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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Feb 28. 2021

첫 번째 디자인한 책이 나왔다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북디자인은 아니다. 디자인 작업도 하지만, 디자인 담당도 아니다. 나는 동생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다. 공개할 수 있는 나의 회사 업무는 마케팅 기획 디자인 기타 업무지원이다. 동생 일을 시작하기 전날 나는 프리랜서로 외주 디자인 작업을 마쳤다. 물론, 이 또한 고모 출판사에서 주신 일이었다.


브런치에서 여러 번 이야기를 했지만, 작년 2020년 새해 벽두부터 수원고용센터에 찾아가, 직업상담과 직업훈련을 받았던 처음 목적은 취업은 아니었다. 취업하지 않고 글 쓰고 책 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서, 집이나 카페에서 글 쓰고 유튜브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었다. 돈을 안 벌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거지라도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대기업 직원보다 훨씬 더 많이, 아니면 대기업 임원 이상으로 벌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일지도 모를 그런 자뻑이 있었다. 그렇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과 자뻑이 근거를 끌어오고 만들어 낸다. 근거 있는 자신감은 처음부터 근거가 있었던 것만은 아니고, 때로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근거 있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은 인정하지 않아도, 내 안에는 나만 아는 근거가 있다는 사실이기도 한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공부를 잘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란 그럴듯한 개소리가 있다. 아무리 공부할 유전자를 안 가지고 태어난 사람일지라도, 공부 신경이 전혀 없을지라도, 공부 열심히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낫고, 공부를 하다 보면 없는 신경도 생긴다. 또 무엇인가 열심히 하다 보면 자기만이 잘하는 신경이 발달한다. 한쪽이 무능하면 다른 쪽이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 꾸준하게 오랜 시간 장기적으로 무엇을 하다 보면 사건이 하나 터진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랄랄랄라 혀를 굴리다 보면 언젠가 안 터지는 방언이 빵 터지는 것이다. 신해철이 이치에 맞는 소리도 많이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신해철의 유명한 이치에 맞는듯한 개소리가 있다. 성공은 노력보다 운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운이 없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개소리다. 노력한다고 성공하지는 않지만, 노력하다 보면 성공이 찾아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성공과 노력은 1:1 대응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은 자도 어쩌다 성공하기도 하지만, 노력한 자에게 운이 찾아올 가능성도 많고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는 운이 찾아올 가능성이 적다. 같은 기회의 수의 운이 찾아와도 노력하는 자는 그 운을 잡을 확률이 높고, 노력하지 않는 자는 그 운을 잡을 확률이 낮다. 누구에게나 운을 랜덤으로 찾아온다. 인생에 대운은 한 번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 운명과 같은 절세미인이 경국지색이 팜므파탈이 한 명만 찾아오지 않듯이 말이다. 물론 자주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몇 년 만에 어쩌다 한 번씩 대운이 찾아오지만, 내가 그 대운을 잡을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그 대운은 지나간다. 또한 대운이 전혀 지나가지 않아도, 나의 노력이 쌓여 그 노력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능력에 이르면 노력이 만들어낸 무서운 능력이 강력한 자석처럼 세상의 사람과 돈과 대운을 끌어온다. 운 타령하는 사람들은 그냥 세상에 대하여 온갖 불만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설령 운이 없어 성공하지 못하면 또 어떠한가? 성공하면 좋지만, 성공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다. 행복하면 좋지만, 처음부터 행복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었다. 그냥 태어났으니, 밥 먹고 숨 쉬면서 사는 것이다. 그냥 살면 재미없으니까, 뭐라도 하면서 사는 것이고. 그냥 살면 비루하니까, 꿈을 가지고 성공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성공하면 당연히 좋지만, 인생 별 것 없다. 호텔에 사는 사람이나, 달동네 판자촌에 사는 사람이나, 뚜껑 덮인 방에서 사는 것은 마찬가지고, 삼시 세끼 먹고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당연히 성공하면 좋지만, 불평한다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나 또한 평탄한 길만을 살아왔으면 좋았겠지만, 2030 청춘을 상사병으로 조울증으로 완전히 상실했지만, 지금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있고, 동생 회사에 취직해서 돈도 벌고 일도 하고 주변 사람으로부터 능력 있다고 인정도 받고, 브런치 작가가 되어 일과 후에는 글도 쓰며 재미있게 살고 있다. 인생 별 것 없다.


뭘 이야길 하려고 이런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했었나? 네이버 메모에 기록해 둔 메모를 보니 '첫 번째 책'이라고 쓰여 있다. 그 정도로는 바로 뭘 쓰려고 했는지 떠오르지는 않지만, 몇 초 생각해 보니 생각이 돌아왔다. 아주 신박한 좋은 글감 아이디어가 생각이 나도, 어디에다가 메모를 해두지 않으면 바로 휘발되어 돌아오려면 시간이 필요하거나, 아예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메모를 해두었더라도 기억을 할 만큼 자세히 쓰지 않고, 간단히만 적어두었을 때 무슨 의미로 그 단어를 적었는지 다시 기억이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다. 좋은 영감이 떠올랐을 때는, 길게는 아니더라도, 짧게라도 그 메모로 떠오른 영감을 휘발되지 않도록 묶어둘 수 있을 정도의 핵심 정보들은 담아 두어야 한다. 메모는 짧은 게 좋은데, 그 짧은 메모 속에 핵심 가치와 내용은 다 들어 있어야 한다. 다 들어 있을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그 정도 메모로도 나의 생각의 청사진이 떠오를 정도의 최소한의 메모는 해두어야 한다.


내가 네이버 메모에 적어 둔 '첫 번째 책'은 내가 지금 내가 퇴고하고 있는 그 '첫 번째 책'은 아니다. 내가 출판사에서 외주를 받아서 '첫 번째 책'으로 디자인 작업했던 그 책을 말한다. 그 '첫 번째 책'이 오늘 내 손에 들어왔다. 아직 통장에 돈은 꽂히지 않았지만, 책 발행일인 내일이나 이번 달 첫 영업일인 내일모레 꽂힐 예정이다. 물론 이 출판사 또한 사장님이 고모부이고, 사장님 아내가 고모이다. 조카에게 선물 주려고 일부러 나에게 맡긴 것은 당연히 아니고, 당장 예전 책 그대로 날짜를 맞춰 재판을 해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 출판사 직원들은 스케줄이 이미 차 있고, 외주를 주느니 내가 북디자인을 배웠고 내가 보여드린 포트폴리오를 보시고 그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겠다 싶어 일을 주셨을 것이다. 물론, 조카에게 일을 주시고 싶은 마음도 있으셨고, 또 실무자 직원이 내가 그 작업을 할 수 있는지, 첫 챕터로 테스트를 하고 일을 시작했다. 작은 중소 출판사이지만, 오래된 출판사에서 사장이라고 계통을 무시하고 일을 할 수는 없다. 나에게 일을 주고 싶으면 줄 수 있지만, 내가 일을 하겠다고 받으면 고모부나 고모를 통해 일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실무자를 통해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책으로 나오니 파일로 볼 때보다 그럴듯했다. 원래 내가 그럴듯하게 만든 것인지, 출판사에서 한 번 마사지를 했는지 그것은 내가 잘 모르겠다. 내가 대부분 하고, 출판사가 해야 할 소수의 영역이 있었는데, 내가 한 부분도 출판사에서 디자이너가 마사지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잘 모른다. 네이버 북에 책 주소를 통해 내가 디자인 한 책을 보여 주면 좋겠는데, 아직 출간 전이라서 그런지, 기독교 서적이고 대중들에게 판매하는 책이 아니라 어느 단체의 스터디 북으로 만들어진 책이라서 그런지, 네이버 책이나 교보문고 등에는 올라와 있지 않다.


얼마 전까지는 나 이 정도 할 줄 알아요 하고 자랑질이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럴 마음이 없어졌다. 디자인은 앞으로도 계속해 나아가고, 실력을 키울 것이지만, 앞으로 나의 일은 디자이너를 지원하고 도와주는 일이지, 내가 디자인을 직접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디자인 영역에서의 전문가가 회사에서 일하고, 나는 회사 업무 전반을 사장 옆에서 총괄하며 디자인 포함 모든 영역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직원이 바쁠 때, 의사소통이나 프레젠테이션 그리고 SNS 홍보 정도의 디자인은 지금 나라도 충분하지만 말이다.



새롭게 디자인한 것은 아니다. 출판사의 요구사항이 새로 리디자인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똑같이 디자인해주되 내용의 상당 부분을 교정한 것을 반영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막을 알지 못하면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를 알 수 없는데, 그럴만한 일이 있었고, 그 일이 나에게는 불행이 아닌 행복이 되어 일 없을 때 일감이 되었다. 물론, 그때 나는 일을 하고 싶기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글을 쓰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가까운 곳에서 일을 던져주었는데 안 할 수도 없고, 또 돈이 생기는 일이니 좋아서 했다. 일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당장 돈이 들어오는 일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여 미래에 돈이 더 많이 들어올 일을 하고 싶었다.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난 돈이 하나도 안 들어오더라도 당장은 부모님 도움을 받아서 살더라도, 조금만 더 버티면 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빛을 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빛을 볼 때를 내가 만들어 보려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 책을 내는 일이 들어왔고, 그에 이어 동생으로부터 일이 들어왔고, 일에 메이게 되었다. 일단은 작가로서 돈을 많이 벌게 된다고 하더라도, 동생 직장을 평생직장으로 하기로 했다. 물론 작가 말고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 일이 밥이 되는 날이 있어, 그 일로 4대 보험에 등록하고 소득이 되면 동생 직장을 그만둘 수도 있다. 작가가 되고 출판사를 하는 정도로는, 동생 회사 사무실에 1인 출판사 등록해 놓고 업무 끝나고 일과 외에 할 것이다. 돈 버는 일은 내 동생 일이 마지막 직장이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한 가지 있어서 그 일이 내 직장이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 내 동생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다. 그날이 평생 오지 않을 수도 있고, 그날이 도적 같이 이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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