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퇴사는 아니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퇴사를 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회사 다니는 게 힘들었고, 항상 퇴사를 생각했다. 돈 때문에 회사에 입사한 것은 아니다. 물론, 돈이 필요하긴 했다. 나를 생각해서 정직원으로 불러준 동생이 고마웠다. 처음엔 그랬다. 시간이 지나며 내가 회사에 다니는 다른 모든 이유들은 사라지고 하나의 이유만 남았다. 오직 돈 때문에 다녔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힘들었다. 아직 돈은 되지 않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동생 회사에 다니며 돈 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지 동생 일을 돕는다고 생각했으면 덜 힘들지 않았을까?
퇴근 후 부산 해운대에 가기 전날 아내 에미마에게 회사 더 못 가겠다고 했다. 내일부터 집 근처에서 아무 일이나 찾아서 하겠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겠는데 일단 다른 회사 알아보고 옮기라고 했다. 아내의 말이 현실적이었기에 마음을 다 잡고 출근을 했지만. 나의 멘탈은 이미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었다. 부산 해운대에 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다. 책 읽고, 글 쓰고, 유튜브 하고, 강연 다니는, 작가로 살고 싶다. 길이 열리지 않으면 1인출판사를 만들어 길을 열어볼까 생각도 해 보았다. 다른 작가를 발굴하는 출판사가 아닌, 내 책을 직접 만들고 나 스스로를 작가로 발굴하는 1인출판사다.
동생 회사에 다니기 직전 연도에 국비지원 직업훈련으로 출판편집디자인을 배웠다. 이력서를 뿌렸지만, 면접 보러 오라는데도 한 군데도 없었다. 구직 시장에서 경쟁자들을 이기고 취업에 성공할 경쟁력이 없었지만, 책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기술은 배웠다. 클라이언트와 사장님을 만족시킬 자신은 없지만, 소비자들이 보았을 때 책 같은 책을 만들 자신은 있다. 그러나 내가 되고 싶은 것은 작가이지 출판인이나 에디터는 아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나에게 관심이 있는 출판인과 에디터를 만나는 것이다.
지금 나의 작가의 꿈은 2015년 봄에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내 책장과 서랍에 있는 노트 또는 메모장에 썼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19년 가을 네이버 블로그였다. 그리고 12번 떨어지고 13번째 브런치 작가가 된 2020년 가을 이후로는 브런치에 글을 쓴다. 매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한다. 2008년 아직 대학 다닐 때, 우리 과 영어교육과 수업 대신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 수업을 몇 개 들었다. 시창작은 A+을 받았고, 소설창작은 A0를 받았다. 지금 나의 작가정신의 시작을 그때로 보지 않는 것은, 문학청년이었을 때 작가정신은 이미 소멸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 조울증에 걸리던 해 인생시 하나를 썼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2 때부터 시작된 짝사랑으로 끝난 소녀에게 쓴 보낸 그리고 보내지 못한 수많은 편지로부터 나의 글쓰기는 시작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지금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지, 어느 게 정답인지 어렵다.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난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