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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ul 02. 2024

프롤로그

언젠가부터 항상 마음속에 사직서 한 장을 품고 다녔다. 어디까지나 마음속에 사직서를 썼다는 비유적 표현이지, 종이에 손글씨로 컴퓨터 키보드로 썼다는 것은 아니다.


늘 퇴사를 생각했지만, 어떤 계획을 가지고 퇴사한 것은 아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가 자고,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퇴사를 하고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부산 해운대에 다. ATM에서 현금 찾고, 스마트폰을 껐다. 수서역에서 SRT를 타고 부산에 갔다. 답을 가지고 부산에 갔던 것은 아니다. 내일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찾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스무 살 조울증에 걸려 거의 이십 년이 되어서야 극복했다. 조울증을 극복했다는 의미는 매일 약을 먹고 스트레스 관리를 하며 기분을 정상범위 내로 조절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조울증이 재발한 것은 아닌데, 이렇게 가다가는 재발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느 평범한 날 퇴근을 했는데 나는 이미 더 이상 출근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어떻게 할 바를 몰랐다. 핸드폰을 끄고, 집에 안 들어갔고, 다음날 출근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스무 살에 조울증에 걸린 내가 한계에 부딪히면 본능적으로 상황을 정리해 왔던 방식이다. 더 이상 그런 방식을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 방법은 더 이상 방법이 없을 때 파산신청을 하는 것과 같은 거다. 어떻게든 정리가 되지만 다시 어렵게 쌓아온 얼마 되지 않는 신용을 다시 다 잃어버리는 것이다.


부산에서 해답을 찾아 돌아왔다. 더 이상 어떤 직장도 다닐 자신이 없었다. 내가 평생에 하고 싶은 한 가지 일이 있었다. 글 쓰는 일이다. 내가 회사에 다니는 일은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것 외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게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숭고한 하나의 뜻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의미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도 의미가 있고 세상에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또 회사를 다니는 것은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것이지, 의미 있는 돈을 벌 수 있는 방편은 아니지 싶었다. 나는 글을 써야지 돈을 벌 것 같았다. 작금의 출판계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글 써서 돈 버는 아주 극소수의 작가군이 존재한다. 굳이 예를 들자면 《언어의 온도》 쓴 이기주 작가가 있다.


일단 책을 한 권 쓰기로 했다. 그 책 한 권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안 되면 두 번째 책을 쓰기로 했다. 그 두 권의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도 안 되면 세 번째 책을 쓰기로 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까지 쓰기로 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안 되고는 사실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한 달 벌어 한 달 살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며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일단 실업급여를 받으라는 주변의 조언을 받았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국비지원 직업훈련으로 영상편집을 배우면서 시간을 벌려고 했다. 작가로서 활동을 하는데 영상편집은 유용한 기술이기도 했다. 일반 실업급여는 상황상 어려웠다. 질병으로 인한 실업급여로 대상이 되지 않았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는데 3개월이 지나갔다. 실업급여 신청에 탈락하고 국민취업지원제도에 신청하여 1유형이 되었다. 국민취업지원제도 지원을 받으며 영상편집 교육을 받으려 했는데,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고 다음 교육이 언제 시작할지 몰랐다. 그래서 교육 대신 바로 취업으로 틀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서 주간보호센터에서 3개월 동안 일경험을 했다. 기관의 경영 악화로 일경험 후 정규직 연계로 가지 못하고 계약이 종료되었다.


준비된 퇴사는 아니었다. 퇴근을 하고 다음 날 출근을 할 수 없었다. 집에 들어가는 대신 부산 해운대에 갔고 출근하지 않았다. 실업급여 신청, 직업훈련 과정 탐색, 구직활동, 일경험 등등 모든 과정이 글 써서 책이 나오고 작가가 되기까지 걸어 놓은 것에 불과했다. 다시 현실에 눈을 떴던 것은 아니다. 꿈을 꾸는 사람이 꿈을 꾸는 이유는 어떤 이에게는 꿈이 현실보다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고용센터의 알선을 받아 이력서를 내고 구직활동 중이다. 이력서를 낸 곳 중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는 데가 간혹 있으나, 그것도 면접에서 끝난다. 구직활동에 진심이 아닌 것은 아니다. 구직활동도 진심이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진심이다. 나는 두 마리 토끼를 쫒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것은 아니다. 두 마리 토끼 중 내가 잡고 싶은 토끼가 있다. 그렇지만 일단 어떤 토끼든 일단 토끼를 잡아야 한다. 내가 잡고 싶은 토끼를 잡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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