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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Dec 24. 2020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떨어졌다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당선자 발표가 났다. 당선되면 좋고 당선되지 않으면 말고의 심정이 아니라, 반드시 당선되었으면 하는 절박함은 있었지만, 당선되지 않을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대체로 기성작가가 아닌 일반인 중에서 작가를 발굴하지만, 지난 당선자들을 보았을 때 당선자 대부분이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전문적인 브런치북들이 당선이 되었었다. 이번에도 상당수 당선작은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일반인 작가의 전문적인 책이 당선이 되었지만, 내가 주제로 삼았던 것처럼 자신의 아픔을 나눈 책도 당선이 되었다. 어느 ADHD의 아픔을 나누는 책 한 권이 당선이 되었는데, 그것은 나에게 하나의 희망이며 또 하나의 절망이다. 상사병과 조울증으로 방황 속에 산 내 이야기들도 내년 브런치북에 당선이 되거나, 기획출판을 해 줄 수 있는 출판사에 눈에 띄어 출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하나의 희망이다. 또 하나의 절망은 이번에 ADHD가 나왔으니, 다른 병 이기는 하지만 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다루는 이야기가 당분간 당선이 되기 어렵다는 절망이다.


한 번 도전해 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당선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응모를 했지만, 충분히 다듬어진 원고가 아닌 마감일을 코앞에 둔 초치기 원고였다. 나는 나보다 더 뛰어난 브런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브런치와 참여 출판사에서 나와 내 원고를 가공해서 보석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원석으로 보아주기를 바라며 마감일에 맞추어 제출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20개가 넘는 글을 쓰기 보다도, 최소 글 수인 10개 정도의 글로 냈으면 어땠을까도 생각해 본다. 물론 충분한 시간과 이야기가 있었더라면, 브런치북의 최대한 담을 수 있는 글의 개수인 30개를 채우지만 말이다. 일부러 글의 개수를 늘린 것은 아니고,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이야기만큼만 담은 것이지만, 내가 책을 쓸 수 있는 시간 내에서 완성도 있는 원고를 위해서는 글의 수를 최소한으로 했어야 한다는 후회도 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당선될 가능성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면서도 떨어질 경우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생각은 일단 응모를 한 후에도 그다음 날부터 계속 작품을 쓰고 퇴고를 해서, 떨어지면 바로 내가 직접 출판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생각을 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떨어졌을 시, 출판사 투고보다는 내가 직접 출판사를 만들어 출판할 생각을 했다. 일단 POD 출판사 BOOKK를 통하여 자가출판이라고 돈 들이지 않고 파일을 출판사에 넘기면 출판사가 파일로 가지고 있다가 주문량만큼 바로바로 찍어서 보내 주는 출판을 하려고 했다. 그런 방식으로 해서 돈을 벌 수는 없지만, 일단 출판하는데 아무 돈도 들어가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여 주변의 지인들에게 팔고, 출판하면 팔릴 가능성이 주변의 반응으로부터 보이면 내 1인 출판사를 우리 집에 사업자등록을 하여 차려서 출판을 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작 응모를 하고 나니 기존에 썼던 글을 퇴고하거나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할 힘이 사라졌다. 집에서 TV 보면서 놀았다. 응모하기 전까지는 하루 종일 응모할 브런치북을 쓰는데만 매달렸는데, 정작 응모를 하고 보니 기존에 목표를 했던 떨어지더라도 내가 직접 펴낼 완성본을 만드는 작업을 하지 않고 그냥 놀았다. 가만하 논 것은 아니고,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내가 디자이너로서 첫 번째 실무로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다. 또 브런치 라디오에도 응모하였다. 요즘에는 브런치에서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를 뽑는다고 하여, 넷플릭스 1달 무료 이용을 신청하여 넷플릭스를 보고 있다. 넷플릭스 앱을 스마트폰에 깐 이후, 나는 하루 종일 넷플릭스만 보고 있다.


21살에 조울증에 걸린 후에, 13년 반 만에 겨우 대학교를 졸업하고, 1년 3개월 정도 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전문강사를 하다가, 조울증이 재발하여 동생과 아버지 일을 도우며 소일하며 살았다. 내 모든 상황을 알면서 나를 사랑해주고 결혼해주겠다는 아내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작년에는 아내와 부모님과 함께 논산에서 왕대추 농사를 하며 지냈는데, 올해는 수원 집에서 강남역 출판편집디자인 학원에 다녔다.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인데, 일단 출간 작가가 될 때까지 여유를 찾기 위해서 직업훈련을 받았다. 훈련을 받고 구직활동을 하였지만, 나의 조건으로 구직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당장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지원하였는데 당선작에 들지 못했다. 간절히 당선을 바랐지만, 당선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브런치와 참여 출판사에서 내 이야기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해 주었으면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했다.


출간 작가가 되기 전에 유망한 브런치 작가로서 성장하기 위해서, 넷플릭스 스토리텔러에 선정이 되기 위해서, 넷플릭스 1달 무료를 신청했는데, 정작 하루 종일 넷플릭스만 보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쓰려면 그냥 보아서는 안 되고, 책을 읽듯이 미디어를 읽어야 하는데, 그냥 나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하루 종일 생각 없이 넷플릭스를 보고 있다. 내가 한때는 시청 가능한 거의 모든 드라마를 본방사수로 섭렵하던 드라마광이라서 하루 종일 넷플릭스를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뭐라도 돈을 벌 수 있으면 좋은데, 나는 꾸준히 약을 먹고 아내의 사랑으로 조울증을 극복하였는데,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올해 출판편집디자인 공부를 통해서 기술 하나는 익혔지만 당장 실무에서 투입하기에 경쟁자들을 이기고 취업하기는 실력도 나이도 여러 가지로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원래 내 인생 목표인 글로 먹고사는데 지금 당장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그게 그러고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주부터는 고모부가 운영하시는 작은 기독교 출판사로부터 외주를 맡아 책 하나를 디자인할 것 같다. 기존에 출판되었으나 원본 파일이 유실된 책을 똑같이 만드는 것이다. 다음 주 월요일 출판사에서 전화를 주기로 했다. 짧은 기간 내에 완성해야 하는데,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과 실무를 하는 것과는 그 느낌이 틀리다. 지금 내 입장에서든 당연히 주저하지 말고 뭐라도 해야 하는데, 사실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고모가 나에게 부탁하는 것도 나에게 일을 주고 싶은 것도 있겠지만, 출판사에서 빨리 책 하나를 만들어야 하는데 기존 출판사 직원들은 다른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초짜인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을 나에게 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지 않다고 이걸 받고 말고 고민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나는 뭐든지 적당히 균형 있게 해야 하는데, 한 가지에 빠지면 그것만 하는 게 문제이다. 드라마에 빠지면 한동안 드라마만 보고, 글쓰기에 빠지면 한동안 글쓰기만 한다. 디자인을 공부하고 익힐 때는 하루 종일 그일만 한다. 그냥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일상에서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일을 같이 해 나아가는 게 잘 되지 않는다.


내 생각으로는 나는 무언가에 중독이 잘 된다. 한 가지에 중독이 되면 다른 것을 못한다. 사랑에 중독이 되면 사랑만 하고, 일에 중독이 되면 일만 한다. 뭐에 중독이 되어 게임하듯이 하는 것은 잘 되는데, 내가 해야 할 의무사항들을 하듯이 하는 것은 잘 안 된다. 물론 나는 게임에는 중독이 잘 되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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