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은 유명 작가이지만, 난 공지영 작가를 잘 몰랐다. 아주 오래전 그녀의 소설 <고등어>를 읽었었다는 기억만 있지 그 소설의 내용은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공지영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도 싫어하는 작가도 아닌 잘 모르는 작가였다. 내가 공지영 작가에 대해 아는 바는 유명 작가이며 논란에 중심에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
공지영 작가는 1981년에 대학교 1학년이었고, 나는 1980년 1월생으로 79년생과 학창 생활을 보내고 재수를 하고 80년생과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공지영 작가는 젊은 시절 냉담기를 거쳤지만 가톨릭 세계에서 살았고, 나는 30대 잠시 무신론자가 되었다 돌아왔지만 개신교 세계에서 살았다. 그렇다는 것은 공지영 작가와 나는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의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난 이데올로기 이후 세대라 이쪽에도 있어보았고 저쪽에도 있어 보았다. 이데올로기 이후 세대라 이데올로기 때문은 아니고, 어떤 시절에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가 인간 사회를 구원할 거라 믿었고, 어떤 시절에는 돈이 인간 사회를 구원할 거라 믿었다. 지금은 그 중간이란 것은 아니다. 난 지금 어디 한쪽에 있다. 다만, 언젠가 직업 작가를 꿈꾸는 작가 지망생으로서, 나의 성향을 내 이름을 건 글에 드러냄으로써, 잠재적 예비 독자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이쪽에도 있어보고, 저쪽에서 있어보다 보니,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세계에 사는 개인에 대해서도 우호적이게 될 때가 있다. 그 또는 그녀에 생각에 공감하게 되었을 때가 아니라, 그 또는 그녀가 아는 사람이 되었을 때이다. 독서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작가를 알게 되고 관계를 맺게 되는 그런 것. 독자인 내가 작가를 알게 된다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고, 그렇다 하여 그 또는 그녀의 생각에 나의 생각을 동일시하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너는 또다시 소수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너는 택해야 한다. 그 고독을. 그것이 참된 것이라면...
해냄출판사에서 출간된 공지영 작가의 신작 에세이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는 작가가 외부활동과 작품활동을 중단하고 하동 살이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상에서 싸우다 하동으로 내려간 작가는 당나귀 위에 강아지를 올려놓고 학대하는 강아지 주인과 싸우다 경찰의 중재로 강아지 동백이의 엄마가 된다. 그리고 애정하는 후배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듣고 작가에게 예루살렘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갑자기 작가는 이스라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요르단을 통해 이스라엘로 들어간다. 그곳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로서 성스러움을 간직하는 풍경이지만, 지나가는 길 곳곳에는 적의가 느껴진다.
가톨릭여행사를 통해 일종의 패키지여행을 떠났던 작가는 여행 중 아파서 홀로 한 숙소에 남아 장기 투숙을 하게 된다. 작가는 또 홀로 된다. 그곳에서 작가는 여행 중의 마주하게 되는 부조리와 싸운다.
그리고 혼자서 그리고 그곳의 가톨릭 사제들과 여러 성당과 성지를 순례한다. 그곳에서 작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고난을 만난다.
난 외롭지 않은 인생이었다. 내가 사랑하던 소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렸고 나는 외로워졌다. 지금은 사랑으로 현대의학으로 극복했다. 나는 다시 외로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라는 작가를 이해한다. 공감하고 같은 생각이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고, 한 권의 책을 일주일간 회사 출퇴근하며 남는 여유 시간에 읽어 알 수 있는 만큼 작가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