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함 Jun 25. 2024

손 놓은 글을 다시 손에 잡을 때

어차피 의도치 않게 생긴 여유와 공백의 시간에

회사 다닐 때는 매일 글을 썼다. 회사를 그만두고 쉴 때 글을 써야 할 때가 되었을 때 글을 손을 놓았다. 34개월 아들 요한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면서, 요리학원을 다니며 한식조리사 시험을 보며 한국에 거주하는 네팔인들에 네팔 반찬을 만들어 파는 부업을 하는 아내 에미마의 택배를 우체국에 가져다주며, 스마트폰을 하며 놀고 있다.


삶이 있어야 글이 나온다고 아버지께서 예전에 하시던 말씀이다. 전업작가라는 뜬구름을 쫒지 말고 직장을 다니며 글을 쓰라는 뜻이다. 지금은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주간보호센터 사회복지사로 구직활동 하는 동안 실패든 성공이든 그 과정을 감동적으로 재미있게 글로 써 보라고 하신다.


여전히 책을 읽고 쓰고 유튜브 하고 강연 다니는 직업으로서 작가를 꿈꾼다. 그렇다고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고용센터의 알선을 받아 3개월 일경험 인턴도 하고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구직활동이 재취업으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다. 중장년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도 있지만 그게 쉽지 않다. 스무 살에 조울증에 걸려 이십 년 가까이 방황하며 이제는 조울증은 극복했지만 커리어의 공백이 많은 나의 재취업은 쉽지 않다. 다음 직장이 마지막 종착점이 아니라 지나가는 경유지이기 때문에 절박함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당장 한 달 벌어 한 달 살 돈 벌 직장을 찾는 것이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용센터에서 알선해 준 몇 군데 이력서를 넣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이 시간에 그동안 써 놓은 글을 엮고 퇴고하고 보충하여 책을 내서 한 큐에 베스트셀러 에세이스트가 돼서 먹고사니즘에서 해방되어 자아실현을 하며 밥도 먹고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나는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배운 정파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글을 쓰게 되었고 글을 쓰다 보니 재능은 발현된 사파라, 글을 쓰는 동안은 글을 꽤 쓴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놓으니 글발도 서지 않음을 느낀다.


요즘엔 좋은 에세이 책도 보고 좋은 에세이 작법서도 본다. 그렇지만 나는 글을 쓰다 보니 글을 쓰게 되었고 글을 쓰는 꿈을 꾸게 된 사파라. 글쓰기 테크닉 보다 지금 보내고 있는 여유와 공백의 시간에 성실하게 글을 써야 한다. 성실함보다 글에 미쳐 글만 써야 한다. 그리고 지쳐 쉴 때 아들 요한이와 아내 에미마의 얼굴을 보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800번째 브런치 글, 단지 끝까지 썼을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