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
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
작은 우물 하나 있어
물 대신 사랑 흐르고
물고기 대신 희망 노닐고
나의 마음에 어느 숲에는
푸른 소나무 한 그루
향내 나는 솔잎 위에는
솔벌레 한 마리 꿈틀꿈틀
해님 아파 눕고
달님 눈물 흘려
그 어느 따스한 숨결
찾아 느낄 수 없던 날들
그 얼음바람의 다스림에도
나의 마음에 어느 하늘엔
반짝이는 별 하나 있었으니
나 그 별님 하나를 사랑했네
2015년 3월, 명상치유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에 갔다. 옹달샘은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쓰시는 고도원 작가님께서 충주에서 운영하시는 명상센터다.
2014년 가을 조울증이 재발했다. 2000년 봄 스무 살에 군대에서 시작된 나의 조울증 인생의 3대 위기 중 하나였다. 영어회화전문강사로 근무했던 학교의 1학년 여선생이 예뻤다. 치명적인 첫사랑 때문에 조울증에 걸린 나는, 치명적인 사랑에 빠질 때마다 조울증이 재발했다. 물론, 나를 조울증에 걸리고 재발하게 만든 모든 사랑들은 짝사랑이었다. 마지막 사랑 나의 아내 에미마를 제외하고 말이다.
정신병원에 3개월을 입원하고 퇴원하니, 조증은 사라졌지만, 몸무게가 5kg 늘었고, 눈빛은 총기를 잃었다. 부모님께서 출근하신 낮에는 마루에 나와 TV를 보고, 부모님께서 퇴근하신 밤에는 방에 들어와 인터넷을 하며, 은둔형 외톨이로 지냈다.
한창 청춘의 때에 그러고 있으니, 어머니 마음에 피눈물이 나셨을 것이다. 옹달샘의 건강치유 프로그램 《녹색뇌 프로젝트》에 보내주셨다. 치료의 시간은 지나가고, 치유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프로그램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지만, 조울증이 훑고 지나가 영혼이 가출한 나에게 아무 감흥을 주지 못했다. 프로그램 자체보다 쉬는 시간 옹달샘 뒷산을 오르내리며 간만에 좋은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함 씨, 시 한 편 읊어봐요. 노래를 불러보던가.”
“외우는 시나 노래는 없고요. 제가 지은 시 하나랑 그 시로 자작곡이 있어요. 그거 해 볼까요?”
“당연하죠. 더 좋지요.”
그날 밤 프로그램은 고도원 작가님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앉아 한 사람씩 돌아가며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내 차례가 돌아왔고, 산행을 함께 했던 일행이 내가 지은 시와 노래를 들어보자고 했고, 고도원 작가님께서는 좋다고 멍석을 깔아주셨고, 나는 그 멍석 위에서 시를 읊고 노래를 불렀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편의 시를 쓰고 한 번은 시인이 된다고 했던가?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떤 이는 그렇다. 그날밤 나는 시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