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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Feb 21. 2021

일을 하고 글을 쓰고

드디어 취직했다. 회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 절대 해고당할 리가 없는 평생직장 같은 취업에 성공했다. 그 이유가 있다. 취직한 회사 사장이 내 동생이다. 동생이 수년 동안 여러 가지 사업을 해왔는데, 회사 보안상 지금 단계에서 다른 것은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하나 공개할 수 있는 것은, IT 플랫폼 업체라는 것이다. 동생이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고, 그동안에 해왔던 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동안은 직원 없이 동생 혼자 해서, 나는 가끔 필요할 때 가서 아르바이트해주고 했는데, 직원 몇을 채용하게 되면서 내가 1호 직원이 되었다.


그동안도 일할 능력과 의지는 있었지만, 오랜 기간 동안 조울증을 앓느라 학업과 경력이 중단된 나는, 전문성과 경력이 없고 나이가 많은 나를 부르는 데가 없었다. 어딜 가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그렇다고 하여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식당 알바도 해보고, 파리바게트 알바도 해보고, 어머니 카페에서 바리스타도 해보고, 노가다도 해보고, 초등학교에서 1년 반 동안 비정규직 풀타임 영어교사도 해보고, 명상센터에서 자원봉사도 해보고, 정신지체 생활시설에서 생활지도사도 해보고, 아버지랑 농장도 해보고, 동생 가게에서 알바도 해보고,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잠깐잠깐 무엇인가 해보려고도 했고, 또 돈이 되지 않지만 가족 일을 돕기도 했다. 일할 능력도 있고, 일할 의지도 있지만, 능력과 의지가 있다고 취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여야 하고, 구인 담당자에 눈에 내가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것이다.


재작년에는 아버지랑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작년에는 취업성공 패키지로 취업상담을 받고 직업훈련을 받고 구직활동을 했다. 작년에 처음 고용센터에 찾아가 구직활동을 시작한 것은 사실 취업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구직활동 안 하고 있으면, 왕대추 농장에 코가 꿰어 평생 농사짓게 될 것 같아서, 구직활동에라도 적을 걸어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신청을 한 것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글을 쓰고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서 글쓰기로 돈을 버는 직업 작가로서 사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직업 작가라는 것이 단순히 글만 쓰는 것은 아니고, 글 쓰고 유튜브 하고 강연 다니고 사인회 북콘서트 다니고 TV 출연도 하고, 글과 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활동을 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출판 편집디자인 직업훈련을 받다 보니 재미가 있었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훈련이 끝날 즈음에는 취업할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지원서를 뿌려도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조차 오지 않았다. 그 원인을 분석해 보건대, 1) 신입인데 경력자만큼의 실력이 되지 못하고, 2) 나이가 회사 대표나 팀장보다 많고, 3) 비전공자였다. 취업불가라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오히려 자유로와졌다. 어디에 소속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베스트셀러 작가 될 때까지 용돈 타면서 집에서 글 쓰며 지내다가, 작가로서 살거나 내 책을 내면서 다른 이들의 책도 찍어주는 1인 출판사도 겸해볼까 했었다. 1인 출판사라고 해도 회사 사무실을 차리는 것은 아니고, 우리 집 거실 책상에 앉아서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나는 구직을 포기하고 작가와 1인 출판사 경영으로 마음을 돌렸는데, 내가 자발적으로 일어나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을 찾아 움직이는 것을 주변에서 보고, 내게 일을 던져주기 시작했다. 나는 고맙지만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을 벌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여기 와서 일해라 하면 가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원망이 아니고 감사함인데. 나는 이미 취업과 지금 당장 돈벌이에 초월했는데, 내가 회복해서 생산적인 일을 하기 시작하니, 아내와 가족들은 내가 직장에 다니고 일을 하기를 바랐다. 나는 일을 안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내 계산에 아무리 좋은 회사에 들어가도, 지금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글만 쓸 수 있으면, 글쓰기의 내공이 쌓일 세월이 지나가면, 좋은 대우를 해주는 회사에서보다 훨씬 더 큰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인지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가 있었다.


어쨌건 저쨌건 지금은 동생 회사 재미있게 잘 다니고 있다. 사장님 동생이 원하는 것을 1차적으로 다 처리해 주면서, 동생이 바빠서 업무지시를 내리지 못할 때는, 스스로 찾아서 일을 만들어하고 있다. 놀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땡 치고 집에 갈 궁리만 하고 있다. 땡 치고 집에 가면 회사 일은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직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할 수 없다. 비밀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하고 싶다고 하면 모두가 나를 내가 그 일을 하기에 가당하냐고 꿈 깨라고 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인데,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글을 써야 하는데... 글을 써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처음에는 오히려 글을 더 많이 썼다. 글쓰기에 대한 갈급함, 빨리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성금함에,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에서 폭풍 글쓰기를 했다. 시간이 많이 있다고 글을 더 많이 쓰고, 시간이 없다고 글을 많이 쓰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는 머리싸움이 아니라,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기와 손가락을 빨리 움직이는 싸움이다. 노트북 앞에 오래 앉아 얼마나 많은 시간 집중해서 손가락을 움직이느냐에 따라 내 안에 있는 글쓰기의 재능을 얼마나 빠르게 꽃 피울 수 있느냐가 달려 있다.


내 첫 번째 책은 사실 일단 POD로 찍고 내 1인 출판사를 통해서 출판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밀리의 서재 X 브런치 전자책 콜라보 공모전이 있어서, 거기에는 내 두 번째 책이 될 브런치북을 새로 써서 응모하고, 첫 번째 책은 퇴고를 잘하여 내 1인 출판사를 통하여 내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을 동시에 작업할 수가 없다. 그리고 두 번째 책으로 쓰려고 했던 책은 사실은 내가 두 번째로 쓰려고 했던 책은 아니고, 저 뒤에 순번으로 밀어두었던 주제를 두 번째로 당겨서 써보려고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전자책 공모전에 마감일 전에 응모할 만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쓰려고 새로 시작한 글은 접기로 했다. 대신에 작년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응모했다가 떨어진 첫 책의 초고를 퇴고하여 응모하려고 한다.


목표는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해 나아가고 있는데, 이제 직장인으로 바빠져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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