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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기가 막히지만 별일 없이 산다

조울증 상위 0.1%의 삶

by 최다함


6월 6일 현충일, 아내 에미마와 아들 요한이와 춘천에 갔다 왔다. 아내의 네팔인 친구를 만나러 갔다. 틱톡으로 알게 된 친구다. 외국에 나가 살면 현지에서 한국인 친구가 생기듯, 아내도 한국에 와서 생긴 네팔인 친구들이 있다. 한국에 사는 네팔인들이 주로 소통하는 SNS가 틱톡이다. 춘천 친구는 아내가 한국에 와서 처음 사귄 틱톡 친구다. 안지 오래되었고, 그동안 만나고 싶었는데, 수원과 춘천의 거리도 각자의 삶의 일상의 거리도 멀었다.


9시 조금 넘어 출발했다. 내비게이션 추천 경로 대로 고속도로로 가면 1시 조금 넘어 도착이라, 빠른 경로를 찾아 국도를 탔는데, 도착 시간이 쭉쭉 늘어나 4시 넘어 도착했다. 고속도로 탈걸. 새벽 일찍 출발할걸. 안 갈걸. 돌아갈까.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아내 친구가 일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다. 점심때가 지나가고 도착 예상시간은 쭉쭉 늘어났다.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난다. 국도에서 고속도로로 잠시 들어왔을 때 휴게소에 들렀고, 거기서 점심을 먹었다. 로봇이 요리하고 사람이 거드는 휴게소였다. 뱃속 허기를 채우니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요한이는 밥 먹고 잠들어 춘천에 도착할 때 즈음 깼다.


아내의 친구가 요한이 준다고 아이스크림을 사 왔는데 나도 하나 주어 한 잎 베어 무니. 이런. 이건 딱 한번 먹어본 적이 있는 시궁창 테이스트 두리안 맛인데. 두리안 아이스크림이었다.



공지천에 가서 나는 요한이와 축구를 하고, 아내는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저녁은 춘천 닭갈비를 먹었다. 맛집은 손님이 많아 못 들어갔고, 우리가 간 집은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그냥 쏘쏘 나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고속도로를 탔고, ㆍ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금 다함님은 같은 조울증 환자 중 상위 0.1에요."

춘천 다녀온 다음날 회사 휴무일이었다. 쿠팡 물류센터는 토요일 일요일에도 해서 주말에 근무하면 주중에 쉰다. 아내를 회사에 데려다주고, 요한이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병원에 약 타러 갔다. 주치의 선생님 말씀은, 재발도 안 하고 기분이 안정적으로 조절되고, 결혼도 하고 아들도 생기고, 스스로 현실적으로 할만한 일자리를 찾아 재취업도 하고, 그런 걸 말씀하시는 것 같다.


올해 1월부터 쿠팡 물류센터에 일용직으로 나가다, 4월부터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드문 일이기도 하고, 할만한 적당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도 생각이란 걸 하면 기가 막힌다. 쿠팡 물류센터에 오기 전 내 평생에 단 한 번도 쿠팡 물류센터가 꿈인적은 없었으니까. 근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영어교육과를 13년 반 만에 간신히 졸업했기는 했지만 대학 때 공부를 안 해 전공 살리기 어렵고, 그사이 잡다한 경력도 단절되어 이어갈 커리어도 없다. 세상에 없는 사랑을 꿈꾸다 개털이 되고 사랑 하나만 남은 그런 에세이를 쓰는 작가를 꿈꾸는데 그것도 언제 될지 되기는 할지 모른다. 글 쓰는 마음은 꺼지지 않았는데, 글 쓰는 시간은 줄고 필력은 죽었다. 부정적으로 보자면.


긍정적으로 보자면. 월급이 많지는 않지만 맞벌이를 하니 그럭저럭 살만하다. 비록 60개월 할부지만 2025 투싼을 뽑았다. 주말엔 투싼을 타고 아내와 아들과 스타벅스에 가서 나는 아메리카노를 아내는 자몽에이드를 마시고 요한이는 딸기 케이크를 먹는다. 한 달에 한 번은 투싼을 타고 아내와 요한이와 당일치기 여행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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