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커다란 마루 위 시계는 우리 할아버지 시계 90년 전에 할아버지 태어나던 날 아침에 선물 받은 시계
언제나 정답게 흔들어주던 시계 할아버지의 옛날 시계 이제 더 가질 않네 가지를 않네
할아버지 시계가 똑딱똑딱 할아버지와 함께 똑딱똑딱 이젠 더 가질 않네 가지를 않네
세 살 요한이가 좋아하는 노래다. 아들 요한이를 재우려고 유튜브에서 자장가를 찾아 무심코 한 번 들려주었더니 시도 때도 없이 불러 댄다. 마침 그때가 할아버지께서 하늘로 가는 문 앞에 서 계셨을 때였다. 요한이에게는 증조할아버지다. 나의 할아버지이자 요한이의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지난 5월 향년 98세로 하늘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아들 아들 아들 아들 4형제의 막내로 태어나셨다. 할아버지의 큰형수님이자 나의 큰할머니로부터 우리 집안에 복음이 들어왔다. 할아버지 사형제 네 집 중 큰집과 작은집은 믿는 집이 되었다.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를 모르시던 총각 시절부터 큰형수님을 따라 교회에 다니셨다. 초등학교 문턱에도 들어가 보지 못하시고 평생 농부로 사셨던 할아버지께서는 아들 셋 중 하나는 목사가, 하나는 교사가, 하나는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다고. 큰 아들인 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시며, 야간으로 신학대학원을 나오시고 개척교회를 하셨다. 학교 월급으로 생활하시고, 목회는 자비량으로 봉사하셨으니, 투잡은 아니셨다. 둘째 아들은 목사님이 되었다. 막내아들은 한의사가 되었다. 목사님 사위 셋, 선생님 사위 하나를 보셨다.
나는 할아버지 때부터 교회 다니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3남 4녀 7남매의 장남이셨던 아버지도 모태신앙이었고, 그 아래 나도 당연스럽게 모태신앙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나고 자란 나의 어린 시절 꿈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었다. 교회를 다니는 게 당연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게 당연했다. 다른 사람들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소녀 사랑
질풍노도 시기의 호르몬변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소녀 사랑'이 되었다. 나는 소녀를 사랑했지만, 소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혼자만의 짝사랑은 곪아 상사병이 되었고, 실연의 스트레스는 조울증 발병의 원인이 되었다. 한동안 적당히 좋아하면 그런 비극에 이르지 않는데, 어떤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가까이 있지 않아도 4년이 지나도록 매일 매순간 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런 상태에서 군대에 가고 겁나 빡센 부대로 가면 3개월 만에 조울증 온다. 그 지경이 되어도 조울증으로 감정이 증폭이 되어 3년을 더 매일 매순간 그녀를 그리워한다.
사랑 상사병 조울증은 각각 별개의 원인으로 시작되어 별개의 증상을 나타내는 별개의 개념으로 인과관계는 없지만, 경우에 따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질 수 있다. 사랑 상사병 조울증 셋 모두 대표적인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도파민과 세로토닌과 관련이 있다. 사랑이상사병을 낳고, 상사병이 조울증을 낳는 것은 아닌데, 사랑의 좌절 인한 정신적 고통이 상사병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조울증 발병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조울증 환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주요 증상이 짝사랑과 집착이다. 사랑이 상사병이 되고, 상사병이 조울증이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조울증으로 사랑의 감정이 비정상적으로 증폭되어, 상사병의 증상을 보인다. 유전,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조울증에 이르는 게 일반적이다. 경우에 따라 사랑의 좌절이 조울증에 이르는 단일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 병이 되어 조울증이 되면 조울증 때문에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건강하지 않고 비정상적인 사랑이 반복된다. 그래서 가수 김광석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고 노래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