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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ul 09. 2024

퇴사의 이유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갔다 자고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데, 수서역에서 SRT를 타고 집 대신 부산 해운대에 갔고,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런데. 어느 날 갑자기 퇴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


수도 없이 그만두고 싶었다. 나에게 안 맞는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하고 있던 일이 무슨 일인지 잘 몰랐다. 동생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더라면 쉬었을 것이다. 동생에게는 아무 말 안 했지만, 아내와 어머니께서는 더 못하겠다고 다른 일 찾아보겠다고 수차례 말했다. 그때 나는 그 일 말고 다른 일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일 외에는 나를 불러 주는 데가 없었다. 조울증이 재발한 것은 아니지만, 정신과에 가서 평소보다 약을 증량해야 하는 상태까지 가기도 했다. 내 안에 화가 컨트롤이 되지 않아 길에서 소리를 지른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다를 수 있는데, 그때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더라면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2023년 1월 정초에 아내 에미마와 아들 요한이와 네팔 처갓집에 가서 한 달 살다 왔다. 휴직이 안 되면 퇴사하고 갔다 오지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2022년 12월 네팔에 가기로 스케줄이 잡힌 이후로 일이 안 되었다. 일은 손에 안 잡히는데 일은 많았다. 엄살 부리는 게 아니라 정신과적으로 돌기 일보 직전이었다. 길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계속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한 번이라도, 정신상태가 그 상태면 위험하다. 네팔 가기 일주일 전부터 회사에 안 갔다. 그 일주일만큼 월급에서 빠졌다. 네팔에 다녀오는 것도 당연히 무급 휴가였다.


그때 나의 계획은 네팔에서 돌아오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었다. 네팔에 있는 한 달 유튜브 하고 책 써서 인플루언서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생각이었다.


정작 네팔에 가서는 아무것도 안 했다. 아내 에미마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도록 아들 요한이를 봐준 것도 아니었다. 아내의 바람은 그랬다. 나는 병자처럼 아내의 고향집 우리 방에서 병자처럼 누워 있었다.


그렇게 네팔에서 한 달을 보내고 왔는데 변한 것은 없었다. 출근해야 돈을 벌기에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출근했다. 이미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었다. 동생은 나를 위해 나를 부른 것이나, 나는 동생 회사 빼고 다른 회사는 다닐 수 있었는데, 동생 회사 말고 나를 부르는 데는 없었다.


모든 문제는 밖에 있던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있다. 다만, 이 나이에 신입으로 나를 불러주는 데가 없다. 시키는 일은 다 하지만, 마음이 콩밭에 가 있고, 열정이 없다. 일에 열정이 없다는 말이다. 내 열정은 오직 콩밭에 있다. 내 콩밭에게 내가 훌륭한 농부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지 않고 부산 해운대에 가기 전날 아내 에미마에게 최후통첩을 했었다. 회사 더 못 가겠다고. 내일부터 회사 안 가고 집 근처에서 아무 일이나 알아보겠다고. 아내는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일단 다른 회사 알아보고 되면 옮기라고 했다. 아내의 말이 현실적이기에 마음을 다 잡고 출근을 했지만, 나는 이미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외통수에 몰려있었다. 부산 해운대로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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