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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ul 07. 2024

회사가 힘들었던 이유

동생 스타트업에서 나의 직함은 매니저였다. 직무는 굳이 말하자면 업무지원과 디자인이었다. 나의 디자인은 업무지원의 한 부분이었다. 좋게 말하자면 업무지원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업무보조였다.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대표인 동생 빼고는 다른 직원은 따로 직급은 없었다.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 그런 직함이 전부였다. 대표인 동생이 사실상 PM 프로덕트 매니저를 겸했다. 애매한 직원은 매니저였고, 나는 매니저 일을 하는 매니저였다. 대표와 직원 사이 관리자라기보다 서포터에 가까운 매니저였다. 회사에서는 경영진도 아니고 일반 사원도 아니었다. 동생의 형인 것도 사적인 영역에서였지 회사에서는 아니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대표로 모시지만, 동생 일 돕는다고 생각하면 되었다. 그러면 일이 쉬웠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업무보조 가장 적확하다. 아무거나 다 했다. 회사 일 중 개발자 영역을 빼고는 다 했다. 그건 내가 못 했다. 홍보 유튜브 영상 업로드는 내가 했지만 영상 제작은 안 했다. 그걸 하는 직원이 있기도 했지만, 그건 내가 안 했다. 동생이 원하는 퀄리티로 그 일을 하려면 퇴근 후 공부를 따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공부라는 게 학원 다니고 인강 듣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관련 유튜브를 보고 책을 읽는 것조차 퇴근 후에는 싫었다. 시키는 것은 다 했지만, 출근할 때 회사에 로그인해서 퇴근할 때 로그아웃하고 싶었다.


아침에 음악연습실을 돌아보고 출근했다. 돌아본다는 게 주로 청소와 쓰레기 분리수거다. 비가 와 물이 새면 그걸 퍼내고, 바퀴벌레가 나오면 바퀴약을 사다가 바른다. 회사 레스토랑에서 점심 피크타임 동안 주방보조를 한다. 주로 홀과 배달 세팅을 한다. 점심을 먹고 사무를 보고 디자인을 한다. 우체국도 다녀오고, 다이소도 다녀온다. 정부 지원사업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쓰고 카탈로그를 만들고 PPT를 만든다. 디자인이라고 하면, 현수막을 만들고, 디지털 사이니지 메뉴판을 만들고, 회사 앱 디자인을 한다. 어디서 누구에게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홍반장 같은 역할이었다. 나는 박학다식 다재다능하기보다 잡학다식 찢어진 백과사전이었다.


결국 돌아보면 모든 일은 대표인 동생이 다 하는데, 내 일은 동생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힘들었던 것은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하다 보니 내가 퇴사할 때 그런 일을 다 하고 있었지 처음부터 그런 일을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매니저였다. 퇴사할 때 즈음 매니저로서 하는 일이 그랬다.


어차피 같은 시간 출근해서 같은 시간 퇴근하고, 어쩌다 특별한 일 있을 때 야근이 있었던 거니,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다. 어디까지나 그때로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했겠다 싶은 거지, 지금 그때로 돌아갈 수는 다. 그건 나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다. 동생도 1인 기업에서 나를 시작으로 직원을 10명 조금 넘게 두었다가 지금은 다시 1인 기업으로 돌아갔다. 동생이 벌인 사업 중 이쪽에서 벌어 저쪽에서 까먹었는데, 저쪽은 당장 매출은 없고 인건비로 나가 사업이었다. 인건비가 안 나가니 내가 나누어하던 일까지 동생 혼자 다 하는 것뿐이지 밑 빠진 독으로 빠지는 물이 사라진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다.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내 생각이 콩밭에 가 있었다. 그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내 생각은 온통 글 쓰는데 가 있다. 바쁜 일상 속에 살아갈 때가 놀 때보다 더 양질의 글을 쓰기도 한다. 내가 자기관리가 안 되는 사람이라서 그렇다. 시킨 일 정해진 일은 농땡이 부리지는 않는다. 부모님으로 받은 천성 DNA가 그렇다. 자기관리가 안 돼서 적어도 지금까지는 메여 있지 않으면 그냥 세월아 네월아 놀았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그건 나의 뇌가 아프기 때문에 스스로 작은 쾌락들에 중독되어 쉬는 것이다. 책임감이 있는 나이에 그런 방식의 쉼은 좋지 않을 뿐이다.


글은 써야 하고, 일은 해야 하고, 집에서는 남편과 아빠의 역할을 해야 하니, 내가 뻑이 다. 글과 일은 문제가 없었다. 잘 돌아갔다. 아내는 내가 안 하던 일을 가정을 위해 하니 참았을 테고, 아들은 막 태어난 아기니 이래도 저래도 좋았을 테다.


내 정신이 가 있는 콩밭은 글인데, 다른 여러 역할이 있으니, 내 정신이 뻑이 갔다.


조울증이 재발한 것은 아니었다. 조울증을 평생 약으로 눌러 관리해야 하는 입장으로서, 이렇게 가면 조울증이 재발할 수 있는 상황이기는 했다.


그래서 집 가까운 곳에서 적당한 다른 일을 알아보려고 했었다. 그게 이 나이에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일단 하던 일 계속하면서 다른 길을 찾아보기로 마음을 다 잡았는데. 가뜩이나 바쁘고 정신이 없던 날에 동생이 평소에 안 했던 해본 적도 없던 일을 시켰다. 동생은 간단하게 하라는 말이었는데, 나는 복잡하게 하라는 로 알아들었다. 연습실 환풍구 먼지를 닦으라는 것이었는데. 동생은 밖에서 보이는 것만 닦으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먼지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환풍구를 뜯어야 하는 것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그럴 수 있게 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억지로 껌과 호치케스로 고정시켜 둔 것이었다.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던 시간먼지 낀 환풍구와 씨름하다 거기서 퇴근했을 그때, 집에 안 들어가고 부산 해운대에 가서 다음날 회사에 안 갈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근처 카페에 갔다. 노트북을 열어 그날까지 써야 할 북리뷰를 썼다. 출판사에서 공짜로 책을 읽고 리뷰를 써야 하는 마감일이었다. 1시간 동안 리뷰를 쓰고 노트북을 닫았다.


집에 들어갔다 자고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스마트폰을 끄고,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수서역에서 SRT를 타고, 부산역에서 부산 지하철을 타고 부산 해운대에 갔다. 그다음 날 출근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모든 문제는 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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