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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째 브런치 글

by 최다함


나의 천 번째 브런치 글이다. 2020년 10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12번 떨어지고 13번째 합격했다. 도전 10개월 끝에 낭보였다. 그리고 5년 차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아직 베스트셀러 작가는 커녕 첫 책을 내지도 못했고, 매일 글을 쓰고 있지도 못하지만, 브런치 5년을 2개월 앞두고 천 번째 글을 쓴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매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한다. 마음은 항상 당선이었지만, 경쟁자들을 꺾고 10인의 당선작이 될 경쟁력은 커녕, 한 권의 책으로서 완전성을 갖추지 못했다. 다만, 매년 응모할 따름이다.


일기나 숙제 백일장 등 강요된 글쓰기 말고 나의 자발적인 첫 글쓰기는 고등학교 때 짝사랑 소녀를 향한 소수의 보낸 그리고 다수의 보내지 못한 편지였다. 제대로 쓴 글이라면, 시도 글이라면, 스무 살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려 전역하고 맨 정신의 아닌 멘탈로 쓴 한 편의 시였다. 제정신이 아닐 때 쓴 시이나, 내 인생에서 지금까지 쓴 시 중 제대로 된 시는 그때 그 시 하나다.



나의 세 번째 짝사랑은 사랑해서는 안 되는 여신이었다. 배우 한효주였다. 2006년이었다. TV 드라마 《봄의 왈츠》에서 여신을 만났다. 《봄의 왈츠》는 《가을동화》 《겨울연가》 《여름향기》에 이은 윤석호 PD의 사계절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국내 시청률 흥행에서 폭싹 망한 망작이었으나, 8개국 판권 선판매 등 해외 수출로 짭짤했던 작품이다. 그때 여신이 지금 여신은 아니었으나,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여신이었다. 내가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되면 여신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시인과 작가가 여신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맨 앞에 있는 시인과 작가가 된다면. 처음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여신을 만나고 싶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첫 동기가 그랬다는 것이지, 그 모티브는 불꽃 같이 아주 잠깐 타고 사라졌다.


2008년인가 타과 국어국문과의 문학창작 수업을 들었다. 시창작과 소설창작과 여러 문학 수업을 들었다. 뭘 얻은 것은 아니었고, 관심만 있었을 뿐이다. 관심으로 무엇을 얻을만한 집중력이 없었다. 전상국 작가라고 나름 유명한 소설가가 우리 학교 교수님이셨는데, 그땐 아직 원로교수로 강의하실 때라, 그분 강의를 듣고, 그분이 촌장으로 계시던 김유정 문학촌에 드나들었다. 어설픈 문학청년이었다. 그때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지금도 소설은 모르지만, 그때도 소설을 몰랐다. 고전이나 해외 문학에는 관심이 없었고, 당시 핫한 최신 한국 작품을 읽었다. 어차피 학창 시절 때부터 고전을 읽어온 준비된 문학청년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전부터 읽어서 경쟁력이 없고, 고전을 먹고 자란 현대 대중 작가들의 가장 최근의 핫한 작품을 읽었다. 그 증거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1판 1쇄가 내 책장에 있다. 그때 작가의 꿈이 지금 작가의 꿈과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조울증이 재발하고 나름 회복되면서 그때의 작가의 꿈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 후 다시 조울증이 재발해 모든 것을 잃었고, 다시 회복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치를 발할 수 있는 일이 조울증을 안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르는 에세이로 바뀌었다. 그때가 2015년이었다. 인터넷에 먼저 글을 쓰고, 그걸 누가 보고 출판으로 이어졌으면 했다. 그게 그때부터 구상한 나의 작가 플랜이었다. 그리고 바로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노트에 끄적이는 메모가 전부였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19년 여름이었는데. 아내 에미마를 만나 결혼하고 안정된 이후였다. 그리고 2020년 10월 브런치 작가가 되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왠지 브런치 작가가 되어야지, 브런치 공간이 있어야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마음만큼의 글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2개월이 되면 5년인데 매일은 아니었어도 여전히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고, 이글이 천 번째 글이다. 구독자는 530명 대고, 전체 누적 조회수는 29만 대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다. 뛰어남과 성실까지는 아니더라도, 꾸준함은 있지 않을까?


올해를 시작하며 쿠팡 물류센터에 일용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4월부터는 계약직이 되었다. 혹한기에 쿠팡 물류를 시작하여 혹서기를 보내고 있다. 희망이 보이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글을 쓴다. 글쓰기에 진전은 없다. 퇴보와 퇴화만이 있는 것 같을 때도 있다.


꿈을 놓지 않고 붙잡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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