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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Mar 01. 2021

다함스토리

"49번, 최다함. 이름이 참 좋네요. 무슨 뜻이에요? 누기 지어주셨어요?"


정확한 번호가 49번은 아니다. 마흔 두 살인 지금, 중학교 고등학교 때 몇 번이었는지 기억에 없다. 고등학교 때는 이름의 가나다순이 학급 번호였다. 최씨인 내가 반에서 49번으로 기억에 남을 만큼, 지금과 비교하여 학급당 학생수가 콩나물 시루였다. 지금도 학급 당 학생수를 20명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하니, 정말 그때는 그렇게 한 반의 학생수가 많았었나 싶기도 하다. 옛 기억은 과장되이 왜곡될 수도 있으나, 그때는 정말 한 반에 학생수가 많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은 차원에서 중학교 때는 3번이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키 순서로 번호를 정했다. 3년 내내 반에서 3번일 만큼 땅꼬마 중 땅꼬마였다. 지금은 177 정도로 180 넘는 장신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남성 평균 키는 훌쩍 뛰어 넘는다. 중학교 3학년 후반부터 크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나보다 머리 하나 크던 교회 친구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 되어서는 나보다 머리 하나가 작아졌다. 그 친구는 중학교 초반을 정점으로 성장을 멈추었고, 나는 중학교 후반에 크기 시작하여 고등학교 시절에 키가 컸다. 


학급 당 학생수가 콩나물 시루였던 49번이었을 때나, 학급에서 키가 작아 땅꼬마 중 땅꼬마였던 3번이었을 때나, 한 학년이 시작되고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을 만날 때면, 최다함이라는 이름으로 주목과 관심을 받았다.


내 이름은 최다함이다. 동생은 어렸을 때 친구들이 이름 가지고 놀려대서,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전혀 놀림 받을 이름이 아닌데, 놀리는 친구들이 있었던가 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놀리는 코찔찔이들이 있다. 아무 죄책감 없이 던진 장난과 놀림의 돌맹이가 누군가의 마음에 시퍼런 멍이 들게 한다.


나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지는 않았다. 짖꿎은 선생님 한 분이 "최다함, 진짜 최선을 다하고 있는거냐?" 하는 정도였다. 다만, 역사적 사명이 담겨 있는 의미심장한 이름 값을 하느라, 그동안 인생이 꼬였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말이다.


나와 아내 에미마 사이에 사랑의 열매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가 생겼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부르고 듣기에 예쁜 이름을 지어 주고 싶다. 본인의 삶의 스케일은 본인이 살아가면서 본인의 깜냥대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부모인 나와 아내가 이름으로 삶의 범위를 설정해 주고 싶지는 않다. 평범한 이름이라고 해서, 철수와 영희 같은 이름은 아니 아니 아니된다. 최영하 최사랑 최하나 정도의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듣고 부르기 예쁜 이름이 좋다. 


아내가 네팔인이니 아기의 이름도 글로벌하게 '최데이비드' '최그레이스' 이렇게 짓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아내 에미마에게 물어 보았더니, 지금 고민하지 말고 그때 가서 기도하고 결정하자고 한다. 나는 안 해도 되는 미래의 고민을 미리 땡겨 하고, 아내는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기도하며 결정한다. 아무리 고민해도 그때가되면 이미 상황이 달라져 있어 지금 고민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나 또한 알면서도 미래 고민을 미리 땡겨하는 이유는, 나는 미래의 청사진이 의식 속에 그리고 그에 맞추어 현재의 선택을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아내 에미마는 다만 '사랑'이는 이름으로 안 된다고 한다. '사랑'이 이름으로 안 좋아서가 아니라, 현재 태명인 '사랑'이와 본명은 달라야 한다는 게 아내 에미마의 뜻이다. 나의 뜻보다 아내 에미마의 뜻이 우선이다. 카카오톡으로 네팔과 한국에서 장거리 랜선 연예를 할 때, 아내는 나에게 종종 'King' 'My King'이라고 불렀다. 듣는 나는 마냥 기분이 좋았을 뿐, King의 주인이 Queen인지는 결혼을 하고 아내 에미마와 살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결정은 King이 해야 하지만, 그 결정은 Queen의 마음에 흡족하게 하여 결제를 받아야 한다.




부모님께서 내가 태어나기 이미 오래전부터, 성별과 상관없이 미리 지어놓으셨다. 그때는 산부인과에서 출생 전에 성별을 가르쳐 주는 것이 법률로 금지되었을 때였다. 부모님께서는 '윗과 아브라함', '선을 다하라.',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세 가지 뜻으로 '최다함'이라고 지으셨다. 나는 내 이름 '최다함'에 대해 프라이드를 가지고 살아왔다. 본명 '최다함'을 필명, 아이디, 닉네임 등 퍼스널 브랜드로도 사용해 왔다.


목사님의 설교에 자주 사용되는 레토릭 하나가 있다. 역사라는 단어의 영단어 history는 his(예수님의) 와 story(이야기)의 합성어로서 '예수님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 이전의 역사는 예수님이 오셔야만 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역사이고, 예수님 이후의 역사는 예수님 오신 후 달라진 역사로서, 예수님 전 후 역사는 예수님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어원학적으로 history가 his+story의 합성어가 아니다. 영단어 history의 어원이 '예수님의 이야기' 또는 '그(남성)의 이야기'라는 것은 팩트가 아니다. 전공이 영어교육이라서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전공만 영어교육이었던 것이지, 대학 때 공부를 안 해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영어교육에 대해서 내가 아는 정도는, 조울증 때문에 방황하느라 입학 후 13년 반 동안 학교를 다니다 겨우 졸업하는 동안, 서당에서 3년 서당 밥을 얻어 먹는 동안 풍월을 읊는 서당 개 정도이다. 다만, 네이버 검색을 잘 한다. 검색을 전문적으로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조울증으로 집에서 오랜 기강 요양을 하는 동안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경험과 경력이 1만 시간이 훌쩍 넘어 1만 시간의 법칙이 작용했는지, 진위 여부에 대해서 빠르고 정확한 데이터와 정보의 수집이 가능한 검색의 달인이 되었다. 영단어 history의 어원인 고대 그리스어 historia는 his와 story의 합성어가 아니라, 탐구 탐문 조사를 의미하는 단일어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집에 컴퓨터는 있었다. 가끔 타자 연습이나 간단한 게임을 하는 정도였다. 주로 아버지께서 업무와 기독교 전도의 목적으로 문서 작성에 사용하셨다. 현재의 인터넷은 아니었고, 천리안 하이텔 같은 PC 통신이 우리 집에도 있었다. PC 통신 접속할 때 기계음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대학교 입학하여 처음 한 일이 과선배를 따라 학교 전산실에 가서 이메일 계정을 만들었다. 내 첫 이메일은 hanmail(한메일)이 아니라, hanimail(하니메일)이었다. 오래 전에 서비스 중단 되어 지금은 없는 한겨레 신문사의 이메일이었다. 한겨레 신문의 대한 사랑으로 hanimail을 썼던 것은 아니었고, 과선배가 알려 준 이메일이 hanimail 이었을 뿐이었다. 처음 만든 인터넷 아이디 계정은 daham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daham이란 아이디는 선점이 되어 더 이상 만들 수 없는 아이디가 되었다. daham이란 나의 이름을 퍼스널 브랜드로 사용하면서도, 다른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나 혼자의 아이디를 만들어 쓰고 싶었다. 최다함 내 이야기 dahamstory가 역사가 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 후대에 누구나 볼 수 있는 큰 발자국이든, 아무도 볼 수 없는 작은 발자국이든, 역사에 발자국을 남기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지금도 dahamstory라는 아이디를 메인 아이디로 사용하고 있다. 


필수 가입해야 할 사이트가 많고, 만들어야 할 아이디 계정이 많은데, 나는 가능하면 dahamstory를 계정 아이디로 사용한다. 내 블로그 이름도 「다함스토리」다. 나의 첫 번째 책인 이 책의 이름도 「다함스토리」다. 나중에 출판사나 개인 회사를 차리게 되면, 회사 이름을 「다함스토리」로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 책 「다함스토리」는 나 최다함의 스토리이다. 상사병과 조울증으로 기나긴 방황의 시간을 보낸 후, 마흔두 살 이제야 인생을 시작하는 미생이 쓴 책을 엄밀히 말해 자서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생 에세이 정도의 카테고리면 좋지 싶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던 내가 날 사랑하지 않는 소녀를 사랑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랑이란 무지개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사랑을 찾아 헤매다 상사병과 조울증에 걸려 2030 청춘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사랑의 끝에서 마침내 끝사랑 아내 에미마를 만나 행복해졌다. 내사장인 동생이 취직시켜 준 동생 회사에 다니면서 돈을 벌면서, 내가 가장 하고 싶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그런 나의 인생에세이 사랑에세이가  <다함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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