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함 Aug 31. 2021

아내 에미마를 만나게 된 사연

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신 은퇴 후 사명이 있으시다고 했다. 노년에 주변에 이웃을 돕고 사시는 것이라 했다. 아버지께서 노년에 돕기를 원하셨던 가장 주된 이웃은, 21살 때 조울증이 시작되어서 그 영향권 안에 있었던 큰 아들 나였다. 그리고 은퇴 직후 바로 돕기를 원하셨던 이웃은, 중학교 선생님 하시다가 명예퇴직하시고 철원에 귀농하셔서 아로니아 오미자 농장을 하시던 고모부 내외분을 돕는 것이었다. 고모부 내외분은 처음에는 아로니아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아로니아를 접고 오미자를 중심으로 농사를 지으신다.


아버지 은퇴를 전후해서, 아버지께서는 논산 시골집으로 귀농하셔서 나를 위한 평생직장으로 농장을 만들어 주시려고,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귀농교육을 다니시기도 했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집에서 요양하며 동생 일을 도우며 소일하던 나는 아버지를 따라나서지 않을 명분이 없었다. 고모 내외분 농장 일을 도우러 갈 때도 나도 따라갔다.


고모부께서 중학교 선생님이실 때, 방학 때 부부가 해외 봉사활동을 다니셨다. 그중에 한 곳이 네팔이었고, 네팔에는 고모 내외 분의 절친이라고 하실 수 있는 분이 아주 오래전부터 비즈니스와 봉사활동을 하며 살고 계셨다. 그때 즈음에는 나는 내 인생에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포기했을 때였다. 가는 사랑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랑 막지 않으며, 스쳐 가는 사랑이 있으면 인스턴트 사랑이나 하면서 살지 뭐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나의 결혼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내가 조울증을 극복하고, 어렸을 때처럼 착하고 성실하게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부모님은 한국 여자는 어렵다고 보시고, 고모를 통해서 네팔 여자를 알아보시기로 하셨다. 신앙이 좋고, 사랑이 많은 여자를 만나면, 내가 조울증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회복되어 다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부모님은 믿으셨다.


고모는 내가 마음이 있어야지 저쪽에 물어볼 수 있다고 하셨다. 사실 나는 네팔 여자건, 어느 나라 여자건, 국제결혼이나 국제 연예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외국인은 사귀거나 결혼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아내 에미마를 알기 전 내가 사랑했던 모든 여자는 한국사람이었다. 그래서 고모에게 마음이 없다고 말씀드렸고, 그 이야기는 없어지는 것을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는 계속 진행하셨고, 부모님이 바람을 넣으시니 한번 소개받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가 네팔의 친구 분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는데, 고모의 친구분이 자신이 딸처럼 생각하는 네팔 여자가 있는데, 세상에 그런 여자가 둘도 없을 만큼 좋은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아내는 그분을 앤티 이모라 부르며 정신적인 어머니처럼 생각하는 사이다.


그렇게 해서 서로에 대한 소개와 사진들이 오갔다. 나는 생각해 보기로 했고, 네팔의 아내는 기도해 보기로 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조울증으로 아팠던 사실을 사실대로 그쪽에 전했다. 모든 나의 사연을 아내 에미마는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응답을 받았다고 한다. 자기가 날 사랑해주면 하나님께서 날 낫게 하실 것이라고 아내는 믿고 나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는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만나다가 결혼하기로 결정한 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생각하고 아내는 기도하다가 결혼하기로 결정하고, 그 후에 카톡으로 사귀었다. 2018년 6월인가 그때부터 카톡으로 사귀기 시작하여, 그해 9월 10일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에서 처음 만나, 카트만두의 한국식당에서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약혼식을 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다시 네팔에 가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듬해 6월 한국 손님들을 모시고 수원에서 한국 결혼식을 한번 더 하기는 했다.


아내를 만나서 조울증도 극복하고, 부모님과 잠시 같이 농사를 짓다가, 국비지원으로 직업훈련을 받고, 구직활동을 하다가, 동생 회사에 취직해서 직장생활도 하며 잘 살고 있다. 그리고 9월 10일 우리 아기가 태어난다. 예정일은 9월 17일인데, 우리 아기가 머리가 위로 다리가 아래로 있는 역아로 있어,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을 하게 되었다. 아내 에미마가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인 9월 10일을 아기의 생일로 하고 싶어서, 마치 9월 10일도 제왕절개 수술로 선택할 수 있는 날이라서, 아내 에미마는 그날을 수술일로 선택했다.


아내 에미마가 아기를 가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모성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도 나에게 아기를 선물로 주고 싶었다고 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내 조울증이 완전히 극복되고, 내가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아내는 생각했던 것 같다. 3년 전 9월 10일 아내 에미마를 만난 나는, 며칠 후 9월 10일 우리 아기 (태명) 사랑이를 만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와 처음 만난 날, 우리 아기랑 처음 만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