하회마을, 제주 빛의벙커 등도 넓은 의미에서 박물관이다. 지붕이 없는 노천 박물관도 존재하며, 박물관의 개념도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대상을 유물, 유산, 문화재, 오브제로 부르는데, 비슷해 보이지만 용어들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어, 맥락에 따라 구별하여 쓸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문화재보호법을 만든 1962년 이후로는 문화재를 공식 용어로 사용했으나, 2022년 4월 이후에는 문화재 대신 유산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한다. 최근에는 박물관 및 미술관 전시물을 오브제라 부르는데 박물관화 된 것을 말한다.
박물관의 목적으로는, 수집 및 보관, 관리 보존, 조사 연구, 전시, 교육, 문화 향유, 휴식과 치유, 소통 등이 있다. 최초의 박물관을 15세기 이후 유럽의 미술관이나 자연사 박물관으로 보기도 하고, 고대 그리스의 뮤제이온으로 보기도 하고, 메소포타미아 바빌로니아에서 그 원형을 찾기도 한다. 최초의 큐레이터도 메디치 가문 같은 유럽의 재력가로 보기도 하고, 고대 그리스 뮤제이온의 학자로 보기도 하고, 신바빌로니아의 여사제이자 공주 엔니갈디-난나로 보기도 한다.
유물의 가치는 아는 만큼 보인다. 그렇지만 객관적 지식이 없다 하여 전시를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보면 된다.
박물관의 역할 중 하나는 조사와 연구인데 이는 가치를 공유하는 전시를 위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가 발굴이 되기 때문에 조사와 연구는 결과물로서의 전시보다 중요하다. 박물관에서는 작품을 전시하는 큐레이터, 전시 작품과 자료의 운송 설치 보험 가입을 진행하는 레지스트라, 전시장을 설계하고 설치하는 디자이너,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에듀케이터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협업한다. 현재 박물관의 구성원들은 더 세분화되어 가는 경향이지만, 전시를 만드는 최후의 사람은 관람객이다.
아카이브로서의 박물관은 수집하고 보관하는 장소이다. 인류의 조상은 문자를 발명하여 점토판과 파피루스에 기록하였다. 인류는 종이를 넘어 지금은 디지털 세계에 기록한다. 현재의 아키비스트는 공기 중에서 종이가 산화되는 것을 방지할 뿐 아니라, 서버에서 데이터가 보존되는 것도 관리한다.
박물관에도 과학자가 필요하다. 문화유산도 세상 만물과 마찬가지고 시간에 흐름 앞에서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박물관의 과학자는 유물은 보존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보존과학자는 과정마다 사진 촬영과 현미경 촬영을 기록으로 남긴다. 보존과학자들은 깨진 조각을 붙이고 빈틈을 메워 넣기도 한다.
최근 미술관은 교육적 기능이 확대되어 다양한 관람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학습과 해석에서 관람객 중심의 미술관 교육으로 변화하고 있다. 스스로 해석하고 즐겁게 참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박물관도 첨단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여 변화하고 있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고해상도 영상, 홀로그램, 매핑 영상, 미디어파사드 등으로 실감 나는 실감 콘텐츠를 만든다. 점점 똑똑해지는 로봇이 전시 해설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해설 로봇 큐아이가 있다. 가상공간 메타버스에서 국보 반가사유상을 만질 수 있다. 대체 불가능한 토큰 NFT는 문화유산에도 접목하여 유산의 희소성과 독점적 소유권을 보호할 것이다.
두 살 아들 요한이랑 다양한 박물관에 다녀서 아들의 시야를 넓혀 주어야겠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도 박물관이 있다. 국립농업박물관이 있고, 수원시립미술관이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도 넓은 의미의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