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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트레스가 생겼지만 지금으로서는 붙어 있어야

by 최다함

올해 초 쿠팡 물류센터에 일용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4월 계약직이 되었다. 처음보다 낫지만 아직 나는 부족함을 느낀다. 시간이 지나감에 비해 익숙해지는 게 더뎌서라기보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내가 감당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복잡해져서인지도 모른다.


몸은 좀 힘들고, 돈도 많이 못 벌지만 (그렇다고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뭘 다시 시작하여 이만큼 벌기도 어렵다.), 스트레스는 없다 생각했는데.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겠는가?


도망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으로서는 어떻게든 여기 붙어 있고 싶다. 스무 살에 조울증에 걸렸다. 정상적인 기간에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13년 반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니지만, 공부하고 일한 시간 보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시간이 더 많았다.


평생 쿠팡 물류센터에 다닐 수 있겠다 싶지만, 평생 쿠팡 물류센터를 다니고 싶은 것은 아니다. 책 읽고, 글 쓰고, 여행 다니는 삶이 직업이 되는 게 꿈이다. 책 읽고, 글 쓰고, 여행 다니는 삶을 위해 돈 벌면 취미고, 돈 안 벌면서 그런 삶을 살면 백수고, 그런 삶이 돈이 되면 작가다. 돈 안 되고 에너지 많이 들어가는 취미를 키우고 싶은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백수로 살고 싶지 않다.


난 나의 전공과 경력이 조울증 인생실패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국제결혼 사랑 이런 것도 내 인생의 전공과 경력이다. 이런 것에 대한 글을 쓰는 내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더 가치롭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현실을 떠나 꿈에 배팅할 나이도 아니다. 그렇다고 꿈을 놓고 편해지기에는 너무 많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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